기호학으로 본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
  • 趙瑢俊 기자 ()
  • 승인 1995.06.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선기 교수 보도 내용 분석…5개 신문, 자신들 입장 따라 편향 취급
지난해에 발족한 한국기호학회(회장 김치수 이화여대 교수·불문학)가 최근 그 첫 성과로 기호학 연구 제 1집을 내놓았다. ‘새롭게 등장하는 현대 문명의 여러 현상들을 해석하는 열쇠 역할’을 강조하는 한국기호학회의 이번 논문집은 <문화와 기호>(문학과지성사)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논문 중에 백선기 교수(경북대·신문방송학)가 기호학을 토대로 서강대 박 홍 총장의‘주사파 발언’보도를 분석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백교수의 이번 논문은 박총장 발언 자체의 담론과 이에 대한 언론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언론 부분에서는 신문이 어떠한 점을 강조하거나 부각하였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취재·보도했고, 그러한 강조 및 취재 경향은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분석 대상으로는 <서울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의 94년 7월19~26일 보도 내용이 선택되었다.

대통령, 박 홍 총장 발언 협조

백교수는 먼저 박 홍 총장의 발언을 그레마스의 ‘행위주 모델’로 분석했다. 이 모델은 담론 전체에 등장하는 행위주들의 역할이나 기능을 체계적으로 연계시키면서 전체 담론이 지향하는 중심 행위나 중심 역할을 밝혀주는 모델이다.

그에 따르면, 박총장의 담론이 표출된 계기를 준 것(발송인)은 ‘대통령과의 오찬’인데, 이 모임이 담고 있는 상황이 친정부적이라는 의미가 있어, 여기서 행해진 담론들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담론에 대한 협조자로는 ‘주사파에 대한 강력 촉구’를 표시한 김영삼 대통령과, 주사파들의 과격 행동을 지적하고 ‘정부가 이들을 힘으로 다스려줄 것’을 제안한 대다수 대학 총장들이며, 이 담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수혜자)은 주사파 척결과 운동권 세력 약화, 대학 안정화 등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 경향에 대해 백교수는 서울·조선·중앙·동아 4개 신문이 박총장의 발언 행위를‘용기 있는 행위’‘바람직한 지성인의 행위’‘결단에 찬 행위’‘시대적 욕구의 표현 행위’라고 규정함으로써 그의 발언 내용 자체를 믿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이 발언이 ‘편견과 무지의 행위’‘무책임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증거 부족을 내세워 발언 내용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러한 행위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의도에 대해 주목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박총장 발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증거 부문에 관하여 백교수는 4개 신문이 1차적으로 검찰이 제시한 ‘한총련과 이북 단체들과의 팩시밀리 교환’‘북한 구국의 방송 녹취문’등으로 충분하다고 하고, 2차적으로는 박총장 발언이 ‘체험적 공감대’를 지니고 있으므로 증거를 대는 것은 ‘인격적인 모독’이자‘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은 것’으로 규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한겨레신문>은 주사파가 북한의 지시 및 지령을 받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라고 주장했으며, 팩시밀리 교환이나 구국의 방송 녹취문 정도로는 ‘지령 및 지시’를 받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백교수는 박총장 발언의 담론 주체는 박 홍 총장이자 이에 대한 신문의 부각이고, 대상은 ‘주사파 존재의 확인’‘주사파와 친북파의 연계’및‘주사파 척결’을 들 수 있다고 파악했다.

결론적으로 백교수는, 박총장 발언은 그 발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도 있지만 그의 발언과 관련된 우리 신문들의 보도에 의해 그 성격이 규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교수는 “우리 신문들은 박총장 발언과 관련하여 객관적이고 공정한 일반 보도 원칙들을 지키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입장 및 관점에 따라 편향되고 불균등하게 보도하였고, 나아가 자신들의 시각이나 관점을 반영하거나 관철하고자 노력했다”고 결론 맺었다. 마지막으로 백교수는 이들 4개 신문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거대 신문들로서, 이들이 기사를 취급하는 경향이 그대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보편적 인식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