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대동여지도의 진실, 왜 외면하나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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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김정호, 여전히 식민사관으로 왜곡…전문가들 수정 촉구
 
고산자 김정호를 가르치는 ‘교사’는 아직도 조선총독부인가. 현재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읽기〉 교과서에 실린 김정호의 일대기는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이야기 골격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이우형 이사나 국사편찬위원회 이상태 연구관 같은 김정호 연구자들은 80년대 후반부터 이 일대기가 식민사관에 따라 날조되었다고 지적해 왔지만, 교과서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내년 7월이면 마무리될 제6차 교육 과정 개편에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뜻이 관철될지 아직도 불투명하다.

김정호 일대기에는, 당대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무척 우매했던 것으로 그려져 있다. 소년 김정호가 지도에 관심을 보이자, 그가 다니던 서당의 훈장은 시간을 허비한다며 그를 꾸짖는다. 제대로 된 지도 한 벌 없는 형편이었음에도, 위정자들은 김정호가 평생 걸려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간첩질에 썼다며 오히려 그를 체포한다.

전문 연구자는 개정 작업에 참여 못해

김정호 연구자들은 이같은 내용이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는 당시까지 전해 내려온 지도와 지지 들을 연구하여 집대성한 것이지, 일일이 실지를 답사하여 제작한 것이 아니라며 그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시사저널〉 제333호 참조). 연구자들은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통치를 합리화하려고 우리 선조를 지도의 가치조차 모르는 무지한 인물들로 그렸다고 설명한다. 즉 김정호 일대기가 개정될 것인지 여부는 단순히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진실과 선조들의 명예가 걸린, 그에 따라 후손들의 긍지까지 좌우되는 역사적 과제라는 것이다.

김정호 일대기는 새 교과 과정에 대비해 지난해 3월 발간된 5학년 1학기 〈읽기〉 실험본에 포함되어 현재 47개 초등학교에서 시범 교육되고 있다. 실험본에 실린 김정호 일대기는 종전과 같은 내용이다. 이 실험본을 토대로 내년 3월 교과서 정본이 발간되면, 교육 과정이 개편되는 주기를 고려할 때 5∼6년 간은 내용을 바꾸기 힘들다.

93년 제5차 교육 과정 개편 때의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개정 일정을 살펴보면, 김정호 일대기는 옛 내용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아예 실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호 연구자가 정작 김정호 일대기를 다루는 교과서 개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읽기〉 교과서 실험본은 내년 2월 정본으로 개편되기까지 한국교육개발원 국어교육연구부가 주도하는 세 차례 협의 및 심의를 거친다. 협의회에는 대학 교수와 초등학교 교사가 참여하지만 모두 국어 교육 전공자들이다. 새 교과서 시안이 11월 하순 교육부 심의를 받지만 교육부 편수관들 역시 국어 전공자들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개발진이 60년 넘게 지속되어 온 김정호 일대기의 골격을 뿌리부터 손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정호 일대기가 사료(史料)도 없이 소설처럼 씌었다는 점에 이견을 내는 학자는 거의 없다. 문제는 일대기의 허구성을 입증할 근거가 없지 않느냐는 고정 관념이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 개정 책임자들의 판단력을 어지럽히는 대목이다.

93년 제5차 교육 과정 개편 때 현재의 일대기를 집필한 서울교육대학의 한 교수는, 91년 국내 최초로 김정호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국사편찬위윈회 이상태 연구관에게 문의하여 관련 자료를 얻어 갔다. 하지만 국어교육학자인 그 역시 골격은 건드리지 못하고 자구만 몇 군데 손질하는 데 그쳤다. 전 대한지리학회 회장 이 찬 명예 교수(서울대·지리학)나 서울대 규장각 양보경 박사 같은 학계의 권위자들도 김정호 일대기가 왜곡되었다는 점에 이견이 없는데도 교과서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이상태 연구관은 93년 교과서가 개정되기 전에 교육부의 한 관계자가 ‘자꾸 논란이 생기면 일대기가 아예 빠질 수도 있다’고 귀띔했던 기억 때문에 ‘삭제’라는 최악의 결과가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치자(治者) 중심이었다. 고산자처럼 평민으로서 이름도 없이 음지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는 드물다. 고산자의 삶은, 역사야말로 온 백성이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전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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