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결혼의 야만성
  • 趙瑢俊 기자 ()
  • 승인 1995.04.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혼수·예식·신혼여행 ‘고급화’ 통해 유치한 만족감 추구
칸트가 결혼에 대해 ‘반대 성을 가진 두 성인 사이의 성기의 상호 사용에 대한 계약’이라고 쓴 것은 역설적으로 진보적이다. ‘성기의 상호 사용에 대한 계약’이 결혼의 모든 것을 이룬다면 결혼을 둘러싼 모든 양태의 담론이 차라리 단순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칸트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결혼의 온갖 됨됨이를 눈여겨 본다면,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자신의 우매함을 한탄했을지 모른다.

그것이 백화점의 젊은 후계자와 판매원의 열애이거나, 문화방송 라디오 스튜디오를 나란히 사용했던 일명‘길길이 스캔들’의 주인공인 작가와 탤런트의 만남이거나에 상관없이, 남녀가 서로 결혼에 동의하기까지는 그 누구라도 무수한 심경 변화를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가. 진짜 머리카락을 쥐어뜯도록 만드는 현실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 복잡다단한 감정의 뒤얽힘이야말로 예고편, 전초전에 불과하다.

‘결혼=상품화’는 억압된 사회의 초상

신랑은 신부 손가락에 끼워줄 반지의 다이아몬드가 몇 부인지, 칼라는 G칼라인지 F칼라인지, 투명도와 연마도는 VVS1인지 VS1인지 혹은 그냥 S1인지, 가격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신부는 신랑에게 줄 시계가 클래식하게 롤렉스 금딱지여야 하는지, 진일보해서 론진이나 파텍스, 혹은 신세대답게 태그호이어야 하는지, 시부모에게 줄 예단 이불을 본견에 명주솜으로 해야 하는지 목화솜으로 해야 하는지, 밍크 코트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많은 웨딩드레스 전문 재단가가 한결같이 말하는 이 증언, 신부의 실제 허리 사이즈보다 약간 줄여 옷을 만들어야 결혼 당일 딱 맞기 마련이라는 ‘비법’에 결혼을 둘러싼 복잡다단함의 비밀이 모두 들어 있다.

결혼이란 이를테면 디즈니랜드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에서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거기 있다(마치 사회 전체가 감방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감옥이 있는 것과 약간은 유사하게)’라고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생각하는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허구를 감추기 위하여 미리 설치된 ‘인공의 허구’인데, 그로부터 이 상상 세계의 허약함과 유치한 백치성이 나온다. 또한 이 세계(디즈니랜드)가 어린애 티를 내려 하는 이유는, 어른들이란 다른 곳, 즉 실제의 세상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진정한 유치함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이다.

결혼은 어떠한가. 결혼이야말로 이 세계가 유아적이고 위조된 환상의 기호로 만들어진 교감신경계처럼 낡은 상상 세계임을 은폐하기 위하여, 즉 이 세계가 디즈니랜드의 세계임을 감추기 위하여 만들어진 또 하나의 디즈니랜드가 아닌가. 결혼은 이 세계가 야만성으로 뒤덮인 사회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또 하나의 극대화한 야만성으로 치장된다. 마샬 살렝이 결핍을 퍼뜨리는 것은 결코 자연이 아니라 시장 경제라고 갈파했듯, 결혼과 결혼의 결핍에 따르는 위기감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의하여 무성하게 전파되어 간다. 결혼에서 신랑·신부는 결코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여기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결혼 시장 그 자체이다.

국내 유수의 백화점에는 너나없이 신혼생활관이 설치되어 있다.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결혼에 필요한 모든 것이 결코 아니다)이 일목요연하게 구비되어 있어, 예식의 효율성과 간편성을 보증하는 신혼생활관은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예산별 혼수 패키지표’를 제공한다.

한 백화점의 혼수 패키지표는 신혼 살림과 예단을 묶어 △1천2백만원대 △1천8백만원대 △2천 3백만원대 △2천7백만원대로 나뉘어 있다. 이 표는 예산에 어울리는 전자제품·가구·침구 및 수예·주방 및 리빙용품·예물류·예단을 항목 별로 나열하고 있다. 2천7백만원대의 전자제품에는 텔레비전(29인치 바이오)·비디오(6헤드, 하이파이)·냉장고(510리터, 디스펜스)·전자렌지(31리터 바비큐 봉)·전기밥솥(10인용 코키리표)·가스렌지(2구 실버스톤) 등이 기본 세트로 들어 있다. 이들 표가 제공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혼수만 해도 1천2백만원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의 묵시적 조장이다. 옛날 어른들 말대로 ‘살림 들이는 재미로’ 살아가면서 하나 둘씩 구입하는 식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들여 놓아야만 한다는 사실의 강요이다.

이 목록을 채울 수 없는 신부는 결핍(소외)을 경험하고, 이를 지켜보는 신랑 또한 또 다른 의미의 결핍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결혼과 결혼식에서는 이 결핍을 보완하는 충족의 가치가 모든 다른 가치를 대신하고 가장 우월적 지위에 서게 된다. 신랑과 신부는 소외에서 탈피하기 위한 이 모든 상품과 의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결혼의 가장 소중한 의미가 무엇인지 망각한 채 ‘야만스런 예식장’을 나서게 된다. 예식장에서 의식을 치르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아니라 결혼 시장과 결혼에 대한 고정 관념·기대치들이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다름아닌 신랑과 신부이다.

‘패키지’는 당장의 소외감만 없애줄 뿐

이득재 교수(효성여대·노문학)는 <문화과학> 봄호의 ‘패키지 신혼여행’이라는 글을 통해 20년대 포드주의 체제의 시작과 더불어 대중오락기가 시작되었고, 이 때부터 인간의 1차적 욕구보다는 2차적 욕망이 강조됐으며, 이를 충족하기 위한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패키지’라는 ‘코드’에 몸을 싣지 않으면 동일한 질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마찬가지로 고만고만한 신혼 여행에서 벗어나는 것은 천편일률적이기까지 한 담론구조에서의 소외라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구식이 되었지만, 제주도에서 택시 기사의 연출에 따라 비슷비슷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던, 동일한 코드 체험의 세대가 분명히 존재했고, 이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교수는 그것이 영화산업이든 관광산업이든 간에 “산업이란 단어 자체가 경험의 제도화·코드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한반도의 4월은 그 날씨의 온유함으로 인해 가장 많은 신혼 부부가 탄생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들이 결혼하는 과정에서 언뜻 느꼈을지 모를 행복의 감정은 바로 ‘패키지’에 의한 패키지적 행복감이다. 이러한 패키지적 행복감이야말로 당장의 소외감을 해소시켜줄지 몰라도 상품의 차별화에 따른 계층간 계급적 차이는 메워주지 못한다. 결혼은 세상이 이렇듯 온갖 차별 구조로 억압된 사회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디즈니랜드, 야만성과 유치함의 서울랜드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