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스튜어트 유웬 지음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긴다>
  • 이재현 (문화 평론가) ()
  • 승인 199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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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유웬의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현대와 ‘스타일’의 상관관계 탐구
저자 스튜어트 유웬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론을 강의하는 사회학자인데 책의 머리말에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학기의 종강 수업 때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와 권력’이라는 주제로 한 학기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나서 연구실로 돌아오는데, 한 학생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선생님, 그 신발 어디에서 사셨어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유웬은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워했는데, 한참을 생각한 뒤에 그 학생의 물음, 즉 자기 신발의 ‘스타일’이야말로 한 학기 수업의 모든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 손바닥 같은 ‘스타일의 정치성’

‘현대 사회에서의 스타일의 정치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스타일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스타일이란 ‘패션이나 갖가지 최신 유행, 문학적 표현의 문체 이상’이고 또 ‘시각적 모티브나 특정 시대의 문화 양식 이상’이다. 스타일은 또 열광적인 만큼이나 순간적이고 표피적이기 때문에, ‘패셔너블’한 것은 고정시켜 놓자마자 낡은 것으로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자신이 강단에 서는 학자이면서도 현대 사회의 스타일을 탐구하는 데에는 학술적인 연구 성과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연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탐구하고 있다. 그가 조사하고 모은 사례에서, 사람들은 스타일을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저항의 의례’로, ‘집단의 표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유웬 자신의 총괄에 의하면, 결국 스타일이란 이미지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생산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스타일은 각자가 품고 있는 자신에 대한 환상이나 상상, 즉 각자가 갈망하는 이미지를 실현하려는 주요 통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 리포트, 일화, 신문 보도, 저서 및 논문의 인용문, 통계, 사진 일러스트 등 다양하고 살아 있는 사례들을 엄청나게 긁어모은 뒤 이를 정리해 냈다. 그러면서 유웬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미국의 역사를 스타일과 이미지의 역사와 오버랩시켜 검토했다.

결국 유웬의 통찰은 상품 디자인이나 각종 미디어, 기업의 이미지 통합(CI) 작업과 영화, 건축에서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의 에이전트 모집 브러셔, 기업의 연례 보고서, 정치 캠페인과 텔레비전 뉴스에까지 미친다. 이 세상에서 이미지의 수사학과 스타일의 정치학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사례들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 현실 자체가 막대한 양의 세련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미지들이 우리를 삼키기도 하지만, 반면에 우리도 이미지들을 삼킨다. 이러한 소비는 무의식중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래픽 이미지에 비해 글자가 많고 디자인도 촌스러운 것, 예컨대 ㅍ 우유 광고 같은 것이 도리어 눈에 띌 정도가 되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가 재미있고 다양한 사례들의 갈피 사이에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시작해서 푸코 등 포스트모던 사상가에 이르는 다양한 이론적 저작을 끼워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론은 징검다리 구실, 아니 삽화 구실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소 현학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없지 않은 우리의 문화 연구 및 문화 비평 풍토에 비하면 산뜻한 느낌마저 준다.

연구 주제를 정한 뒤 책을 써내기까지 걸린 5년 동안 저자는 사례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키·얼굴·몸매·패션·나이·돈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10대 록 카페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나 같은 이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부러운 일이다. 또 옮긴이 백지숙씨는 이미 <이미지에게 말걸기>라는 저서를 펴낸 바 있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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