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엔날레]세계 조류 반영한 '설치 미술'
  • 광주·成宇濟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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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성 강한 설치 작품이 본 전시 주류… 눈길 끌고 사회적 메시지 담는 데 유리
광주는 지금 열을 뿜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9월20일~11월20일)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문화 행사가 열려 거리는 활기에 차 있다. 특히 개막식을 치른 지난주에는 갖가지 공연이며 거리 행사 들이 함께 열려 비엔날레의 거점인 운암동 중외공원뿐만 아니라 광주 도심까지 잔치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개막식 후 5일 동안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20만4천7백여명. 관람객 숫자로만 보아도 광주 비엔날레는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문화 예술 잔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가 세계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게 하고 새로운 경향을 예감케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광주 비엔날레는 그 의미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비엔날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본 전시 출품작들이 세계적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설치 작품들로 채워져 있고, 그 내용 또한 실험적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계 50개 나라에서 91명이 87점(공동작 포함)을 출품한 본 전시장은 80%가 넘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본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을 놓고 보면, 미술은 이제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 장르의 규범과 틀을 버리고 소통 방식의 초점을 설치와 영상 쪽으로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본 전시장에 들어서면 회화와 조각은 설치 작품의 ‘위세’에 눌려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평소 평면 작업을 해온 한국 작가들도 대부분 설치 작품을 출품해 광주 비엔날레의 본 전시장은 설치 작품 경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치 작품의 위세는 수상작을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 대상 수상작인 알렉시 레이바 카초(쿠바)의 <잊어버리기 위하여>와, 특별상 수상작인 다이애나 세이터(미국)의 <클로드 모네 정원에서의 5일>, 트레이시 모파트(호주)의 <밤에 흐르는 눈물> 들이 설치 혹은 영상을 매체로 이용한 작품들이며, <판문점> 연작이라는 회화 작품으로 특별상을 수상한 김정헌씨(한국)도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설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까닭은, 설치가 세계적인 유행이라는 점말고도 비엔날레라는 경연의 성격 때문이다. 수많은 작품을 몇 시간에 걸쳐 둘러보아야 하는 관람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설치 작품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그 공간이 사각형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회화보다는, 관람객의 주의를 끌면서 작품의 의도를 좀더 강하게 부각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치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 본 전시장에서는 미적으로 빼어난 작품보다는 구체적이고, 따라서 강력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경계를 넘어’라는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가 이미 미술 작품에 사회·정치 상황을 담으라고 요구하는 셈이어서, 출품작 대부분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설치를 ‘소통 방식’으로 삼은 것이다.

대상 수상작인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작가가 지닌 의식이나 개념이 작가의 손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쿠바의 절실한 현실을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은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한국에서 구한 맥주병 위에 담양호에서 가져왔다는 낡은 목선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쿠바를 떠나는 사람과 쿠바에 남은 사람들의 문제를 일관되게 다루어 왔다’는 카초는, 그 개념과 이미지를 빈 맥주병 위에 낡은 배를 올려놓는 방법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 본 전시가 실험적인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출품작들의 다양성에서 비롯한다. 20~40대가 주류인 데다, 제3세계 작가들이 ‘미술 선진국’ 출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개념과 그 전달 방식들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첫 대회를 치르면서 운영의 난맥상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설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광주 비엔날레가 실험적 경향을 형식과 내용으로 하는 세계 미술의 잔치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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