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기’ 전송하는 케이블 TV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8.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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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 겪는 종합 유선 방송국, 채널 독점권마저 ‘위태’…“관련법 단일화 등 제도 보완 서둘러야”
‘다채널 방송 시대의 총아’로 기대를 모으며 95년 3월 출범한 케이블 TV. 11개 분야 20개 채널로 첫선을 보인 케이블 TV는 현재 16개 분야 29개 채널로 차림상을 늘려 놓고 새로운 가입자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그러나 케이블 TV 방송 사업자인 ‘종합 유선 방송국(SO;System Operator)’은 요즘 개국한 뒤로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케이블 TV 시대가 열리면 자연히 퇴출되리라고 믿었던 ‘중계 유선 방송국’이 주무 부처인 정보통신부의 방침에 힘입어 SO의 채널 독점권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과 다양성’을 앞세워 한국 방송 문화의 꽃을 피워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케이블 TV. 비록 중계 유선 방송국의 벽에 부딪쳐 당초 기대했던 만큼 가입자를 늘리지 못해 SO와 ‘프로그램 공급자(PP;Program Provider)’와 ‘전송망 사업자(NO;Network Operator)’가 모두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케이블 TV가 방송 문화의 지평을 넓혀 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7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와 〈케이블TV 가이드〉가 공동 주최한 ‘제1기 케이블 마니아 선발 대회’에는 ‘케이블 광’이라고 자처하는 마니아 1백58명이 응모했다.

39쇼핑·MBN·Drama.net 3곳만 지난해에 흑자

그 가운데 제1기 케이블 마니아로 최종 선발된 김형찬씨(38)는 케이블 TV를 ‘보물단지’처럼 모신다. 그는 한국종합예술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대중 음악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데, 대중 음악 연구에 필요한 문화 지식의 대부분을 케이블 TV를 통해 습득하고 있다.

김씨가 96년 3월 케이블 TV 회원으로 가입한 뒤 지금까지 녹화해 온 프로그램은 비디오 테이프로 천 개가 넘는다. 그는 이것들을 전부 색인이 가능하도록 공책 3권에 나누어 정리했다. 그는 문화 예술 채널인 A&C코오롱과 CTN을 가장 즐겨 보지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램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녹화한다.

녹화 테이프를 활용해 학습 효과를 배가하는 방법을 그는 이렇게 소개했다. 가령 러시아 음악가 쇼스타코비치를 공부하고 싶을 때, 그는 먼저 쇼스타코비치가 활동하던 때의 러시아 역사와 문화사를 다룬 프로그램들을 차례로 본다. 이렇게 배경을 먼저 살펴본 뒤에 비로소 쇼스타코비치의 생애와 공연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면, 학교 강의나 독서만 가지고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입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김씨는 A&C코오롱의 어린이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열려라 도레미 콩콩〉을 예로 들어 케이블 TV의 진가를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놀면서 음악과 악기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그는 어린 자식들을 위해 이 프로 역시 꼼꼼히 비디오 테이프에 챙겨 두고 있다.
이 밖에도 케이블 TV의 특장은 많다. 지난해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영화 채널 DCN은 종종 비디오 가게에서도 구해 볼 수 없는 희귀한 명작들을 상영한다. 음악 채널인 KMTV나 m·net가 방영하는 라이브 공연은 지상파 방송에서와 달리 편집을 하지 않아 공연 현장의 호흡이 그대로 전달된다. 또 인기 스타가 아니지만 역량 있는 음악인의 공연도 자주 볼 수 있다.

케이블 TV 마니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모두 계획을 세운 뒤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방송 편성표를 보고 자신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정한다. 수시로 리모컨을 눌러대는 ‘채널 서핑’ 같은 시청 행태로는 케이블 TV의 진가를 맛보기 힘들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전문 Q채널은 4부작 특집 〈잃어버린 영예를 찾아서〉로 종합유선방송위원회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우수 프로그램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잃어버린…〉은 현재 프랑스가 보관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의 규모와 그것이 침탈되어 간 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한 다큐멘터리이다.

Q채널이 96년 9월부터 방영하는 〈아시아 리포트〉 시리즈는 올해 말이면 100회를 돌파한다. 9월 들어서 〈아시아 리포트〉는 일본 특집 4부작을 매주 한 편씩 방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국 방송계가 다루지 않은 소재들만 집중 공략하고 있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판 여성 국극 ‘다카라스카’를 필두로 파친코·스모·포르노를 차례로 방영했거나 할 계획이다. 특히 제4편 포르노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포르노 영화 제작 현장을 직접 방문해 촬영했다.

〈아시아 리포트〉 시리즈는 VJ(비디오 저널리스트)가 6㎜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현장성과 기동성을 살려 취재하는 1인 제작 시스템으로 제작된다. 이는 Q채널이 한국 방송 사상 처음 도입한 제작 방식으로, 제작비를 줄이면서도 작품의 질을 높이는 일거 양득 효과를 거두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몰고 온 어려운 제작 여건에서도 Q채널이 종전처럼 20% 안팎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는 것은 그처럼 거품을 뺀 제작 자세에서 비롯된다. 또 Q채널은 올해 들어 수출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외국과 합작해 더욱 뛰어난 작품을 제작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29개 PP 가운데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곳이 39쇼핑(55억원)과 MBN(3억원), Drama·net 세 군데에 지나지 않는 사실은 케이블 TV 업계의 어려운 처지를 잘 말해 준다.

39쇼핑은 95년 8월 개국 당시 경쟁 채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직원 90명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매출 증가에 따라 점차 직원을 늘리며 건실하게 성장해 왔다. IMF 체제 이후에도 직원을 60여 명 채용해 현재 직원 수는 총 4백50명에 달한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쟁 채널과 달리 3단계에 불과한 간결한 결재 라인으로 능률을 높이고, 사업 초기부터 전직원에게 PC를 제공할 정도로 사업 정보화에 주력해 온 덕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39쇼핑은 방송의 모양새보다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물건을 싸게 판다’는 유통 채널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 왔다.

39쇼핑의 모체인 39그룹은 96년 12월 제일방송으로부터 드라마 채널을 인수해 이름을 Drama·net으로 바꾼 뒤, 업계의 비판을 무릅쓰고 줄기차게 흘러간 인기 TV 드라마만 재방영해 흑자를 냈다.

매일경제신문사가 운영하는 MBN은 증권·부동산 등 재테크 정보를 자주 방영해 호응을 얻었다. 평일 저녁 9시20분에 그날의 시황을 분석하는 〈증시 현장〉 같은 프로그램은 직장인들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오는 9월21일부터 다음날 오전 1시에 재방송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경제 뉴스 전문 채널인 MBN 또한 39쇼핑처럼 처음부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지 않은 덕을 보고 있다.

PP­SO­NO 삼각 축 뿌리부터 흔들

하지만 이들 ‘예외적인’ PP를 제외한 대다수 PP는 협소한 광고 시장과 사업 초기의 과잉 투자로 자금난에 허덕여 왔다. 설상 가상으로 지난해 5월 제2차 SO로 지정된 24개 사업 지역에서 다섯 곳을 제외하고는 전송망이 깔리지 않아 케이블 TV 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NO인 한국전력공사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작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 공보처가 주도하여 형성된 케이블 TV의 PP-SO-NO 3분할 독점 체제는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누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PP 처지에서는, 전송 능력이 빈약한 중계 유선 방송국을 통해서라도 프로그램을 공급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하지만 제도적 모순을 풀기 전에 불법 영업으로 부를 축적해 온 중계 유선 방송국의 요구부터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계 유선 방송국은 12개 이하로 제한되어 있는 법정 채널 수를 어겨가며 영업해 왔지만, SO는 독점 채널권만 가졌을 뿐 최근까지 29개 채널을 모두 의무적으로 송출해야 했던 탓에 가격 경쟁력에서 뒤져 왔다(중계 유선 방송료 5천원, 케이블 TV 1만5천원).

케이블 TV와 중계 유선 방송국의 관계 법률이 종합유선방송법과 유선방송관리법으로 이원화한 데서 모든 문제가 비롯했다는 것이 방송계의 중론이다. 이번 정기 국회에 상정될 통합방송법안에는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다루어질 예정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는 두 법률의 단일화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즉각 단일화를, 정보통신부는 단계적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다.

정책 당국이 과거 공보처가 범했던 우를 또다시 되풀이한다면 이제 겨우 싹을 틔우고 있는 케이블 TV는 꽃을 피우기 전에 시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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