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시인 정호승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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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펴낸 정호승 시인
시인 정호승씨(48)의 시는 모두 사랑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79년)에서 시작해 다섯 번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97년)를 거쳐 최근에 나온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를 관통하는 풀이말(키워드)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사랑에 대한 탐구는 그에게 여전한 숙제이다.

정시인의 사랑법은 시대와 적절하게 호흡을 맞추어 왔다. 정치·경제에서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지는 사랑, 곧 ‘우리’와 ‘전체’에 대한 사랑이 70∼80년대식 사랑이었다면, 90년대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90년대 중반을 넘어 잇달아 펴낸 두 시집에서 좀더 선명하고 본질적인 사랑법을 읽을 수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는 지난번 시집에서 보인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와 같은 다소 거칠고 자기 파괴적인 흔들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해 사랑의 본질을 탐색한다. ‘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뻗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서로 평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정동진>). 시인이 마주한 사랑의 참모습이란 이토록 고통스럽다. 대상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만 있을 뿐 대상과의 완전한 합일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사람은 외롭다.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결혼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반지의 의미>). 그러나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사랑이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기는 하지만, 그 속성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수선화에게>)라고.

시인은 사랑하다 맞닥뜨린 외로움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아가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내가 사랑한 사람>)라며 그 사랑의 상처를 담담하게 어루만진다. 상처 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던 마더 테레사의 사진 한 장을 ‘시를 쓰는 내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명의 근원, 삶의 근원 같은 그 사랑에는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이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친구 간의 사랑이든 희생의 본질이 많이 드러날수록 성숙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시인이 파악한 사랑의 본질은 결국 자기 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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