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선 선]<인간과 기계: 테크놀로지 아트>전
  • 崔泰晩 (미술 평론가) ()
  • 승인 1995.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과 기계: 테크놀로지 아트> 6월2일 ~7월8일. 동아갤러리(02-778-4872)
첨단 전자공학의 발달로 시각 이미지 복제와 확대 재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미술가들이 붓과 조각칼 대신 컴퓨터 키보드와 비디오 카메라로 작업한 지 오래이다.

이른바 테크놀로지 아트의 확산은 회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라는 전통적인 장르 개념을 해체하고, 예술을 에워싸고 있던 유일성·독창성·진품성 같은 고전적 이데올로기를 무력하게 만들어 놓았다.

아울러 테크놀로지 아트는 관람객의 예술 수용 자세마저 관조로부터 참여(상호 작용)의 형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를테면 백남준은 자동제어 장치에 의해 스스로 연주하는 피아노 옆에 관객들이 비디오 카메라를 놓고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출품하였다.

나아가 미국의 앨랜 벌리너 같은 작가는 마치 약장이나 도서카드함 같은 서랍장의 서랍을 열면, 그것에 붙어 있는 라벨 속의 새소리가 흘러나오게 하여 자연이 연주하는 심포니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자동제어 카메라 앞에 서면 렌즈 대신 달린 스피커에서 사진을 찍을 때 자세를 교정하라고 주문하는 말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전자통신을 이용해 관람객이 직접 영상을 조작할 수 있게 한 작품도 있다.

또한 비디오 영사기가 투사한 영상이 꼭두각시와 같은 인형의 얼굴에 표정을 부여하는가 하면, 컴퓨터에 제어된 영상과 음향이 단 몇 초의 오차도 없이 휘황하게 멀티비전 속에 아로새겨진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관람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테크놀로지 아트는 `‘예술과 기계공학은 서로 무관하다’는 통념을 불식하는 것은 물론 이런 경향의 작업이 단순히 재미있는 장난감 수준을 벗어나 미래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상과 음향들은 예술가의 직관·재능·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디지털 언어, 즉 숫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예술 창작과 수용에서도 기계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상당한 중요성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전자오락을 통해 기계와 친숙해진 세대들이 일상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며 성장했을 경우를 가정해 볼 때, 상당한 부분의 예술 행위나 오락이 기계와의 대화(on-off, input-output)를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백남준과 김홍희가 기획하고, 서울·뉴욕·뒤셀도르프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미국인 작가 19명이 참여하는 <인간과 기계>전은 예술과 기계공학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흥미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술 면에서 뒤떨어지고 상상력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국내 테크놀로지 아트 수준을 엿보게 만드는 전시라는 점에서 약간은 속상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