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공연윤리위원회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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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륜, 심의 비리 사건 계기로 위상 흔들려…“민간 심의 기구로 전환해야”
영화·비디오 심의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공연윤리위원회(공륜·위원장 윤상철) 사무국 간부 3명과 심의위원 1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공륜의 존폐 여부와 심의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공륜의 부패가 공공연하게 회자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경찰과 검찰의 내사설도 끊임없이 나돌았다. 하지만 공륜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비리가 표면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실제로 1년 전 사무국 공채 1기들이 불합리한 직급 문제를 제기해 공륜 내부가 소란스러웠을 때도 경찰청은 비리를 내사하다가 뚜렷한 물증이 없다며 흐지부지 끝내고 말았다.

공륜은 공연법 제25조 3항에 근거해 76년 설립됐다. 문화체육부가 위촉하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임기 3년의 위원회가 구성되고 그 아래 전문심의위원회 6개가 분야별 심의를 담당한다. 위원장 아래로는 사무국이 설치돼 위원회의 심의 업무를 보조한다(도표 참조).

현재 공륜 업무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분야는 영화와 비디오 심의다. 예전에는 가요·음반 심의의 비중이 높았으나 2년 전 가수 정태춘씨가 ‘음반 사전 심의는 위헌’임을 주장해 파문이 인 이후로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다. 무대 공연물은 미성년자 관람가 연극이나 외국인 공연만이 심의 대상이고, 광고물 심의는 광고 포스터나 팜플렛만을 대상으로 해 그 역할이 미미하다. CD롬 타이틀이나 게임기를 심의하는 새 영상 분야는 아직 개념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영화·비디오 심의와 관련해 제기된 공륜에 대한 비판은 그 역사만큼이나 길다. 때로는 가위질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심의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이유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비난은 대부분 ‘일관성 없는 심의 기준’으로 시작되어 ‘공륜 폐지론’으로 이어졌다.

“영상물 사전 심의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창작 활동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공륜은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영상물을 정치·사회적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설립한 기구로, 그동안 심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검열을 행해 왔다. 문민 정부가 들어선 이제는 공륜을 폐지해야 한다. ” 영화 관계자들이 일관되게 외쳐온 주장이다.

‘봐주기’ 보장된 심의 체제

그러나 심의 제도 개선에 관한 여러 차례의 주제 발표와 토론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매번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장 최근에는 폭력 영화 <내추럴 본 킬러>와 일본색이 강한 <가정교사>, <쇼군 마에다> 를 수입 허가한 것이 문제가 돼 김동호 전 위원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공륜은 법에 근거한 정당한 기구’라는 것이 문화체육부의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문체부가 해당 부서의 인사 적체를 해소할 수 있고, 모든 영상물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륜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말한다.

이번 공륜 직원의 비리 사건은 공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선 심의에 대한 사무국 직원의 지나친 개입이다. 현재 각 전문 심의위원회에는 사무국의 담당 부장이 간사로 참여한다. 위원들을 보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날로 늘어나는 심의 물량을 한정된 심의위원이 모두 소화해 내기 어려워지면서 간사가 올린 안건을 중심으로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현재 공륜은 연간 영화 천여 편, 비디오 6천여 편을 심의한다). 결과적으로 담당 부장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다. 봐주고 싶은 작품은 적극 변호하거나 아예 문제점을 심의 안건에서 제외하면 된다. 봐줄 작품을 성향이 더 개방적인 위원에게 배당하는 방법도 있다.

외화 수입 때 문제가 심각할 경우에는 ‘테이프 불량’이라는 이유를 들어 심의를 보류하기도 한다. 수입 심의에서 한번 반려되면 1년이 지나야 다시 수입 신청을 할 수 있으므로 잠시 보류했다 문제점을 수정한 후 바로 심의를 통과하게 해주는 것이다. 한번 보류된 작품을 제목만 바꿔 다시 신청했을 때 모른 척 통과시킬 수도 있다.

업자들에게는 폭력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얼마나 잘리느냐, 또한 ‘중고등학생 관람 가’를 받느냐 그 이상 등급을 받느냐가 흥행의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따라서 업자들로서는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심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완전 등급제 도입해 민간 자율에 맡겨야”

심의 결과를 사후 처리하는 데서도 공백은 드러난다. ‘삭제’명령이야 어쩔 수 없지만 대본에 ‘화면 단축’식으로 애매하게 표현되는 심의 결과는 공륜에 소속된 영사기사 마음대로다. 10초를 잘라도 되고 5분을 잘라도 된다. 추석이나 방학 등 영화 상영 시기를 잡아놓고 빠른 심의를 부탁하기 위해 로비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급행료’라고 하는데, 이번에 적발된 <황비홍2>나 <다이하드3>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원칙 심의에 따른 자의적 판단 개입, 과다한 심의량, 위원들의 무성의한 심의와 책임 회피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윤상철 위원장은 서둘러 개선안을 발표했다. 간부들의 부정을 막기 위해 보직 순환 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분야별 2~3명인 상근 심의위원을 9월부터 2배로 늘리며, 전문 심의위원을 지명도보다 전문성 위주로 임명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또한 심의 절차도 다단계로 하고, 완전 등급제는 어렵지만 가능한 한 내용 삭제보다 작품의 관람 등급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번 기회에 공륜의 위상과 심의 제도 개선에 대한 완벽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소 공륜 폐지를 주장해온 정지영 감독은 “작품은 그대로 두고 등급만 구분해, 폭력과 섹스 장면이 많은 작품은 X등급으로 표시해 상영관과 광고를 제한하는 완전 등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완전히 독립된 민간 심의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재 심의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영화 평론가의 의견도 동일하다. “그동안 공륜은 조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권위를 누려 왔다. 특히 방송사라는 거대 조직을 상대하는 방송위원회와 달리 공륜은 보따리 장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중소업체들의 생존권을 쥐고 있어 비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공륜이 제시한 개선안은 실효성이 없어 그대로라면 백일 이내에 다시 썩을 것이다. 영화인들의 창작과 수입에 완전한 자유를 주고,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당장 민간 심의 기구를 구성하고 완전 등급제를 실시하자는 영화계 의견에는 다소 거부감을 보인다. “영화인들 자신이 비리의 한 주역이면서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공륜의 역할을 수입 심의나 표절 판정 등에 국한하고 내부를 적극적으로 개혁해 나가면서 점차 민간 심의 기구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온건 개혁파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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