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한국 3대 문학상, 영광인가 굴레인가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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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둘러싸고 작가·출판사 갈등 조짐
작가에게 문학상을 준 출판사가 상금을 지급한 대가로 수상 작가의 저작권까지 가져도 되는 것일까.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을 둘러싸고 문단과 일부 출판사 사이에 내연해 온 갈등이 표면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건은 출판사 가람기획(대표 이광식)이 지난 6월 〈한국 3대 문학상 수상 소설집〉 1∼3권을 발간하면서 비롯되었다. 3대 문학상이란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이상문학상, 조선일보사의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사의 현대문학상을 가리킨다.

<3대 문학상 수상 소설집> 출판이 도화선

3대 문학상 소설집이 발간되자 문학사상사·조선일보사·현대문학사(3사)는 7월 초, 가람기획에 이 소설집을 전량 회수해 폐기 처분할 것을 요구하는 경고장을 발송했다. 가람기획이 3사가 갖고 있는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가람기획은 3사의 경고장에 아랑곳없이 오히려 7월15일 소설집 4∼7권을 추가 발행해 당초 계획대로 전 7권을 완간했다. 가람기획은 수상 작가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 정당한 대가를 치렀고, 93년까지 수상한 소설들만 수록했으므로 3사의 출판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문화관광부 저작권과에 따르면, 저작재산권(저작권)은 일단 권리를 양도하고 나면 계약 내용이 아무리 불합리한 것이더라도 이를 번복할 수 없다. 일반적인 재산권은 당사자끼리 계약을 맺었어도 그 내용이 민법 상의 강행 규정에 위배될 경우 무효 처리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작 재산권은 민법 상의 강행 규정이 전혀 없어 사기나 협박 등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면, 특히 서면 계약은 번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구두 계약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계약 당사자들의 주장이 맞서게 되면 판단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3사의 주장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조선일보사와 현대문학사는 물론이고, 문학사상사 또한 86년 제10회 이상문학상 이전에는 서면 계약서를 받아놓은 예가 없기 때문이다. 가람기획에 대한 공세를 주도하고 있는 문학사상사만이 제10회 이상문학상을 시행할 때부터 ‘저작권을 양도받는다’는 규정이 적시된 ‘이상문학상 수상 수락 및 동 규정 동의서’를 작가들로부터 직접 받아 왔다.

한편 문학사상사는 서면 계약서가 없더라도 저작권은 3사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3사가 작가들로부터 별다른 이의 제기를 받지 않고 독점적으로 수상 작품집을 출판해 왔으므로, 이는 민법 제106조의 ‘사실인 관습’에 따라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고 있는 경우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많은 수상 작가들이 문학사상사의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는 ‘작가들이 귀사로부터 정당한 저작권료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면서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7월15일 문학사상사 측에 발송했다. 이 협회에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14명이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서울의 달빛 0장〉으로 77년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상금 1백50만원을 받았던 소설가 김승옥씨는, 당시 문학사상사 발행인이었던 이어령씨로부터 ‘수상 작품집 게재료는 따로 못 주겠으니 상금을 게재료로 알고 받으라’는 말을 들었을 뿐, 저작권까지 갖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들은 대부분 저작권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알고 있다. 수상 동의서에 서명한 작가들 역시 ‘문학사상사에 저작권과 출판권을 양도한다’는 규정을 보면서 출판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쳐 버린 듯하다.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91년 제15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조성기씨. 법과대학 출신인 그도 수상 동의서에 서명했지만 최근까지 수상작 저작권이 자신에게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조씨는 “작가가 상금 받았다고 저작권까지 넘겨주는 예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는가. 만일 그런 의도로 출판사가 동의서를 받았다면 그같은 동의서는 원천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수상 동의서를 작성하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수상 동의서에는 수상 작품집이 나온 뒤 3년 이내에는 수상 작가조차 자신의 작품집에 수상작을 넣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 이 동의서에는 수상 작가는 상을 받은 뒤 발표할 첫 창작집이나 장편 소설을 문학사상사에서 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문학상 거부하고 싶었다”

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제1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이문열씨는 수상 동의서에도 아랑곳없이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소설집을 발간했다. 문학사상사는 이 소설이 사진을 삽입한 ‘포토 소설’이어서 발행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이문열씨의 말은 다르다. 그는 문학사상사측이 ‘계약 위반’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운운했지만 ‘할 테면 해보라’고 맞섰다고 밝혔다.

수상 당시에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문열씨는 수상 사실을 접하고 승낙했을 때 미국에 있었다. 이씨는 귀국한 뒤 문학사상사가 내민 수상 동의서를 처음 보고는 “그 자리에서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수상을 거부하면 10년 넘게 전통을 쌓아 가고 있는 상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서명했다”고 회상했다.

〈숨은 꽃〉으로 92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양귀자씨는 수상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야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의서 규정들이 작가에게 너무 굴레를 씌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용을 일부 수정한 뒤에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상업성 때문에 이상문학상을 제정한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문학사상사 임홍빈 회장은 “일부 사람들이 상업주의라고 비판하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상업주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잘 팔리지도 않는 단편 소설집을 이만큼 성장시킬 수 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임회장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또 그가 문학사상사를 인수한 뒤 이상문학상을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키워온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문학사상사보다 결코 넉넉한 살림을 꾸려간다고 볼 수 없는 ‘문학동네’나 ‘21세기문학’ 같은 출판사도 자사가 제정한 문학상을 받은 작가에게 상금과 작품집 인세를 모두 지급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만난 한 독자는 “작가들을 위해 문예진흥기금을 내는 심정으로 매번 그 해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수상 작품집이 많이 팔리는 이유가 출판사의 공만은 아닌 것이다.

가람기획이 발간해 문제가 된 〈한국 3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대한 문단과 출판계의 여론은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가람기획이 3사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문학상을 주관해 온 3사의 양해 없이 출판을 강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많은 작가들이 굴욕감을 느끼면서까지 수상 동의서에 묵묵히 서명해 온 사실 또한 바람직한 일만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문학상을 내세워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을 볼모로 잡으려 한다면, 문학상이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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