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동심 설 자리 없는 연극 무대
  • 吳允鉉 기자 ()
  • 승인 199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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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극, 내용·구성 등 총체적 수준 미달… 전용 극장·정부 지원 절실
8월25일 점심 무렵.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아동극 한 편이 무대에 올랐다. 내용은 간단했다. 한 꾀많은 머슴이 못된 주인의 눈을 피해 이웃 도령과 주인의 조카딸을 결혼시킨다. 그 과정에서 머슴은 주인에게 구박을 받기도 하고, 사자로 변한 산신령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 연극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우스운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아이들을 웃긴다는 점이다. 극을 재미있게 연출해 관객을 웃기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나 질 낮은 연기로 억지 웃음을 이끌어내는 일은 마땅치 않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 연극은 무대 장치나 소품도 엉성하고, 극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춤과 노래도 기대 이하였다. 극의 내용이 짜임새가 없고 조명이 너무 어두워 어린이들의 주의력을 한 시간 동안 사로잡지도 못했다. 특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머슴에게 옷을 빼앗긴 출연자가 극이 끝날 때까지 긴 속옷만 입고 연기한 부분이었다. 그 옆 다른 소극장에서 공연된 다른 작품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한국 아동극의 문제는 안타깝게도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아동극 관계자들은 전문 배우와 전문 아동극 작가 부재, 열악한 재정을 큰 문제점으로 꼽으면서 “그러다 보니 어린이들의 감수성에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 아동극의 현주소를 살피다 보면 문제점이 너무 많아 아동극을 더 짜임새 있고 재미있게 만들려는 연극인들의 노력이 헛된 꿈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동극의 발전을 위해 한국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고 있는 ‘제4회 서울 어린이 연극제’(8월21일∼9월3일)를 보면서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우수작으로 뽑혀 공연되거나 공연될 작품은 교육 극단 사다리의 <은혜를 갚은 호랑이>, 극단 영의 <바우전>, 극단 안데르센의 <알라딘>, 바탕골어린이극단의 <개구쟁이와 마법사>이다. 이들 네 작품은 작년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 공연된 아동극 가운데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심사 대상에 오른 13편 중 우리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무대 미술과 소도구도 극 내용과 잘 어울렸다. <은혜를 갚은 호랑이>와 <바우전>은 북·장구·징·꽹과리를 써서 마당극처럼 진행했는데 어린 관객들의 호응도가 비교적 높았다. 또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성력도 어린이들이 긴장과 호기심을 늦추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편이었다. 배우들도 아동극만을 고집하는 배우가 많이 출연해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이 극들도 어린이들을 웃기려는 과장 몸짓과 표정이 더러 보였다.

우리 전설 극화한 일본 극단에 충격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온 연극 평론가 김미도씨도 이번에 공연된 작품을 “수준이 비교적 뛰어난 편이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력, 무대 미술·의상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 연출자들의 상상력과 조명·음악이 처진다면서, 그러한 점을 보완한다면 ‘정상급’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김미도씨는 완성도가 높은 아동극으로, 지난 8월17~19일 서울 창무포스트 소극장에서 서울 어린이 연극제 행사의 하나로 공연된 일본 도모시비 극단의 <금강산 호랑이 물리치기>를 예로 들었다. 다른 아동극 관계자는 그 작품을 본 소감을 “그저 놀랍다”고 말했다. 일본 극단이 우리 전설을 극화한 것과, 사물놀이와 민요 가락을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했나 하는 반성과 함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도모시비 극단은 그 작품을 10년 넘게 공연했다. 우리도 연륜이 짧아서 그렇지 꾸준히 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30여 아동 극단이 있지만 모두 역사가 10년도 안된다. 역사가 짧다 보니 이들은 앞서 지적한 문제점말고도, 아동극에 관한 연구나 정보가 미흡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아동극 수준이 ‘유치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도 아동 극단의 역사가 짧은 데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재미있고 유익한 아동극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어린이들이 연극을 통해 현실 너머로 또 다른 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연극을 통해 화술과 언어의 리듬을 배우고 무용과 미술과 음악이 어울려 이루어낸 조화로움을 만나고, 무대 속으로 들어가 나비도 되고 마법사도 되면서 상상력을 키운다. 아동 극단은 한편의 극을 통해 어린이들의 이런 감성을 채워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동 극단 밖에도 문제는 산재해 있다. 먼저, 성인극만 지원하는 정부의 연극 정책이다. 우수 아동 극단을 지원하고, 어린이들이 연극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어린이 전용 극장도 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에는 아동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장이 있지만 소극장 일색인 데다 공연 시간대가 점심 무렵이어서 관객은 거의가 유치원생이다. 결국 국민학생만 되면 아동극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전용 극장이 생기면 자연히 국립 어린이 극단도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동극 수준도 높아지고 어린이들끼리 연극 경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동 전문가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붙박혀 호기심과 놀이를 잃어버린 어린이들에게 연극은 훌륭한 예술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을 어두컴컴한 방안으로부터 밝은 무대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나서서 아동극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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