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실] 가수의 잇단 죽음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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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줄초상, ‘한 건’ 노리는 기형적 연예 구조에 경종
정글의 법칙은 유일하다.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김성재(23)의 의문사와 서지원(20) 김광석(32)의 자살, 그리고 인기 그룹 룰라의 리더 이상민(23)의 자살 미수로 가요계는 ‘기가 막혀’ 있다. 정글의 법칙 앞에서 스러져 간, 한국 가요 사상 유례가 없는 죽음의 행렬 앞에서 충격과 허탈감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가요계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가수들의 죽음은 한 10대 팬의 동반 자살로 이어졌다. 가요계 내부에서 번지고 있는 ‘다음은 누구 아니냐’라는 이상 심리 현상도 염려스럽지만, 이같은 사태가 10대들의 충동 심리를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더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중 문화의 생산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문화의 주요 소비자인 10대들과 곧바로 연관된다. ‘문화 산업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한 징후인 것이다.

충격과 허탈감을 추스르면서 가요계는 가요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고인이 된 가수 개개인의 문제로 돌린다면 ‘가십’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가요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기형적인 가요 산업 구조가 부른 ‘산업 재해’라고 이해한다.

한국 가요 산업의 기형적 구조란 단순하다. 한마디로 노래는 있되 인기 곡만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인기 곡도 댄스 뮤직 일색이다. 음반 구매층이 10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수는 있되 댄스 가수만 있고, 팬이 있되 10대 팬만 있는 기형적 구조가 지배하는 것이다. 한 팝 칼럼니스트는 “댄스 뮤직 독주 현상이 가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까지 말했다.

가수·매니저, 서로를 수단화·소모품화

가요계는 정글로 보인다(<정글 스토리>라는 록 영화가 한창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가요계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글이 아니다. 정글이 정글이기 위해서는 강자도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약자도 살아야 한다. 피라미드 구조와 같은 ‘먹이 사슬’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가요 정글에는 몇몇 맹금류만 존재한다. 그 맹금류는 인간을 우선하기보다 이윤이 발생하는 상품을 최고 가치로 삼는 문화 산업 논리를 부모로 한 사생아들이다.

“한 가지 상품만 유통되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이 시장은 천민 자본주의의 시장이고 그래서 매우 위험하다”고 앞의 팝 칼럼니스트는 비판했다. 공생과 공존이 배제된 시장 구조는 더 이상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작사가·작곡가·가수·매니저 등 인간이 아닌 기능들만이 삼엄한 경쟁 논리에 따라 가동된다.

한국의 가요 시장은, 93년 국제음반연맹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천7백억원으로 세계 11위이다. 나아가 가요계는 세계 7위라고 주장한다. 불법 음반 시장을 합하면 국내 음반 시장은 연 4천억원에 달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다음이라는 것이다. 덩지로 보면 선진국 못지 않지만 그 내용은 후진적이다.

매년 천여 장의 음반이 새로 쏟아져 나오지만, 이른바 ‘뜨는’ 음반은 고작 10여 장을 넘지 않는다. 천여 명(그룹)이 정글의 정상에 도전하지만 겨우 10여 명(그룹)만이 성공한다. 매니저 경력 10년인 ㅂ씨는 “수천 명이 나누어 먹어야 할 음식을 몇몇 극소수가 독식하는 형국이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요 정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부에 부를 쌓는 맹수들은 그 부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10대들과 영합하고, 빈익빈에 시달리는 약자들은 주류에 한 번 편승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댄스 뮤직이 독주하고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94쪽 관련 기사 참조).

한국 가요가 가요 산업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조용필이 출현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까지 가수는 ‘딴따라’로 불렸고, 음반 시장도 작고 단순했다. 70년대까지 가수는 아직 상품이 아니었고 시장은 산업 논리와는 거의 무관했다.

조용필 이후 가요 시장은 86년 이문세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국내 대중 음악의 중심 축이 미국 팝 뮤직에서 국내 가요로 이동한 것이다. 90년대 들어 서태지와아이들이 파격적인 노랫말과 리듬, 새로운 춤을 들고 나오면서 가요 시장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10대 팬들이 가요 시장을 완전 장악했으며, 주류 음악의 장르가 뚜렸해졌다.

가요 산업 구조가 기우뚱거리게 된 원인으로는 우선 ‘매니저는 있지만 매니지먼트는 없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가요 시장은 엄청나게 불어났지만 가요 매니지먼트는 아직도 주먹구구다. 확고한 음악 철학과 고집을 가진 매니저보다는 비뚤어진 상업주의, 즉 한탕주의에 매몰된 매니저가 훨씬 많다.

새로운 기획과 신인 발굴, 음반 제작·생산·홍보, 가수 관리 등 저마다의 기능이 전문화·과학화·체계화해 협력 관계를 이룰 때 매니지먼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가요 매니저들은 저렇게 다양한 기능을 혼자 도맡는다. 그것도 ‘온정주의’와 ‘대충주의’에 바탕을 두고. 그러니 매니지먼트를 로비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상업주의 앞에서 매니저와 스타가 되려는 신인 가수는 서로를 수단화·소모품화하기 십상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번 떠야 하는 것이다.
“정작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매니저”

그러나 매니저 처지에서 보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작 자살해야 할 사람은 매니저들이라고 한 매니저는 말했다. 매니저가 더 커다랗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한 매니저의 ‘영업 장부’를 들여다보자.

신인을 발굴해 음반 한 장을 제작하는 데 드는 돈은 대략 1억2천만~3천만원이다. 제작비 5천만원, 홍보비 5천만원에다 음반이 완성되기까지 사무실 운영비가 월 3백만원, 차량 유지비 2백만원 정도 들어간다. 보통 신인의 음반 한 장 제작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댄스 뮤직을 하는 가수라면 여기에 안무비로 월 2백만원이 들어가고, 대개 가수 자신의 부담이지만 의상비, 여자 가수인 경우 성형 수술비가 더 있어야 한다.

음반이 나오면 매니저는 방송국 7개와 주요 일간지, 주요 주·월간지, 그리고 케이블 텔레비전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홍보해야 한다. 만나야 할 PD만 약 2백여 명, 기자들까지 합하면 3백 명이 넘는다. 하루에 30~40명을 만날 때도 있다. 이같은 고단함도 연속적인 실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한두 번 실패하다 보면 빚을 얻을 수밖에 없는데, ‘한 건 터지지 않으면’ 도망자로 전락한다. 이 생존 문제 앞에서 장르 다양화나 창작의 도덕성, 대중 문화의 건강성 따위는 보이지조차 않는다.

댄스 음악 패권주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매니저 아래서 ‘쨍하고 해 뜰 날’만을 기다리는 가수들의 불안·초조는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스타의 자리에 올라선 가수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가속도를 내야만 한다. 팬들이 자신을 정상으로 올려놓았지만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팬들이란 얼마나 냉혹하고 무서운 존재인가. ‘나 이제 알아, 혼자 된 기분을’이란 노랫말로 인기 정상에 올랐다가 표절 시비에 휘말린 룰라는 “여론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고 토로한 바 있다. 스타는 ‘혼자된 기분’을 상상하지 못한다.

요즘 20대 가수들은 선배인 30대 이상 가수들과는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30대 이상, 그러니까 10년 넘게 가수로 활동해온 가수들이 ‘노래가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가수가 되었고, 그래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반면, 요즘 일부 신인들은 음악보다는 부와 인기에 비중을 두고 있다. 문화 논리에서 문화 산업 논리로 이동했다는 한 증좌이다.

음악인이기보다는 대중 스타이기를 원하는 신인 가수는 순식간에 형성된 인기를 관리하지 못한다. 이나미씨(이나미 신경정신과의원 원장)는 “20세 전후에 돈과 인기를 거머쥐기는 무리다.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기 주기가 1년에서 6개월로, 다시 3개월로 급격하게 단축되는 것에도 적응하기 어렵다. 인기를 얻는 순간 새로운 ‘상품’을 준비해야 한다.

팬과 가수를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문화 산업 논리)은 정상에 있는 스타는 물론, 스타 지망생을 항상 스트레스 속에 몰아넣는다. 불안·초조·강박증·조울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스타이기를 원하는 순간, 그들은 자연인으로서의 권리(익명성)를 박탈당한다. 자연인과 스타 사이에서 이중적·분열증적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 대중 음악이 문화 산업 논리에 완전히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 인문주의의 말투를 빌린다면, 이번 사태는 문화 산업 논리의 차가움을 드러내면서 새삼 문화 논리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문화 자체를 상품화하는 문화 산업 논리 안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모두 소모품인 것이다. 고인이 된 젊은 가수들을 위한 진혼곡, 대중 문화 발전을 위한 응원가는 문화 산업 논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문화의 논리 위에서 새로 작곡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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