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묵시론 행상들’은 들어라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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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의 문화 비평서 두 권 출간… 지식인에게 일침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1932~)의 문화 비평서 2종이 최근 동시에 출간되었다. 소설가 원재길씨가 우리말로 옮긴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열린책들)과,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안수진씨가 번역하고 ‘에코 전문가’인 조형준씨가 해설을 붙인 <소크라테스 스트립쇼를 보다>(새물결)가 그것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 등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에코는 학자와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다. 인간의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기호 체계의 조직화와 관련된 문제들을 아카데미즘 안에서 집중 연구해오면서 에코는 당대 문명과 문화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간섭해 왔다.

독자를 키득거리게 하는 현란한 비평

특히 <소크라테스…>는 최근 국내 지식인 사회 일부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문화 비평’에 일침을 가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에코는 오늘날의 지식인들, 이른바 문화를 비평하는 지식인들에게 ‘혹시 당신들 살라만카의 학자들이 아닌가’라는 혐의를 둔다.

살라만카 학자들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직전 당대를 지배하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출현하여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재빨리 변신했다. 콜럼버스의 발견을 도덕적·문화적으로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매도하면서 뒤로는 아메리카 전문가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살아 남아야 했던 것이다.

에코가 본 30년 전 유럽 지식인은 저 살라만카의 학자들이었다. 인간에 대해 새롭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대신, 구태의연한 지식을 무기로 삼아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적대시하는 ‘묵시론 행상들’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에코의 비판 앞에서 묵시론을 좌판에다 늘어놓고 있는 이 땅의 지식인들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은 ‘마라도나의 드리블’과 같은 에코의 경쾌함이 잘 드러난 책이다. 휴대 전화에서 팩시밀리, 포르노 영화, 축구와 같은 문화 현실을 분석하는 그의 눈은 망원경이면서 동시에 현미경이다.

그의 현란한 문화 비평은 독자를 키득거리게 한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예리한 칼날이 숨어 있다. 예컨대 팩시밀리를 해부하는 글에서 에코는 ‘과학 기술에는 냉혹한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부자들이 단독으로 사용할 때는 제대로 작동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손대게 되면 작동을 멈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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