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출판]<프랑스 지식인 사전:인물·장소·사건>
  • 파리·高宗錫 편집위원 ()
  • 승인 1996.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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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식인 사전:인물·장소·사건> 출간… 드레퓌스 사건 이후의 격동과 논쟁 수록
<프랑스 지식인 사전:인물·장소·사건>이라는, 재는 체하는 제목의 사전이 파리 쇠이유 출판사에서 나왔다. 온갖 학문 분야의 전문 용어 사전에서부터 욕 사전에 이르기까지 사전 편찬에 병적으로 집착해온 프랑스 출판계에서도 지식인 사전 출간은 각별히 뜻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르나르 피보가 진행하는 프랑스 제2 텔레비전의 <부용 드 퀼튀르>를 포함한 라디오·텔레비전의 여러 문화 코너가 이 사전 출간을 계기로 지식인의 의미에 대한 좌담을 열고 있고, 프랑스 지식인들의 전통적 동지였던 신문·잡지에서도 이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사전은 너무나 프랑스적이다. 그 말은 ‘지식인 사전’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프랑스가 아니고서는 나오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지식인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앵텔렉튀엘’이 프랑스 지정사·정치사회사를 통해 특수한 의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앵텔렉튀엘은 ‘무책임한 선동가’인가

1급 교육과 탐욕스런 독서를 통해 머리 속에 온갖 지식이 갈무리되어 있다고 해서 앵텔렉튀엘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방’이나 ‘에뤼디’라는 프랑스어가 있다. 한 분야 연구에 몰두해 전문가가 되었다고 해서 앵텔렉튀엘인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셰르시외르’라는 말이 있다. 앵텔렉튀엘을 그들과 구별하게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요컨대 앵텔렉튀엘은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하고 참견한다. 졸라나 사르트르나 푸코가 앵텔렉튀엘의 전형이 된 것은 세상에 대한 그런 참견을 통해서다. 그래서 프랑스어에서는 ‘참여’와 ‘지식인’이라는 말이 같은말처럼 들린다. 지식인이 세상사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므로 ‘참여’라는 말이 군더더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좌파 지식인’이라는 말의 ‘좌파’라는 말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우파 지식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그때의 정치 지형에서 보면 지식인들이 대체로 좌파였기 때문이다.

앵텔렉튀엘이라는 말의 역사가 오랜 것은 아니다. 이 사전의 서문에 따르면, 프랑스어 명사 앵텔렉튀엘이 처음 사용된 것은 생 시몽의 <산업 체계에 대하여>(1821)에서였고, 그 말이 대중화한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다. 19세기 말이란 구체적으로 1894년부터 1906년까지 프랑스 여론을 양분한 드레퓌스 사건을 말한다.

소설가 에밀 졸라를 비롯해 알프레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던 작가·예술가·기자·교사·학자 들을 반 드레퓌스파가 앵텔렉튀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런 만큼 이 말에는 경멸적인 뜻이 담겨 있었다. 이 말은 아직까지도 가끔씩은 ‘현실로부터 유리된 이상주의자’ ‘무책임한 선동가’라는 부정적 뜻이 담겨 사용된다.

아무튼 앵텔렉튀엘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이 생 시몽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금의 의미로 대중화한 것은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였으므로, 드레퓌스 사건이 ‘지식인’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일반론은 정당하다. 그 덕분에 <나는 고발한다>를 집필한 졸라는 최초의 지식인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학교의 역사학 교수 자크 쥘리아르와 파리 정치학교 역사학 교수 미셸 위노크가 편집 책임을 맡아 3백여 소장 연구자들이 집필에 참가한 <프랑스 지식인 사전:인물·장소·사건>은 8백여 항목을 표제어로 내세워 프랑스 지식인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탄생하기 이전 역사를 이 사전이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전에 등장하는 인물·장소·사건 들은 ‘지식인 사전’이라는 표제에 걸맞게 대체로 드레퓌스 사건 이후의 역사를 다루었다. 그러니까 이 사전은 20세기 프랑스나 세계를 프랑스 지식인을 중심에 두고 기술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 사전인 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반드시 가장 뛰어난 작가이거나 학자이거나 예술가이거나 저널리스트는 아니다. 물론 수록된 인물이 대체로 뛰어난 작가이거나 학자이거나 예술가이거나 저널리스트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이 책에 오른 것은 지식인으로서다.
등장 인물 대부분 좌파이거나 유물론자

이 사전은 제목이 드러내듯, 지식인들의 이름만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활동한 장소와 그들이 연루된 사건을 모아놓았다. 지식인들이 활동하는 주된 장소는 말할 나위 없이 저널과 책과 학교다. <르 몽드> <르 피가로> <리베라시옹> <뤼마니테>를 비롯한 일간지, <렉스프레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르 푸앵> <레벤망 뒤 죄디>를 비롯한 시사 주간지, <레 탕 모데른> <텔켈> <카예 뒤 시네마>를 비롯한 고급 저널의 이름이 이 사전에 표제어로 오른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문학 평론가 베르나르 프랑크가 ‘갈리그라쇠이유’라는 말로 비아냥댄 프랑스 출판계의 권력 갈리마르·그라세·쇠이유 세 출판사를 비롯해 지식인들이 거처로 삼았던 여러 출판사와 대학, 각종 연구소, 파리 고등이공학교·파리 고등사범학교·국립행정학교를 비롯한 특수 학교들, 전위주의의 소굴이었던 문학 카페들, 독일 점령기에 탄생해 해방 후 독일에 협력한 문인을 숙청하는 데 앞장선 ‘전국작가위원회’ 등 수많은 작가·지식인 단체들도 당연히 표제어로 올랐다.

지식인들이 연루된 사건들도 빠질 수 없다. 지식인의 산실이었던 드레퓌스 사건을 비롯해, 독일 점령 하의 금서 사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문인 숙청, 알제리 해방전쟁, 헝가리 사태, 쿠바 혁명, 베트남 전쟁, 모택동 치하의 중국, 그리고 아직도 여진이 남아 있는 유고 내전 등 프랑스 지식인들이 참견하고 논쟁했던 지난 세기 말 이래의 격동들이 이 사전에 모였다.

대부분이 좌파이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유물론자인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이 스탈린이나 모택동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역사적 유물론이란 뒤집어 놓은 관념론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재판을 옹호하는 엘뤼아르가 <연인>을 쓴 시인 엘뤼아르와 동일인임을 확인하는 것은 놀랍고 쓸쓸한 일이다. 파리 한복판 생제르맹데프레의 카페에 앉아서 중국의 문화혁명을 찬양하는 지식인들을 발견하는 것은 구역질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혁명에 환멸을 느끼자마자 극우에 가까운 민족주의자로 선회하는 지식인들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러므로 지식인이라는 말의 탄생기에 ‘반 지식인들’이 그 말에 부여했던 부정적 뉘앙스, 요컨대 무책임함을 부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사르트르가 글렀고 레이몽 아롱이 옳았지만, 그래도 사르트르가 아롱보다 더 지식인적이었고, 그래서 자신은 사르트르를 지지한다는 또 다른 ‘지식인’의 발언은 그런 무책임함의 표현이다.

좋은 뜻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고, 그러므로 최대의 선이 아니라 최소의 악을 목표로 하는 영국식의 소극적 도덕이 프랑스의 주류 지식인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 사전은 깨우친다. 사실 그런 지식인들이 프랑스에 없는 것은 아니다. 앙드레 글뤽스만을 포함해서 이 사전의 꽤 많은 ‘주변적’등장 인물들은 그런 소극적 도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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