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평] 대선 주자 TV토론회의 문제점
  •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 승인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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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위 구성·후보 동시 참여 등 성사되어야 효과 극대화
최근 방송사와 신문사가 공동으로 주최해 대선 (예비) 주자를 상대로 한 토론회가 한창이다. 누군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호기심으로 토론회를 시청하다 보면, 혹시 내가 신한국당 당원용 케이블TV를 보는 것이 아닌지 착각할 때도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보는 대선 주자들을 숨소리까지 들리는 토론회에서 또 마주치니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대선 주자를 상대로 한 토론회는 고비용 선거 구조를 타파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이다. 이제는 과거 ‘체육관’ 선거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밀실에서 권력자가 지명하면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정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비 주자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여는 것에는 부작용과 역효과가 만만치 않다. 토론회 주최자 문제, 사회자와 질문자 선정, 질문 방식과 내용 등 토론회의 모든 것이 비판받고 있다.

가장 자주 지적되는 문제는 정당 후보가 모두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토론회를 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비 주자들은 텔레비전에 자주 출연해 국민에게 은연중 중요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음으로써, 다음 선거에서 공짜 프리미엄을 얻게 되었다. 또한 예비 주자와 대선 후보 합쳐 여당 8명, 야당 2명이 토론회에 나오는데, 여당 출연자가 압도적이어서 이미 불공정한 선거 방송이 시작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요즘 TV 토론회는 알량한 이미지만 전달

또한 KBS·MBC·SBS 세 채널이 10명을 상대로 질문하는 방식의 토론으로는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판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수없이 많은 질문이 쏟아지고, 답변자들은 국민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골라서 말하는 식의 토론회가 거듭되다 보니 ‘저 분은 편한 사람이구나’ 또는 ‘저 사람은 말을 꽤나 못하네’ 하는 정도의 알량한 이미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된다. 별 것도 아닌 문제를 갖고 어쩌다가 실수라도 하면 끝장이다.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 이미지와 인상이 후보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것이 텔레비전 후보 토론회의 최대 약점이다.

이런 종류의 토론회가 처음이어서 토론자의 질문 내용과 방식에도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일부 토론자들은 예비 주자를 제압하려고 하거나, 아예 드러내 놓고 아부하는 식의 질문도 많았다.

특히 잘난 척하기 질문, 한 건 올리기 질문, 무안 주기 질문, 질문자도 모를 것이라 짐작되는 문제를 태연하게 물어보는 나몰라라 질문, 참고 서적 10권을 1주일 내내 보아도 답변하기 어려울 구름 잡기 질문, 주변적이고 비본질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변두리 질문 등을 들 수 있다.

앞서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토론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아직 극소수이다. 처음으로 도입된 대선 토론회인 만큼 법적으로 미비한 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으리라 접어두고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후보의 자질을 판단하는 데 토론회만큼 효과적인 장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첫째, ‘후보 토론회 관리를 위한 국민위원회’(국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는 국민 대표성, 직능 대표성, 이념적·정치적 다원성, 지역성에 따라 구성하고 대신 개별 매체들이 주관하는 토론회는 제한하거나 금하는 것이 좋다. 국민위원회는 토론회를 주관하며 산하에 각계 각층의 대표성과 공정성을 겸비한 인물을 망라한 ‘패널 풀’을 만들어 이들 가운데 질문자를 선정한다면 질문자 선정의 공정성을 둘러싼 잡음도 줄어들 것이다.

둘째, 각당 후보를 시청자들이 비교 평가할 수 있도록 경쟁 후보가 함께 참여하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후보를 따로 초청해 토론하면 그 후보가 어떤지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평가가 곤란하다.

셋째, 선거법·방송법에는 후보 토론회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고, 선거 운동 기간 전에 언론 매체들이 토론회를 여는 것은 사전 선거 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으므로 선거법을 실정에 맞게끔 개정해야 한다.

넷째, 질문 방식과 시간 등 모든 면에서 공평해야 한다. 후보자가 난립하여 토론회 진행이 어렵다면 여론 조사에서 일정한 순위에 오르지 못하거나 지지도가 낮은 사람을 제외하는 등 제한 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후보들의 선거 자금 출처, 집권 후 구체적인 요직 인사안을 공동 질문으로 정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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