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한국관 개관
  • 뉴욕·신성희(자유 기고가) ()
  • 승인 1998.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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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관’ 개관…반만년 역사의 ‘놀라운 예술’ 선보여
세계 문화의 메카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한국 미술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지난 6월9일 시작된 한국관 개관 기념전에서 국보 22점을 포함해 회화 도자기 조각 금속공예 칠기 등 한국 미술 걸작 백 점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 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어 온 교포들에게 이번 개관은 반갑고 흥분할 만한 일이다.

갖가지 구경거리가 많은 뉴욕에서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관광 1번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뉴욕의 박물관들은 딱딱하게 굳은 유물을 소장·전시하는 박제화한 공간만은 아니다. 영화를 상영하고 음악회·강연회를 끊임없이 열어 뉴욕의 수많은 명물들을 제치고 1년에 5백만명이라는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소이다. 관광객 유치 1위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는 바로 이곳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장소가 생겨났다는 것은, 전세계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이 열렸음을 뜻한다.

한국관 개관은 아시아 미술품을 완벽하게 구비하겠다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30년에 걸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필립 드 몬테벨도 관장은 “한국 바깥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의 놀라운 예술적 성취를 여기서 볼 수 있게 되었다”라며, 높은 예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해 온 한국 미술을 구미에 인식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교민과 유학생 들은 한국관이 문을 열자마자 모여들었다. 교민들은 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자녀들과 함께 나와 설명문을 열심히 읽으며 유물을 감상했다. 한국 미술을 처음 접하는 미국인들도 관심이 높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관은 48평으로, 바로 옆에 있는 중국관·일본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한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깔끔하고 환한 정사각형 공간, 천장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자연광 아래에서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작은 공간에서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 관계자들은 적지 않게 고심해야 했다. 5천년의 미술 문화를 어떻게 요약할 것인가. 이같은 고민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아시아미술부 웬풩 자문위원장과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관장, 한국 미술사학자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의 몫이었다. 안휘준 서울대 교수, 이성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김리나 홍익대 교수, 김홍남 이화여대 교수, 박영숙 런던대 교수, 주디스 스미스 아시아미술부 자문위원장 특별보좌역, 서홍경 전시기획보조 등 전시 관계자들은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전반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 예술에 까막눈일 수밖에 없는 구미인들에게는 특별한 주제 없이 전반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할 유물이 골고루 전시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려의 청자, 안 견의 산수화, 국보 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조용한 뜨락·고요한 고궁 같은 전시실

국보를 외국으로 들고 나간다는 데 대해 국내에서 비판이 없지 않았으나, 정양모 관장은 “책임자로서 늘 고심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적인 관례로서 진품을 보여야 전시가 생명력을 얻는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실 디자인은 건축가 우규승씨가 맡았다. 그는 ‘은은한 빛이 쏟아지는 한국의 조용한 뜨락 같은 곳, 밖으로 열려 있으면서도 조용한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체성을 빛에 비유하자면 강렬한 빛이 아니라 창호지로 한번 걸러진 반투명의 은은한 빛이다. 이 빛에 어울리는 소리는 고요함이다.” 그리하여 한국관은 자연을 끌어안음으로써 개방된, 그러나 고요함과 은은함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자연광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게 하되 은은한 느낌을 주기 위해 천장에 낸 창을 얇은 무명천으로 덮었다. 이 때문에 햇살이 고요히 떨어지는 천장 어디쯤에서 포르르 새 소리가 들릴 듯한 고궁 같은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한국관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2층 중앙 계단 오른쪽에 자리잡았다. 입구는 철로 만든 검정색 문이다. 그 디자인은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전시실은 관람객과 유물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도록 설계되어, 관람객들이 그 시대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왕실, 혹은 지체 높은 고관이 썼음직한 큼직한 항아리, 여염집 부엌에서 사용했던 질박한 도자기 들은 한국 예술이 갖는 단순하고도 풍만한 조형미를 듬뿍 담고 있다. 소박한 작품들은 한국관을 돋보이게 했다. 중국관의 거대함, 일본관의 화려함과는 다른 소박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여유를 한국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민들은 좀더 빼어난 작품, 곧 한국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빠졌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 미술 도록> 발간 큰 수확

한국관 개관식에 참석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말대로 ‘아는 것만큼만 느낄 수 있다’면 뉴욕 시민과 관광객 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한국관 개관과 더불어 무엇보다 큰 수확으로 꼽히는 것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발간한 <한국 미술 도록>이다.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영어 책자가 없는 형편에서 이 도록은 비디오·교육 프로그램과 더불어 한국 미술의 높은 수준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기념품이나 엽서를 살 수 없어 매우 아쉬워했다. 요즘 전시에는 반드시 구비해야 할 문화 상품, 곧 한국 미술을 좀더 효과적으로 홍보할 ‘무기’에까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문화재단과 LG그룹이 후원해 이루어진 한국관 전시와 도록 발간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 교포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동안 교포들은 한 민족의 수준이 문화 역량으로 판가름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관 개관은 한국의 경제 사정과 관련해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최근 ‘위기의 나라’로 비친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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