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음악] 70년대 노장 가수들 ‘화려한 컴백’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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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들국화·시인과촌장 등 컴백 성공… 불황·복고 분위기 속 ‘성인 음악’ 부활
그것은 대중 음악계의 사건이었다. 1천 8백53석인 KBS홀. 막이 올랐을 때 2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점잖은 관객들은 편안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등을 뗄 기미를 좀체 보이지 않자 전인권씨가 무대에 주저앉았다. 전씨의 얼굴을 보려고 얼떨결에 일어선 관객들은 그 뒤부터는 열광하느라 앉을 줄을 몰랐다. 90년대 대중 음악 공연장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객석에 있던 가수 강산에 윤도현 권진원 김장훈 들을 불러올려 <행진> <사노라면>을 함께 부르자, 무대와 객석은 말 그대로 하나가 되었다. 함께 온 어린 자녀를 공중으로 번쩍번쩍 치켜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티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여기에서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정말 대단하다.” KBS홀 관계자의 말처럼 지난 6월5∼7일 열린 그룹 들국화 재결성 공연은 사흘 내내 객석이 거의 메워졌다. 성공을 넘어 사건이라고 여겨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정규 앨범 4장을 내고 사라졌던 밴드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들의 공연이 그만큼 큰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전처럼 온몸으로 노래를 부른 전인권씨는 감격했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구나, 본질적인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모습들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새 앨범·콘서트로 댄스 뮤직에 도전장

들국화의 공연은 들국화만의 성공적인 컴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노장 가수들이 ‘새로운 행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지난해 그룹 산울림이 재결성하면서 움튼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들어 붐을 이루고 있다.

시인과촌장이 지난 5월 재결성해 가요계로 복귀했고, 70년대의 듀엣 사월과오월이 최근 <더 메모리즈-추억으로의 여행>이라는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가수 김상희씨가 재즈 음반을 발표하는가 하면, 이미배씨도 새 음반을 발표하면서 라이브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세환씨도 ‘가수로서의 컴백’을 준비 중이다. 게다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대중 음악의 90년대를 열었던 서태지씨가 90년대를 ‘정리’하기 위해 은퇴한 지 2년6개월 만에 5집 음반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대중 음악에서 일고 있는 컴백 붐은 한때 스치고 지나가는 유행, 예전의 향수를 자극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장들이 새 앨범으로 대중 음악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도전장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은, 대중 음악계가 92년을 분수령으로 완전히 재편되어 10대 취향이 아니면 넘보지 못한 ‘댄스 음악의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92년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해 대중 음악의 물줄기를 돌려놓음으로써, 성인 취향의 음악은 시장에서의 지분은커녕 설 자리조차 잃고 말았다. 서태지 자신은 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서태지의 혁명’은 결과적으로 문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획일화를 몰고 왔다.

음반을 내놓으면 시장에서 참패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성인 대중 음악은 거의 궤멸하다시피 했다. 조용필씨 같은 슈퍼스타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온 ‘병든 문화 시장’에서 컴백 붐을 처음 일으킨 것은 70년대 록밴드 산울림이었다. 어느덧 마흔 줄에 접어든 산울림 삼형제는 지난해 3월 그룹 결성 20주년을 계기로 13집 음반 <무지개>를 발표하고 크고 작은 공연을 통해 제2 전성기를 구가했다.

산울림이 일으킨 노장 가수 컴백 붐은 올해 들어 본격화했다. 컴백의 의미는 <가요 무대> 같은 데 등장해 옛노래를 부르며 옛날을 추억하는 차원이 아니다. 화려했던 과거가 컴백의 발판으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노장들은 새 음반을 들고 새로운 모습으로 가요계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오는 7월4∼19일 그들의 고향인 소극장(학전)으로 돌아와 활동을 재개하는 들국화는, 공연이 끝난 다음 바로 새 음반 작업에 착수해 9월께 5집 앨범과 베스트 앨범을 내놓을 참이다.

“함께 늙어가는 ‘우리 세대’ 정서 표현하겠다”

시인과촌장은 지난 5월 컴백 콘서트를 열면서 큰 힘을 얻었다. “사실 처음에는 팬들이 얼마나 호응할까 불안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미처 예상치 못했던 환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시인과촌장의 하덕규씨는 말했다. ‘동시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예술가들이 할 일’이라고 하씨가 밝혔듯이, 컴백하는 노장들의 공통점은, 나이를 함께 먹어 온 대중의 정서에 맞는 곡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70년대 초 <화> <등불> <바다의 여인> <옛 사랑> 등 ‘불멸의 명곡’을 남긴 사월과오월은, 70년대 말의 2기 멤버가 주축이 되어 컴백했다. 77년 백순진·김태풍 씨의 뒤를 이어 <장미>를 히트시켰던 김영진·이지민 씨는 컴백하면서 사월과오월의 면모를 일신했다. CF 가수 출신인 양은희씨와 뮤지컬 가수 이미라씨를 영입해 4인조 혼성 그룹으로 재출범했다. 사월과오월은 최근 <더 메모리즈…>를 발표했는데, 이 음반에서는 <장미> <옛 사랑> <그리워라> <등불> 등 옛 노래들을 다시 불렀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우리를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아름다운 노랫말과 서정성 짙은 선율을 새롭게 들려 주고 싶었다. 내가 감동했던 그 음악을 다른 이들과 함께 즐겨 보자는 게 컴백의 이유이다”라고 김영진씨는 말했다. 사월과오월은 <더 메모리즈…>를 발표하자마자 신곡 앨범 제작에 들어갔으며, 올 여름부터 콘서트 등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다.

신화로 남아 있었거나 대중에게 거의 잊혔던 대중 음악인들이 잇달아 컴백하는 것은 달라진 사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 전반에 복고 분위기가 퍼진 데다가, 대중 음악의 거품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댄스 음악의 활동 거점이었던 공중파 방송들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자 댄스 음악이 주춤했고, 음반 제작자들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IMF 때문에 댄스 음악으로는 안되겠구나, 그렇다면 성인 취향으로 눈을 돌려도 되겠구나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노장들이 컴백할 수 있는 상황은 IMF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라고 한 음반 제작자는 말했다. 구미 팝계를 보면, 불황이 닥치면 언제나 복고 붐이 일었다. 청춘들의 들끓는 열정이 가라앉고, 대중 음악에 대한 향수와 경제력을 가진 성인들이 주된 소비자층으로 떠오르곤 했다.

록·포크 등 ‘장르 다양화’ 이루어질 듯

한국의 경우, 불황과 더불어 수용자들의 욕구가 노장 가수들의 컴백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대중 음악 콘서트장에 발길을 끊었던 성인들이 지난해 산울림 공연을 기점으로 소극장으로 몰려갔고, 조용필·심수봉 씨 등이 공연한 지난해 라이브극장 공연은 전회가 매진되어 공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3월 김상희·최양숙·이금희 씨 들이 공연한 정동극장 콘서트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가 ‘옛것을 돌아보자’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만큼 이같은 경향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외래 문화를 접하면 접할수록 대중의 그같은 욕구는 더 강해질 것이다.”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씨의 말이다. 컴백하는 노장 가수들은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나 음반 판매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다. 거기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될 만한 정신적·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반에 대한 성인 소비자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고려한다면, 노장 가수들의 컴백이 음반 시장의 판도 변화와 금방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의 힘찬 행진은 ‘한 장르의 독과점’으로 몸살을 앓아 온 한국 대중 음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팝 칼럼니스트 임진모씨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음악 문화를 정상화할 수 있는 뜻깊은 시도이다. 컴백하는 뮤지션들은 대중 음악 문법에 댄스와 발라드만 있는 게 아니라 정통 록·포크와 같은 ‘무서운 예외’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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