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광주 비엔날레 감상법
  • 광주·成宇濟 기자 ()
  • 승인 1997.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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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11월27일 ‘지구의 여백’ 주제로 전세계 ‘스타 작가’ 총집결
광주 비엔날레는 아직 겉으로는 조용하다. 광주 시내 곳곳에 광고탑과 광고판만 세워져 있을 뿐 국제적인 잔치를 앞둔 시끌벅적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광주 시민들의 관심이, 가라앉은 지역 경제와‘아시아 자동차 살리기’에 쏠려 있어서만은 아니다. 9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국제 미술 축전의 초점이‘미술의 바깥’보다는‘미술의 안’에 철저하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란한 광고나 구호보다는‘질로 승부한다’는 분위기가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가득하다. 현재 광주 비엔날레의 거점인 중외공원 문화 벨트 안에서는 커미셔너와 작가가 속속 들어와 작품을 설치하는 등 마무리 손질이 한창이다.

1백60만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등 큰 성과를 보였던 95년 광주 비엔날레는, 그 성과 못지 않게 평면적 전시, 조직적이지 못한 운영 등 창설 대회다운 미숙성을 드러냈다. 오는 9월1일부터 11월27일까지 88일 동안 열리는 제2회 대회는 재작년에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우선 주제가 좀더 구체적이다.‘지구의 여백’이라는 주제는 비엔날레의 성격을 뚜렷이했고, 이 주제에 따라 세계의 미술이 한자리에 모인다.
회화에서 퍼포먼스까지 미술 장르 총망라

제2회 광주 비엔날레는 그 주제를 이렇게 설명한다.‘지구의 여백은 현재 지구가 당면해 있는 복잡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왕성하게 작동하고 있는 힘들, 무수한 틈들, 특이점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현대 세계의 막다른 상황에서 의미 있는 예술이라는 여백을 발견하고, 여백을 실천하는, 여백 자체이기 때문이다.’이데올로기·사상·국경 등 서양 문명이 구획한 경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과 접점 들의 중요성을 드러낸 작품들을 모아 그 생생한 힘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지구의 여백은‘속도·물’‘공간·불’‘혼성·나무’‘권력·쇠’‘생성·흙’이라는 소주제 다섯 가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를 놓고 대륙 별로 작가를 선정해 제각기 출품하게 했던 1회와 달리, 올해에는 소주제가 작가 선정 기준이 되었다.“다섯 커미셔너에게 주제를 설명하고 작가들을 선정하도록 했다. 미술이 아니어도 주제에 맞는다면 어떤 장르가 참여해도 좋다고 했다.” 이영철 전시기획실장의 말대로 이번 출품작들은 회화·설치·비디오·사진은 물론 건축 모델·음향 조각·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제2회 광주 비엔날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스타들’이다. 작가는 물론 작가를 선정한 커미셔너도 국제 미술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대가들이다. 스위스 출신으로 57년부터 카셀도큐멘타 등의 주요 전시를 기획하고 올해 리용 비엔날레 전시기획 총감독을 맡은 하랄드 제만(속도·물), 뉴욕의 건축 전문 갤러리 스토어프론트 디렉터로서 국제 학술 회의를 통해 테크놀로지·환경주의·문화와 도시계획 등에 관한 폭넓은 이슈를 다루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박 경(공간·불),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관장 리처드 코살렉(혼성·나무), 제1회 대회 때 남미 지역 커미셔너로 활동한 미술 평론가 성완경(권력·쇠), 95년 퐁피두 센터에서 <여성-남성, 성의 예술>을 기획해 화제를 모았던 프랑스 출신 베르나르 마카데(생성·흙) 등 커미셔너 5명에게는 작가 선정은 물론 전시 공간 설계권까지 주어졌다.
이영철 전시기획실장에 따르면, 다섯 주제는 지난 백년 동안의 현대화 과정을 드러내는 핵심 단어들이다. <속도·물 展>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속도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속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공간·불 展>은 사진·오브제·비디오·드로잉을 통해 세계 24개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기말 지구촌의 단면과 실상을 드러낸다.

<혼성·나무 展>에서는 문화의 전세계적 혼합 양상을 볼 수 있으며, <권력·쇠 展>에서는 드러나 있거나 감추어진 채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그것의 복잡 미묘한 양태를 드러낸 작품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성·흙 展>은 몸과 마음, 사회와 자연 속에서 쉴새없이 작용하면서 만물을 변화시키는 힘이 생성과 변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커미셔너들이 선정한 작가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39개국의 1백17명·8개 단체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브루스 나우만, 요셉 보이스, 빌 비올라, 게리 힐, 이브 클라인, 신디 셔먼, 로즈마리 트로켈, 황용핑, 강익중 등 20세기 말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어도 크게 주목될 만한 작가만 수십 명에 이른다. 특히 베이루트·모스크바·가자 지구·라스베이거스·광동·홍콩·서울 등 세계 24개 지역의 다양한 얼굴들을 보여주는 <공간·불 展>에는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와 이탈리아의 사진가 가브리엘르 바실리코가 참여한다. 제2회 광주 비엔날레의 본전시 국제현대미술전은 말 그대로 스타들의 잔치인 셈이다.

외형을 보면 스타들의 잔치임에 틀림없으나, 올해 광주 비엔날레는 독특한 전시 구성을 통해 작가 개개인의‘빛나는 전시’보다는 소주제 별로 하나의 세계를 연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전시 공학’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전시 공학이란 7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도 실험되고 있는 최신 전시 기법으로, 작가보다는 전시를 만드는 커미셔너(혹은 큐레이터)의 기획력을 더 중시한다. 1회 대회가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작가들에게 배분한 나열식이었다면, 올해 대회는 본전시장인 시립미술관 비엔날레관을 5개로 나누고 그 공간 구성을 커미셔너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방식을 채택했다.

자기가 맡은 주제를 잘 소화할 만한 작가를 선정한 커미셔너들은, 그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을 택해 자기 전시장을 구성한다. 커미셔너는 영화 감독이나 드라마 PD처럼 배우(작가)를 캐스팅하고, 그들에게 주제에 걸맞는 역할을 부여한다. 작가들은 커미셔너가 설정한 스토리에 따라 작품을 배치한다. 따라서 선정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5개 전시장 자체가 커미셔너가 제작한 ‘작품’으로 등장한다.

제2회 광주 비엔날레가 전시 공학이라는 실험적인 전시 기법을 도입한 이유는 관객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광주 비엔날레 엄 혁 국제부장은 “미술을 어렵게 여기는 관람객들의 주눅 든 태도는 바로 작가 중심의 전시에서 연유한다. 전시 공학은 이같은 권위 의식을 깨뜨리고 미술을 민주화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큐레이터가 만든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각 전시장을 흥미롭게 읽고 보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쾌적한 관람 분위기, 곧 관람객들에 대한 배려는 올해 광주 비엔날레가 설정한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두 달 동안 열렸던 1회 때와 달리 전시 기간을 88일로 늘린 데에는 전시를 여유 있게 보게 하자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전시 도록과는 별도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한 작가·작품 해설집을 만들어 제작비만 받고 제공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동서 명작 展>(큐레이터 유준상) 등 5개의 특별전(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이 본전시 못지 않게 관심을 끌 터이지만, 올해 특히 눈길을 끄는 특별전은 <도시의 꿈:공공 미술 프로젝트>이다. 광주라는 도시 환경을 미술로 감싸겠다는 기획이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광주 비엔날레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진행된다.

남도 문화 보여줄 관광 코스도 개발

올해 제작된 대표적인 공공 조형물은 북구 북동에 있는 수창초등학교 방음벽 벽화이다. 길이 1백20m, 높이 4m의 방음벽에다 수창초등학교 어린이 6백명과 학부모·화가 들이 참여해‘내가 미래에 산다면’ ‘내가 원시 시대에 살았다면’이라는 주제로 대형 벽화를 완성했다. <여성의 꿈-조각보 잇기> <송전탑 조형 디자인> 같은 한시적인 환경 조형물들도 있지만, 광주 공항·금남로 등 도시 곳곳에서 계획되고 있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도시의 표정을 미술로 바꾼다는 점에서 꽤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다양한 볼거리를 가지고 국내외 관람객을 기다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사찰·정자·섬 등 남도 문화를 포괄하는 문화 관광 코스까지 개발해 소개하고 있다. 관광 코스의 출발점은 물론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이다. 광주 비엔날레는 전시장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다시 남도 문화 전체로 확산될 것이다.

“선입견 없이 와서 마음을 열고 보면, 미술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작품도 사람과 비슷하다. 내가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지 말고, 작품이 나를 본다고 생각하면 잘 보일 것이다.” 이영철 전시기획실장이 소개하는 광주 비엔날레 감상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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