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서울국제캐릭터쇼2000
  • 성우제 기자 (wootje@e-sisa.co.kr)
  • 승인 2000.08.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업체들 네트워킹 모색
대형 전시장 세 군데를 가득 채운 관림객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들이다. 평소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 ·만화 주인공들이 실제로 등장하자, 마치 꿈속의 인물을 만나기라도 한 듯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자고 졸라댔다.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뒹굴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컴퓨터를 켜놓은 부스에서 오래 머물렀다. 익숙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인터넷과 CD롬 게임 때문이었다.

지난 7월30일 개막한 서울국제캐릭터쇼 2000(8월6일까지 서울무역전시장 ·02-542-2053)은 국내에서 기획 ·개발된 캐릭터를 총망라한 큰 잔치이다. 외국 대행사를 포함해 캐릭터 업체 70개가 참여해 한국 캐릭터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읽게 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이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토종 캐릭터'라 불리는 순수 국내 창작물. 미국 ·일본 캐릭터가 국내 시장 90%를 양분한 데다, 캐릭터의 모태인 이렇다 할 애니메이션도 없는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한 몇몇 캐릭터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돋보였다.

(주)인디컴이 발표한 <단군 할아버지와 12동동이>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건국 시조인 단군과 12지 띠 동물에서 이미지를 따왔다. 단군 신화는 하늘과 땅이 조응하는 큰 스케일과 이념과 드라마틱한 줄거리에 다양한 인물을 지녔으나, 캐릭터의 최고 소비자인 어린이들에게 그다지 친숙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초상화에서 무겁고 딱딱한 모습으로 그려진 단군은 캐릭터를 통해 밝고 명랑한 '단군할아버지'로 변신했고, 이렇다 할 이미지를 갖기 못했던 띠 동물 또한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로 거듭났다.

(주)깨비마을이 개발한 도깨비 캐릭터도 한국 옛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 알콩 ·달콩 ·새콩 ·콩콩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도깨비들은, 각종 문구와 티셔츠 같은 생활용품에 새겨져 있다.

국내 제작물과 외국 캐릭터의 가장 큰 차이점을 캐릭터 자체의 인지도이다. 어린이들이 텔레토비나 포켓몬스터를 앞세운 외국 대행사 부스에 유독 많이 몰려든 까닭은, 그 캐릭터들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반면,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해 인기를 끄는 국산 캐릭터는 단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캐릭터 약소국' 한국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모태로 한 국산 캐릭터로는 <힙합>과 한국 ·일본 합작 애니메이션 <가이스터즈>, 한국 ·미국 합작품 <스쿼시>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 작품 모두 지금 제작중이다.
서울국제캐릭터쇼조직위원회 오정욱 사무국장은, 캐릭터 산업은 미국에서 1930년대, 일본에서 1950년대 초에 태동했다고 말했다. "두 나라가 세계 캐릭터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까닭은, 대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화에서 문화 상품에 이르는 총체적인 기획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캐릭터 쇼의 목적은 두 가지다. 소비자에게 다양한 캐릭터를 소개한다는 본래의 목적 외에, 뿔뿔이 흩어져 캐릭터를 개발하는 국내 업체들을 네트워킹한다는 목적도 있다.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취약한 국내 환경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지금으로서는 네크워킹밖에 없다"라고 오국장은 밝혔다.

태권도가 캐릭터화하고 가수 유승준 ·이정현의 3D 사이버 뮤직비디오가 출품되었는가 하면, 전남 장성군이 상품화해 발표한 홍길동이 등장하는 서울국제캐릭터쇼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품화에 성공한 아기공룡 둘리가 불참하고, 한국 캐릭터 산업의 미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중 ·장기 기획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