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재일동포 최대 축제 <사천왕사 왔소>
  • 오사카/글·사진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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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 최대 축전 <사천왕사 왔소> 현장 중계
해마다 11월3일이면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는 한국 풍물 소리로 뒤덮인다. 꽹과리·장고 등 사물뿐 아니라 태평소와 큰 북 소리도 들려온다. 요란한 풍물 소리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뒤섞인다. “왔소 왔소, 왔소 왔소.” <사천왕사(四天王寺) 왔소>라는 재일 동포 최대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지난 11월3일 오후 1시 오사카 남쪽 6차선 도로 양켠은 50만에 가까운 인파로 넘쳤다. 차량을 통제한 도로 한쪽으로 오후 1시부터 한국 전통 풍물패와 무희를 앞세운 전통 복장 행렬이 1㎞ 넘게 이어졌다. 우에시오 공원에서 출발한 행진이 끝나는 곳은 3㎞ 거리에 있는 사천왕사(시덴노지). 오사카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백제계로서 대륙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쇼토쿠(聖德) 태자 등 고대 일본 전통 복장을 한 인물들이 사천왕사 앞 큰 도로까지 나와 한반도에서 건너온 인물들을 정중하게 영접하고 사찰로 인도하면서 마감하는 이 축제는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다.

쇼토쿠 태자 일행의 영접을 받은 이들은 일본에 문물을 전한 가야·백제·탐라·고구려·발해·신라·조선과 중국(수나라) 사람들이다. 이 인물들의 선두에는 일본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의 고승 혜자(惠慈)와 채색 종이와 먹 제작법을 전수한 담징이 서고, 그 뒤를 일본에 천자문을 가져온 백제의 왕인, 마구(馬具)를 들고온 사마달지 등이 따랐다.

축제의 중심 인물이라 불리는 60명의 위인 가운데는 가야의 우륵, 고구려의 을지문덕·연개소문, 발해의 대조영, 신라의 김유신·김춘추·원효, 조선의 세종대왕·이이·이황 등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 인물뿐 아니라 낯선 이름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일본에 문물을 전했거나, 유민을 이끌고 건너갔던 고구려·백제의 지도자, 조선통신사 등으로 일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다. 일본의 <니혼쇼키(日本書記)> <고지키(古事紀)>에 기록된 한반도의 유명 인물들이 망라된 셈이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 시대의 화려한 옷을 입고, 마치 바다를 건너듯 배를 타고 거리를 행진했다. 같은 시대 복장을 한 전통 악대와 무희 들이 그들 앞에 서서 흥을 돋우었고, 일본 전통 옷을 입은 수십 명이 배 앞뒤에 늘어뜨린 동아줄을 잡고 배를 끌고 당겼다. 일본에 건너와 문물을 전하거나 널리 이름을 알린 역사상의 위인들을 극진히 모시고 사천왕사의 영빈관으로 인도하는 의식이다. 풍물패와 무희, 배를 끌면서 축제에 직접 참여한 이들은 유치원생에서부터 70대 노인까지 3천6백명에 이르렀다.

관광객 끌어들이는 일본의 명물

이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 양켠과 사천왕사 마당은 오사카 시민들과 휴일(11월3일은 일본 문화의 날이다)을 맞아 일본 각지에서 몰려온 구경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제 전날 오사카 시내 호텔은 초만원이었다. 재일 동포들이 만든 축제가 오사카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일본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90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사천왕사 왔소>는 일본 땅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재일 동포들의 염원에서 말미암은 축제이다. 간사이(關西) 지방에 46개 지점을 둔 신용조합 간사이고깅(關西興銀·한국 신한은행의 모기업·회장 이희건)을 중심으로 재일 동포 실업가들이 힘을 모아 ‘축전의 나라’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들의 축제를 만들었다.
쇼토쿠 태자가 서기 604년에 세운 사천왕사는 한·일 교섭사에서 여러 상징성을 내포한 사찰이다. 고대 일본의 뛰어난 정치가였던 쇼토쿠 태자는 이 절을 지으면서 선진국 백제에서 건축가들을 불러왔고, 절이 완공된 다음에도 보수와 관리를 백제인에게 맡겼다. 오사카가 대륙을 향해 열린 일본의 관문이었던 까닭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사신들은 언제나 오사카에서 첫 여장을 풀었다. 사천왕사는 그들이 하룻밤을 쉬고 간 유서 깊은 숙소였다.

<사천왕사 왔소>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소리치는 ‘왔소 왔소’는, ‘새로운 문물을 가득 실은 배가 한반도에서 왔다’며 기쁨에 겨워 내지르는 소리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모든 축제(마쓰리)에서 참가자들은 ‘왔쇼이 왔쇼이’(우리 말로 ‘영차 영차’)라고 외치는데, ‘왔쇼이’는 바로 ‘왔소’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1회 때부터 축제 기획에 참여해 온 간사이고깅 이상화 부장은 <사천왕사 왔소>를 만든 배경을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먼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케 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두었다. “그것은 문화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이 입었던 옷을 입고 선조들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행진을 한다면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고 이부장은 말했다.

축제를 통해 오사카라는 도시를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간사이 지방에서 55년부터 영업해 온 은행으로서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도 담았다. “회사 창립 35주년을 맞은 90년에 오사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돈을 기부할 수도 있었지만, 오사카에 길이 남을 축제를 만들어 기부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뜻을 모았다.”

간사이고깅 이승재 부회장이 앞장섰던 ‘새로운 축제 만들기’에 간사이 지방 재일 동포 실업가들이 힘을 보탰다. 80년대 중반부터 준비에 들어간 그들은 기금 24억엔(약 2백78억원)을 마련해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이 축제에 드는 한 해 비용은 1억 8천만엔(약 20억원). 간사이고깅을 중심으로 재일 동포 실업가들은 해마다 기금을 새로 모은다.

<사천왕사 왔소> 실행위원회는 무엇보다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첫 축제를 준비하면서 한국의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고대 의상과 악기를 만들었고 각 시대에 맞는 음악도 작곡했다. 기획과 고증, 제작에는 연출가 허 규(전 국립극장 극장장), 고고학자 김원룡(전 서울대 교수), 의상 디자이너 이영희·허 영 씨, 전통 악기 제작자 남갑진씨, 문화 기획가 안현주씨(한국의장 대표) 등 한국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안현주씨는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일본에 초청되어 고증에 충실한지 아닌지를 살핀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3시간 행진 위해 두 달 동안 준비

간사이고깅 신입 사원들은 해마다 20여 명씩 한국에 파견되어 풍물과 춤을 익힌다. 그들이 돌아가 다른 직원들을 가르치고 풍물패와 악대, 전통 무용단을 구성한다. 젊은 교포들은 3시간 행진을 위해 두 달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는데, 은행 업무를 마치고 매일 2시간씩 연습한다. 그들이 <사천왕사 왔소>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는가 하는 점은 이상화 부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부장은 첫 해 축제 때 전통 나비춤을 추기 위해 가발을 쓰지 않고 삭발을 했다.

축제 초기에는 각 지점 은행 직원들이 일을 도맡아 했으나, 축제를 9회째 치러 오면서 그들은 풍물·악대 등 전문적인 일만 담당하고 나머지는 각 지점을 통해 접수한 신청자들에게 맡긴다.

“이 축제는 두 나라 사이에 아픈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사이 좋게 교류한 훌륭한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라고 이상화 부장은 말했다. 그 교류의 장에 참가하는 일본인이 점점 늘어나 올해에는 참가자 절반이 일본인이었다. 일본인들도 “왔소 왔소”를 외치며 두 나라 사이에 전개되었던 문물 교류사를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사천왕사 왔소>는 채 10년도 되지 않아 오사카 3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했다. 이 축제에는 일본에 건너왔던 위대한 조상들의 자취를 확인하면서 스스로 자부심을 일깨우려는 재일 동포들의 눈물 겨운 정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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