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재]영조시대 인장·백자 4점 서울에 왔다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3.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성 근처 홍현보 묘에서 발굴한 인장 3개·백자 1점 반입…영조가 하사한 ‘명품’
북한의 골동품·부장품 들이 중국·일본 등 국외로 반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 최근 주인의 이름이 밝혀진 북한 부장품이 국내에 반입되었다. 조선시대 영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홍현보(洪鉉輔:1680∼1740)의 무덤에서 파낸 이 유물들은, 인장 3개와 인장을 담은 백자 항아리이다. 백자 뚜껑에는 땅속 유물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찌른 구멍이 나 있다.

이 유물을 국내에 들여온 이는 서울 공창화랑 대표 공창호씨(전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이다. 지난 1월 북한이 일본으로 밀반출한 고구려 고분 벽화 조각을 입수해 공개했던 그는 “수십년 동안 친분을 쌓아 온 재일 동포 수집가에게서 유물을 건네받았다. 그 재일 동포로부터 개성 근처에 있는 무덤의 부장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덤 비문에는 이 부장품들이 홍현보가 죽은 다음 영조가 내린 하사품이라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라고 밝혔다.

인장은 ‘豊山洪鉉輔君擧印’이라고 새긴 백옥석과 ‘君擧’라는 글자가 새겨진 수정, 그리고 ‘洪鉉輔印’이라는 글씨의 수산석 등 모두 세 종류이다. 홍현보라는 이름과 본관(豊山)·자(君擧)를 모두 새긴 인장은 무덤 주인의 신원을 확실하게 밝히는 지석(誌石) 구실을 하고 있다. 백옥석과 수정 인장의 손잡이에는 상상의 동물로 신성히 여겨 온 해태와 기린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어미의 등에 올라탄 새끼 2마리가 묘사된 해태는 이빨과 갈기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기린도 강도가 높은 수정을 파내어 네 다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해태가 조각된 도장은 높이 11㎝, 너비 4.㎝, 기린이 조각된 도장은 각각 6㎝와 5㎝, 수산석은 6㎝와 5㎝이다.

인장들은 모두 평소에 사용했던 흔적이 없다. 인장을 판 뒤 확인하기 위해 찍어 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장을 담은 항아리는 받침대 둘레가 16.5㎝, 너비가 24.5㎝, 높이가 22㎝인 유백색 백자이다. 뚜껑에는 겹줄로 된 원이 3개 그려져 있다. 은은한 빛깔에 비례가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운 백자이다. “비문에 왕이 홍현보를 총애해 그가 죽은 다음 하사품으로 내렸다는 기록이 없더라도, 도자기의 질로 보나 인장의 재료로 보나 그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왕의 하사품이 아닌 다음에야 이같은 귀한 재료를 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공창호씨는 말했다.
소장자 공창호씨 “박물관에 기증하겠다”

인장 연구자인 김양동 교수(계명대·서예과)에 따르면, 홍현보 도장의 전각(篆刻)은 그 솜씨가 매우 빼어나다. “당시 조선에는 이만큼 각을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사신을 통해 중국에서 새겨 왔을 것이다. ‘豊山洪鉉輔君擧印’이 새겨진 옥도 당시 조선에서 아주 귀한 돌이었다.”

인장을 무덤에 ‘신분증’으로 넣는 풍습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한반도 무덤에서도 인장이 종종 발굴되곤 했는데, 68년에 경기도 화성에 있는 홍석귀(1621∼1679)의 묘에서 인장 93개를 담은 백자 항아리가 발굴되기도 했다.

홍현보는 선조의 사위 홍주원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으로, <한중록>으로 유명한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할아버지이다. 영조 1년에 탕평책을 상소해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홍현보의 직계 자손인 홍기영씨에 따르면, 풍산 홍씨의 조상 묘들은 개성 옆에 있는 장단군에 많이 몰려 있다. 홍현보의 묘는 장단군 조강 암실리라는 곳에 있다고 기록되었는데, 북한에서 나온 유물과 그 위치가 일치한다. 최근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무덤에서 유물들을 파내 국외로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이‘홍현보’라는 신원이 확실한 인물의 부장품을 통해 새삼 확인된 것이다.

공창호씨는 고구려 고분 벽화 조각과 더불어 인장들도 가능하다면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