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인터넷 세상은 신 계급사회
  • 노순동 기자(soon@e-sisa.co.kr)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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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종사자 노동 강도 높고 위계 엄격… 현실 세계와 다름 없는 ‘뉴 카스트’ 제도 뿌리 내려
사이버 공간만큼 일 중독이 일상화한 곳은 드물다. 바깥에서는 주 40시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지만, 컴퓨터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은 ‘24시간/7일’의 속도전에 기꺼이 몸을 내맡긴다. 스스로도 주당 60시간쯤은 견딜 만하다고 최면을 거는 데다가, 주변 사람들도 이렇게 거든다. “힘들어 할 것 있나? 언젠가는 다 벼락부자가 될 텐데. 안그래?”

“안그래.” 최근 번역되어 <인터넷 시대의 일벌레들>(모색 펴냄/원제 네트 슬레이브스)을 지은 빌 레사드와 스티브 볼드윈은 이렇게 도리질을 친다. 이 책은 사이버 공간에서 구를 대로 굴렀다고 자부하는 저자들이, 1998년 1년 동안 웹 노동자 수백 명을 취재해서 묶어낸 다큐멘터리이다.

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노동자들의 삶은, 바로 살인적인 노동과 뉴 카스트 제도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노예’로 불릴 만하다. 광속 변화를 따라잡느라 항상 허둥대며, 민주적이고 대안적인 사이버 세상의 이미지와 달리 피라미드식 카스트 제도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에서 ‘웹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따위를 공론화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인터넷은 신생 매체인 데다, 모든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 때문이다.

청소부에서 성직자까지

‘인터넷 노예’라는 원제는 ‘인터넷 시대의 일벌레’로 둔갑했다. 그들은 (비자발적) 노예가 아니라 일벌레인 것이다. 비참한 조건보다는 네티즌의 열정에 강조점을 찍고자 하는 출판사의 배려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호의를 입어 마땅한 이들은 ‘두더지족’(-1단계)뿐이다(인터넷이 만들어낸 뉴 카스트 위계에서 불가촉 천민에 해당하는 이들은 컴퓨터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다른 계급과는 질이 다르다).

이 책은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가을 하드 커버로 출판된 이 책은, 오는 8월 페이퍼 북으로 나온다. <인터넷 시대의 일벌레들>은 사이버 공간을 삶의 터전(정확히 말하면 돈벌이)으로 삼고 있는 인터넷 종사자를 모두 10단계로 나누고 있다(72쪽 아래 표 참조). 물론 사회가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시스템 엔지니어·사이버 캡·커뮤니티 가드너·웹 디자이너·프로그래머·웹 컨설턴트·인터넷 평론가 그리고 최고 경영자(CEO) 등이다. 하지만 바깥의 사람들이 명함에 찍힌 이름만으로 실제 하는 일을 추론하기는 쉽지 않다.

사이버 세계의 블루 칼라인 (1)쓰레기 청소부(시스템 운영자)는, 그 혹독한 노동 강도와 시도때도 없이 호출되는 신세 때문에 현장에서 ‘코드 청소부’ ‘데스크탑 원숭이’ ‘삐삐 해결사’로 불린다. 그들을 찾으려면 책상 밑이나 피자 박스를 들추는 편이 빠르다.
(돈을 위해) 포르노를 통신에 올리는 이들은 (2)매춘부로 불린다. 이들의 파트너는 사이버 경찰이다. 매춘부는 인터넷에 대한 위선적인 전망을 무시하고 톡 까놓고 인터넷을 대한다는 점에서 더 실속이 있다. 전망은 둘 다 어둡다. 검열 기술이 발전하고, 정부가 이를 시행하면 둘 다 일을 잃게 된다.

그 다음은 사이버 그레이 칼라다. 폼은 나지만 실속은 없다. 게시판을 관리하고, 이벤트를 기획하는 (3)사회 봉자사(커뮤니티 가드너), (4)고객이 부르는 대로 달려가는 택시 드라이버(프리랜서 웹 디자이너) 등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자본가에게 폼 나게 설득하는 기술이 없는 탓에 헐값에 자신의 노동을 판다.

반면 (5)카우보이와 도박사의 심리학적 프로필은 ‘0101000111= $$$$$$’ 이다. 프로그램을 짜고, 실질적인 자문에 응하는 전문가인 이들의 능력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인트라넷이오? 좋지요. 그걸 설치하려면 객체 지향적 데이터 베이스가 필요한데, 이건 작성하는 데 24개월 정도가 걸리죠.” “?…???” (6)튀김 요리사는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계급이다. 인터넷이 24시간 요리점이라면 그들이 바로 주방장이기 때문. “피클 빼고, 개인용으로 쉽게. HTML 라이트로. 싸갈 거에요.” 그는 웨이터와 가게 주인의 동네 북이다. 연봉은 6만 달러. 하지만 술값과 정신과 상담료를 빼면 2만 달러가 남는다.

뉴 카스트의 윗 단계로 가면 숨통이 트인다. 이들은 인터넷에 관한 정보로 돈이나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계층이다. (8)성직자와 광인 그리고 최고 계층인 (10)산적 두목이다. 성직자와 광인은, 신문의 주식 투자 추천란 혹은 산업 회의장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위대한 조국의 학회로부터 ‘왕따’를 당한 탓에 어디서든 눈길을 끌려고 애쓴 산적 두목(최고 경영자)은 유니콘과 비슷한 존재다. 잡지의 표지와 산업 회의장 연설대를 도맡는 이들은, 눈에는 잘 띄지만 실체를 알기는 어렵다. 그들은 대체로 사이코 취급을 받는다. “내가 2분30초 삶은 달걀을 달랬지, 언제 2분42초 삶은 달걀을 달랬냐!” 사업상 멘트도 있다.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멋지게 만들어봐.” 더 과격하고 즐겨쓰는 말로는 “우리랑 안 놀면 죽여버릴 거야”가 있다.

비록 저자의 목소리가 위악적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환상이 터무니없다면 큰 흠은 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들은 워낙 삐딱이들이다. 이들은 ‘인터넷 노예들(www.netslaves.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티브 볼드윈은 ‘실패한 웹 사이트’를 꼽아주는 딴죽걸기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이들이 유일하게 호의적인 계층이 있다. 바로 두더지족이다. 이들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했기 때문에 계급 상승 욕구가 없다. 중요한 점은 이들의 배설물로 인터넷이 풍요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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