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고구려사 전쟁’
  •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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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중국 ‘동북공정’ 더 심해질 듯
지난 7월1일, 북한과 중국 지역의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나란히 등재되었다. 등재된 유적은 평양 동명왕릉을 비롯한 북한 지역 고분 63기와 오녀산성·국내성·광개토대왕비 등 중국 지역 유적 43건이다. 한국고대사 연구자인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의 기고문을 싣는다.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제28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회의(WHC) 총회에서 북한과 중국이 요청한 고구려 유적들을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인류문화유산’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북한의 고구려고분군 등재가 보류된 뒤부터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알려지고, 이에 대한 비난과 비판 여론이 들끓으면서 한·중 간에 이른바 ‘역사 전쟁’이라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과정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실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어쨌든 그 결과 고구려사, 나아가서는 우리 고대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야말로 우리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의 고구려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남북한이 함께 노력해 바라던 결과를 이루게 된 것 또한 뜻 깊은 일이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해온 그 뛰어난 문화 유산에 대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보존과 관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러나 우려되는 일도 있다. 중국이 이를 계기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기정사실화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사를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이른바 ‘일사양용(一史兩用)’이나, 혹은 아예 독점하려는 시도가 더욱 강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등재된 유적의 성격과 범주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북한의 유적들이 ‘고구려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된 반면, 중국의 유적은 ‘고구려의 왕도,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들’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되었다. 여기에서도 중국의 치밀한 전략이 드러난다. 명칭만으로 언뜻 보면 중국 유적이 중심이고 북한 유적은 부차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마치 고구려사의 주류가 중국에 있는 듯한 이미지가 만들어질까 우려된다.

중국은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사를 둘러싼 양국의 ‘역사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중국의 주장이 갖는 허구성에 대해서는 학술적 차원에서 대응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의 축적이 계속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이제부터는 우리의 주장이 갖는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구체화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와 함께 고구려 후기의 수도이며 절정기의 문화를 이루었던 평양 일대의 고구려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의당 남북한의 공조가 필수이기 때문에, 문화 학술 차원의 남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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