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국내 첫 출연 오페라 <리골레토>
  • 노승림 (월간 <객석> 기자) ()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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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리골레토>/조수미·레오 누치·고성현 호화 캐스팅 ‘눈길’
소프라노 조수미가 드디어 한국 오페라 무대에 등장한다. 오는 7월 23일(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상연될 오페라 <리골레토>는 조수미가 무대에 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예매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티켓이 몇천 장이나 나갈 정도로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다. 국내 클래식 음반업계가 불황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음반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그녀가 단 한곡만 부르고 들어간다고 해도 그녀의 이름이 박혀 있으면 그 콘서트는 매진된다. 그녀의 인기는 대중 음악에서 조용필이 누리는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같은 인기는 ‘소프라노 조수미’ 혹은 ‘성악가 조수미’에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짧은 오페라 아리아와 대중적인 크로스오버 노래들, 심지어 방송 드라마의 타이틀곡까지 들어보았지만 ‘오페라 가수 조수미’의 실체는 국내에서 한 번도 확인해보지 못했다.

오페라는 종합 예술이다. 출연자는 노래와 함께 연기력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엔터테이너 기질이 강하게 부각된 것이 사실이지만, 노래를 능가하는 그녀의 다재다능한 끼는 유럽과 미국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이탈리아의 밀라노며 그녀가 근거지로 삼고 있는 로마는 물론, 문화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뮌헨에서도 조수미는 동양인으로서는 남다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왜 고국에서는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은 “무대에 혼자 서고픈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라고 말하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그녀가 설 만큼 완성도 높은 오페라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해외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흔쾌히 출연을 허락한 이번 <리골레토>는 기대함직하다. <리골레토>의 질다 역은 조수미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데뷔하며 맡았던 역으로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진 배역 중 하나다.
조수미가 이번 무대에 출연을 허락한 가장 큰 이유는 바리톤 레오 누치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오페라의 타이틀 롤 ‘리골레토’를 열연할 그는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을 장악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거장이다. 특히 리골레토 역은 이미 100회 넘게 맡았을 만큼 자신이 있다. 이번 여름 시즌에도 그는 한국 공연 직후 베로나 페스티벌로 돌아가 다시 ‘리골레토’를 부를 예정이다. 오페라 마니아들은 조수미가 아니더라도 레오 누치의 이름만 보고 티켓을 예매했을 것이다.

레오 누치와 더블 캐스팅된 고성현 또한 다크호스다. 얼마 전 한국오페라단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여전한 가창력과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인 그는 몇년 전부터 국내 활동을 잠시 접고 유럽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와 베를린, 쾰른,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를 주요 무대로 삼고 있는 그는 최근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바리톤 호세 쿠라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으며, 플라시도 도밍고의 러브 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레오 누치와 마찬가지로 그의 스페셜 롤은 리골레토이며, 유럽에서도 이 배역으로 유수의 오페라 극장을 누비고 있다.

<리골레토>는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베르디 오페라 중 하나이다. 곱사등이 리골레토와 순결한 딸 질다, 그 질다를 유혹하고 버리는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의 이야기는 그동안 국내외 오페라단에 의해 다양한 버전으로 상연되어 왔다. 가장 최근 화제가 되었던 공연은 전라의 엑스트라들이 출연하여 난교 파티를 연출했던 로열 오페라단 프로덕션의 맥비커 버전이었다(2003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열 오페라단처럼 파격적인 장면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출연진만으로 판단할 때 이보다 더 화려한 캐스팅은 한국 오페라사 50년 이래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오페라의 연극적인 미덕보다 오페라 가수들의 빼어난 가창력에 호감을 갖는 오페라 애호가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단순한’ 호감만으로 찾아가기에는 입장권이 턱없이 비싼 것이 흠이기는 하다. 여기에는 한국에만 오면 유독 값이 오르는 조수미의 출연료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어쨌든 놓치기에는 아쉬운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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