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송·앗제 ··· 걸작 사진들이 몰려온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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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젠느 앗제 등 세계적 거장들 사진전 잇따라
지난해 말 아론 시스킨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시발이었다. 봄에 안셀 애덤스 전이 열렸고, 현재는 으젠느 앗제·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베허 부부·토마스 루프 등의 사진이 한국에 나들이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크고 작은 사진전이 끊임없이 열렸지만, 사진사를 빛낸 세계적인 거장들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이처럼 대거 몰려온 적은 없었다. 사진 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들을 국내에서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 전공자나 애호가들은 설레고 있다.

사진의 기본적인 특성은 복제성이다. 이런 성질이 없었다면 사진이 짧은 역사에 비해 이토록 큰 영향력을 확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으로 접어들면 달라진다. 컬러 사진과 달리, 대부분의 흑백 사진은 현상하기가 까다롭고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풍경 사진 대가였던 안셀 애덤스(1902~1984)는 “네거티브 필름은 악보이고, 프린트는 연주다”라고 말했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듯 같은 필름이라도 언제, 누가, 어떻게 현상하느냐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띤다는 뜻이다. 그는 자기 작품에 마치 판화처럼 에디션 넘버를 붙여 한정된 수량만 발표했다.

으젠느 앗제(1856~1927)는 현대 사진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주로 고물상이나 식료품점 같은 파리 뒷골목 풍경을 렌즈에 담았는데, 마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한 고풍스런 품격이 살아있다. 서울 관훈동 김영섭사진화랑(8월5일까지, 02-733-6331)에서 초현실적이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100년 전 파리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앗제가 직접 만든 빈티지 프린트 7점과 프랑스국립기록보관소에 보관 중인 필름을 새로 현상한 49점 등 모두 6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 뤼미에르(8월6일까지, 02-517-2134)에 가면 또 다른 파리 풍경을 볼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사진작가로 평가받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96)의 오리지널 프린트 13점이 전시 중이다. 앗제가 회화적 예술성을 추구했다면,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 특유의 미학을 완성했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작품은 앗제나 애덤스에 비해 프린트 자체가 주는 맛은 적은 편인데, 이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있는 대로만 나오면 된다. 암실에서 작업할 시간이 있으면 나는 그 시간에 사진을 더 찍겠다”라고 말했던 그는, 소형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파리 시내 곳곳을 누비며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 순발력이야말로 사진의 생명임을 보여주었다. 대표작 <생 라자르역 뒤에서>는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난 작품.

“사진도 소장 가치 있는 예술품”

독일 태생인 토마스 루프(46)는 현대 작가이면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인물. “사진은 리얼리티 자체가 아니며, 다만 이미지를 담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그는 사진을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포르노그래피를 디지털 방식으로 흐리게 처리한 <누드>나, 천문대에서 구한 천체 사진을 사용해 검은 바탕에 흰 점이 흩뿌려진 추상 화면을 연출한 <별> 등 그의 작품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8월22일까지, 041-551-5100)에서 만날 수 있다. 토마스 루프의 스승이자 평생 산업 구조물을 찍어온 베른 베허와 힐라 베허 부부의 작품도 지난 6월 pkm갤러리에서 첫선을 보인데 이어, 가나아트센터(8월29일까지, 02-720-1020)에서 계속 전시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는 사진이 미술계의 중심부에 진입한 지 이미 오래다. 시장도 폭넓게 형성되어,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토마스 루프의 작품은 7천 달러에서 많게는 4만 달러에까지 거래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제 상업 화랑을 중심으로 사진전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사진가 강운구씨는 “사진이 소장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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