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금기 깨는 ‘빅 누드’
  • 박영택 (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 ()
  • 승인 2004.08.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무트 뉴턴 패션 사진전/남성적 열망의 좌절과 허무 드러내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들어간 서늘한 전시장에는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사진가의 한 사람인 헬무트 뉴턴의 사진들이 도열해 있다(8월22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 02-737-2505). 올해 초 교통사고로 죽은 그를 추억하며 그의 시선에 애무되고 부동으로 불멸이 된 여자들의 아찔한 몸을 본다. 패션 사진가인 그의 사진 속에는 항상 건강하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완벽한 몸매와 도발적인 포즈, 보는 사람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눈을 지닌 여자들이 있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관음적이다. 섹슈얼리티이자 죽음과 맞붙어 있다.

1920년 유대인 단추공장 소유주의 아들로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12세에 처음으로 사진기를 구입했으며 이후 공부는 뒷전이고 수영과 사진, 여자아이만 쫓아다니다가 퇴학당하고 만다. 16세에 당시 유명한 사진가 이봐의 조수로 들어갔지만 18세에 나치를 피해 해외로 떠난다. 1960년대 초 유럽에 돌아간 그는 <보그>와 <플레이보이> 등에 퇴폐적이고 과격한 에로티시즘에 젖은 독특한 누드 사진을 게재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사진은 스스로의 정수로 추출되는, 스스로의 법칙에만 복종하고 스스로 완결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사진은 분명 인위적인 것이다. 그는 장면을 연출하기를 즐기고, 따라서 사진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그는 “내 사진의 사람들은 연출되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결코 위조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 삶에서 내 눈으로 똑똑히 본 것들을 반영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사회의 특징적인 것을 파악하고 싶다. 어떤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유형의 행동 양식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다.”

그는 철저한 패션 사진가이다. 그러니까 옷, 옷을 입은 여자를 주로 찍는다. 그는 누드와 착의를 동시에 찍는다. 오랫동안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패션은 사실 모든 에로티시즘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뉴턴에게 패션은 다른 무엇을 위한 하나의 구실이다. 비록 상업적 계약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는 이를 이용해 욕망과 꿈, 쾌락과 두려움이라는 그의 개인적 집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의 사진은 ‘순수’ 예술과 ‘응용’ 예술 사이의 경계와 구분을 흐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의뢰받은 작업을 할 때 언제나, 그것이 편집이든 광고이든 나는 영감을 발견한다.”

죽음으로 귀착되는 관음증의 쾌락 선사해

뉴턴의 성공적인 사진은 집단적 갈망의 심연을 건드리고 있기에 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 아니 생각에만 그친 것을 그는 현실에서 연출했고 이를 사진으로 옮겨놓았다. 뉴턴은 일상에서 결코 노출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데서 오는 특권적인 열락을 관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뉴턴은 무엇이 허용되며 무엇이 금지되는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빅 누드’다. 옷을 입었든 나체이든, 남성 세계를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크고 강하며 목표 지향적인 모습들을 지닌 여자들 말이다. 장화와 채찍, 안장과 박차, 독일산 셰퍼드, 체인, 하이힐 등은 복잡한 시각적 상징 체계에서 자주 반복되는 상징물이다. 그것들은 늘 거울, 넓은 복도, 아찔하게 높은 계단이나 발코니, 수영장과 다리 난간 등과 함께 찍혀 있다.

다시 말해, 뉴턴의 사진 세계에는 비행과 추락, 하락과 죽음 등이 항상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그런 연출과 함께 하거나 혹은 단독으로 서 있는 매력적인 여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성적 욕망과 관음증에 탐닉했다가 남성적 열망의 좌절과 허무한 시선, 죽음으로 귀착되는 서늘한 느낌을 동시에 받게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