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가수들’의 화려한 부활 노래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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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콘서트 대호황…캠퍼스밴드·포크 가수들 재기 무대 잇따라
올해 대중 문화 최대 히트 상품은 아마 ‘7080 콘서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7080 콘서트만은 ‘독야청청’하고 있다. 올해 초, 설날 특집으로 방영된 KBS 열린음악회에서 발화한 7080 콘서트는 4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으로 방점을 찍고 6월 상암월드컵경기장 공연에서 폭발한 후 지방 대형 무대를 순회하며 덩지를 키우고 있다.

샌드데블즈 건아들 장남들 휘버스 블랙테트라 옥슨80 로커스트 라이너스 등 1970~1980년대를 풍미한 캠퍼스밴드가 공연한 7080 콘서트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에서 송골매와 구창모씨를, 상암월드컵경기장 공연에서 김창완·전인권·김수철 씨를 영입해 짜임새를 더하고 있다. 부산 수원 대구 인천 대전 전주 광명 대천 속초 등에서 공연을 마쳤는데, 특히 수원 공연에서는 앙코르가 이어지면서 밤 12시까지 공연이 계속되었다.

7080 콘서트는 창원 광주 제주도 공연과 부산 앙코르 공연을 준비 중이며, 조만간 재미교포들을 위한 LA 공연도 열릴 예정이다. 4050 팬들은 팬카페(cafe.daum.net/7080band)를 만들어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7080 콘서트의 성공을 지렛대 삼아 추억의 가수들이 부활하고 있다. 재결성한 건아들은 올해 초 제작한 앨범 <올드 앤 뉴>가 콘서트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재기할 발판을 마련했다. 새로운 멤버들로 작은거인 밴드를 재구성한 김수철씨 역시 대형 무대 공연을 갖게 되면서 재기의 기틀을 다졌다.

이외에도 다양한 부활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특유의 미성으로 아줌마 ‘오빠부대’를 몰고다니는 휘버스의 싱어 이명훈씨는 새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탁월한 무대 매너로 중년 여성 팬의 심금을 울린 송골매의 리드싱어 구창모씨도 곧 새 음반을 낼 예정이다. 대학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인권씨는 7080 콘서트로 탄력을 받아 오는 9월 장충체육관 단독 공연에 나설 계획이다.

7080 밴드 부활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품앗이로 채워준다는 점이다. 콘서트에서 공연할 때면 세션 연주자를 빌려주고, 음반을 낼 때면 함께 노래를 불러주면서 밴드들은 서로서로 돕고 있다. 블랙테트라 옥슨80 로커스트 라이너스 멤버들은 아예 프로젝트 밴드 B.O.L.L.를 구성해 7080 콘서트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7080 콘서트의 성공은 다양한 아류 현상도 낳고 있다. 현대백화점 미아점은 4050 고객들을 겨냥해 7080 음악 다방을 만들었다. 압구정동 소울얼라이브 카페에서는 전인권 신촌블루스 권인하 임지훈 정경화 같은 가수들이 라이브 무대를 열어 손님을 모으고 있다.

7080 현상의 가장 큰 영향은 7080 이름을 건 다양한 공연들이 출몰했다는 것이다. 특히 콘서트가 대성공을 거둔 부산에서 이런 바람이 거셌다. 지난 8월8일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는 지역 기획사가 제작한 ‘7080 캠퍼스 디너쇼’가 열렸다. 이 디너쇼에는 <내게도 사랑이>를 부른 함중아를 비롯해 해바라기·김세환 등이 출연해 팬들의 향수를 달랬다. 부산에서는 캠퍼스밴드 위주의 ‘추억의 7080 빅 콘서트’와 다른 솔로 가수 위주의 ‘7080 대학가요 빅 콘서트’가 열려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7080 대학가요 빅 콘서트’는 부산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오는 8월22일 서울 코엑스 컨벤션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유 열씨가 사회를 보는 이번 공연에는 <저 바다에 누워>(1985년 대상)의 높은음자리와 <사랑이라는 건>(1989년 대상)의 전유나를 비롯해 이명우 썰물 노사연 정오차 조정희 우순실 작품하나 사랑의하모니 홍삼트리오 등이 출연한다.

캠퍼스밴드의 성공에 고무된 포크 가수들도 뭉쳐서 ‘권토중래’를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캠퍼스밴드가 뚫어 놓은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재공략할 예정이다. 오는 9월10일 열리는 ‘추억의 낭만 콘서트, 밤을 잊은 그대에게’ 콘서트는 포크 가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은 주류 무대에서 자리를 잃고 미사리 카페를 전전하고 있는 포크 가수들의 부활 무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어니언스 김세환 펄시스터즈 뚜아에무아 라나에로스포 임희숙씨가 1부를, 최백호 둘다섯 이용복 사월과오월 하남석 유심초 김상희 수와진 하사와병장 유익종 트윈폴리오가 2부를 맡을 예정이다.

‘미사리 사단’과 다른 음악적 색깔을 가진 한대수·정태춘 씨 등은 대학 교정에서 따로 무대를 갖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4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포크 콘서트 ‘축제’ 공연에는 한대수 정태춘/박은옥 해바라기 시인과촌장 김창완 임지훈 박강성 등이 출연한다.

이처럼 7080 콘서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이들이 트로트와 댄스 가요 사이의 긴 공백을 메우며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 넘어야 할 벽도 적지 않다. 일단 팬들이 7080 가수들의 현재 음악보다 과거 음악만을 선호한다는 것이 큰 문제다. 7080 콘서트를 기획한 컬처피아 황규학 대표는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은 추억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다. 신곡보다는 옛 노래를 불러달라고 주문한다. 간혹 신곡을 부르는 가수도 있지만 예전 히트곡을 부를 때와 반응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라고 말했다.

홀로 설 역량이 안된다는 점도 문제다. 함께 선 무대는 큰 호응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자신만의 무대에서 홀로 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공연 관계자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공연기획자 장재철씨는 “7080 콘서트의 성공 비결은 희귀성이다. 그래서 계속 음악 활동을 한 가수보다 하지 않은 가수를 선호한다. 이런 아이러니는 7080 콘서트의 성공이 부활이 아니라 일시적인 트렌드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분석했다

‘미사리 카페촌’에도 변화 바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7080 콘서트는 침체한 대중 음악계에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7080 포크 가수들의 ‘집성촌’ 격인 미사리 카페촌이다. 공연기획사 솔담의 강성일 이사는 뮤지션들 사이에 제대로 된 음악을 해보자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세션 주자를 갖춘 풀 밴드 공연이 많아졌다. 홍대앞과는 다른 포크와 발라드 음악을 위한 언더그라운드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 가수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뮤지션들의 이런 움직임은 관객들의 태도 변화도 가져와서 미사리를 ‘차를 마시러 와서 노래를 듣는 곳’에서 ‘노래를 들으러 와서 차도 마시는 곳’으로 달리 이해하기 시작했다.

해체된 그룹이 재결성되고 복고 밴드가 유행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는 복고 밴드로 구성된 ‘클래식 록 페스티벌’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서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재결성한 후 1년치 공연 티켓을 1주일 만에 매진시킬 정도로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미약하지만 7080 콘서트는 댄스 가수 일변도의 가요계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콘서트를 관람한 이지은씨(22)는 “볼거리에만 치중한 댄스 가수들의 무대만 보다가 로커스트 김태민씨의 열창과 송골매 구창모씨의 원숙한 무대 매너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노래방에서 그들의 노래를 불렀더니 친구들도 무척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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