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은하수로 노 저어간 '동심 등대지기'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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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정채봉씨 타계… 아름다운 문장,섬세한 묘사로 마해송·강소천 맥 이어

사진설명 '죽어 물새가 되고 싶었던' 동화작가 : 1월9일 세상을 떠난 정채봉씨는 28년간 동화 97편을 남겼고, 1990년대에는 '성인 동화'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동화작가 정채봉씨는 자신이 병실에서걸어나갈 수 있으리라 굳게믿었다. 지난 가을 문병한 지인들에게 생일(11월28일)만넘기면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간암이라는 몸 안의 '반란군'을 끝내진압하지 못한채 1월9일 오전 7시10분 눈을 감았다. 향년 55세.

지난 1월11일 서울중앙병원에서 열린 영결식은 조촐했다. 영결 미사를 집전한 조광호 신부는 "우리는 정채봉 한 사람을잃은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을 잃었다"라고 말했다.고인이 살아 생전 '호적에 없는 동생'이라고 불렀던 시인 정호승씨는 '채송화 채봉숭아 봉,채봉이 형님'으로 시작하는 조시를통해 먼길 떠나는 그를 그리워했다. 그날 오후 정씨는 순천 가톨릭 묘지에 묻혔다.

고인은 전남 승주군의한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그는고아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일본에 가 있었고, 열여덟에 그를 낳은 어머니는 스무 살에 '청솔가지 타는 냄새'만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는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할머니 품에서 자라났다.

지난해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병실에서 시 한 편을 썼다. '하늘 나라에 가 계시는/엄마가/하루 휴가를얻어/(중략)/단 5분/그래, 5분만 온대도 원이 없겠다//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중략)/젖가슴을 만지고/그리고 한번만이라도/엄마!/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숨겨놓은 세상사 중/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엉엉 울겠다(<엄마가 휴가를나온다면>).


"동심은 나의 신앙이다"

작가의 맑고 투명한동화는 어머니에대한 이같은 무한한 그리움과바닷가 고향,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으로 빚어졌다. 원양어선 선장이 꿈이었던 그는 20대 초반 서울에 올라왔다. 도시는 그를 파도 앞의 모래알처럼 굴렸지만, 그의 가슴에서는 늘 '오동잎에바스라지는 바람, 사운대는 꽃 이파리, 나비의 가녀린 나랫 소리' 따위가 떠나지 않았다.

소설 지망생이던 그를동화의 세계로이끈 것은 <어린 왕자>였다. 그는그 작품을 처음에는 벌렁 누워서 보다가 점점 옷을 갖추어 입었고, 나중에는 무릎을 꿇고 보았다. 그뒤 동화는 그의 일생이 되었고,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꽃다발>이 당선되자본격적으로 향기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화작가 정중수씨는 일찍이 그의 동화에 대해 "대부분 눈물이 날 만큼아름답고 여린 문장으로 짜여 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연약해서 입김만 불어도 꺼질 것같은 세세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라고 말했다. 소설가 정찬주씨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듯이, 정채봉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작가였다"라고 말했다. 정채봉 자신도 언젠가 "내 신앙은동심이다. 이 동심이 악을 제어하고, 죄에서 회귀할 수 있다.이 영혼(동심) 구현이 내작품 세계 구조이다"라고 밝혔다. 동화작가김병규씨는정씨가 한국의 동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며, 그를 마해송·강소천으로 이어지는 한국 동화의 맥을 이은 작가라고 평가했다.

정채봉은 뛰어난잡지편집자이기도 했다. 월간 <샘터>에 25년간 몸 담고 있으면서 그는 소외된 사람에게 각별한애정과 연민을쏟았다. 가시나무와 돌같이 쓸모 없는 사물에도 특별한 사명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물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이미 자연을 아름답게 수놓는 물새가 아니었을까. <초승달과 밤배>같은동화 97편으로멍들고 시든 아이들의 마음을 닦아주고,지친 어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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