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음악] 혁명아 서태지 '판 뒤집기'에는 실패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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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3일 고별 공연후 미국행… 상업적으로는 성공, 음악적 영향은 거의 없어

사진설명 예전 같지 않았다 : 컴백한 서태지는 국내 가요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했다.

서태지가 한국을 떠난다. 지난 2월3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고별 공연을 끝으로 컴백 이후 4개월 간의 음악 활동을 정리한 그는, 2월 중순 미국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갈 예정이다.

지난해 9월 서태지 컴백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최대 화제거리였다. 1996년 은퇴 선언을 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그는 한 사람의 가수를 넘어선 거대한 '신화'였다. 음반업계 처지에서 보면 서태지는 IMF로 침체된 음반 시장의 '활력소'였다. 신보를 낼 때마다 새로운 장르를 도입해 '대박'을 터뜨린 서태지가 어떤 음악을 선보이느냐에 따라 음반 시장의 조류가 바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태지에게서 신중현·조용필을 잇는 대중 예술가의 면모를 발견한 음악 평론가들은 서태지 컴백을 '아티스트의 부활'이라고 해석했다. 평론가들은 서태지가 댄스와 발라드 음악이 주류를 이루며 지리멸렬해진 국내 가요계에 대항하는 영웅이 되어 주기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서태지 컴백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서태지 자신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음반 시장에 활력소가 되지도 못했고 국내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실패했다.

우선 컴백 앨범 <울트라맨이야>는 1백30만장이 팔려나가며 2000년 가요 음반 전체 판매량에서 4위를 차지했다. 대중화하기 어려운 하드코어 장르의 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기록이다. 서태지 자신이 설립한 제작사 '괴수대백과사전'을 통해 팔려나간 앨범이기 때문에, 수십억원에 이르는 수익이 그의 수중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또한 서태지는 스포츠용품 업체 프로스펙스와 1년 광고 출연 계약을 맺고 모델료 15억원을 받았다. 프로스펙스측은 '서태지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프로스펙스라는 브랜드가 30∼40대 '아저씨' 이미지에서 10∼20대 중심의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음반 시장은 서태지 컴백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해와 견주면 음반 기획사는 2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음반 시장 전체 규모는 고작 12% 늘어났다. 게다가 '잘 나가는' 몇몇 가수가 판매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질도 여전했다. 지난해 가수 조성모 혼자서 판매한 앨범이 4백만장에 달한다.

서태지가 들고 온 하드코어는 시장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핌프락은 '틴에이저들의 설익은 감각에 의존하는 애교형 댄스와 발라드 가요 천지'(평론가 임진모)를 깨뜨리는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진영의 길들여지지 않은 공격적인 정신'(평론가 강 헌)의 정수였다. 서태지가 교과서로 삼은 림프비즈킷·콘 등 외국 하드코어 밴드의 앨범 판매량이 늘어나 외국 직배사는 '서태지 만세'를 외쳤지만, 한국 음악 시장은 여전히 하드코어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강 헌씨는 "서태지 복귀 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서태지 복귀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울트라맨이야>의 판매 내역을 들여다보면 서태지가 하드코어 활성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한국음반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울트라맨이야> 판매량 1백30만장 중 1백10만장이 그가 컴백한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에 팔렸다. 결국 음반 업체 관계자들 중에는 이번에 서태지가 거둔 성공은 열성 서태지 팬들이 열심히 음반을 사준 것과 4년7개월 만의 '컴백 효과'가 아우른 결과로 보는 이가 많다.

서태지가 언제 음악계에 복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새로운 앨범을 들고 나타난다 해도 지난해 9월처럼 관심을 끌기는 어려우리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대부분 언론이 서태지가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을 짤막한 단신으로 보도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서태지에 대한 '거품'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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