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살아 있는 고전, 살아 있는 작가/최인훈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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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시절 대전에서 〈광장〉집필…
"이후 작품들은 여기서 파생"


1960년에 발표되고 그 이듬해 초판이 간행된 소설 〈광장〉은 그야말로 '광장'이었다. 문학 평론가 고 김 현이 "정치사적으로 보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으로 보면 〈광장〉의 해였다"라고 말했듯이, 이후 젊은 작가와 독자들은 〈광장〉에서 각자 광장을 확인하며 저마다의 광장을 꿈꾸었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최인훈씨는 개회사 직후 답사만 하고 곧 자리를 떠났다. 심포지엄이 열리기 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정중하게 거부했고, 현장에서도 사양했다. 답사의 대부분을 〈광장〉을 개작한 이유에 할애한 작가는 말미에, 지난 3월14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며, 앞으로 연구 자료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고사하기 위해 주고 받은 내용이 보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최씨는 〈광장〉 발간 40주년과 관련해 지면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광장〉이 태어나던 순간에 대한 작가의 '육성'은 들을 수 없었지만, 당시 기록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한 월간지에 쓴 글에 따르면, 〈광장〉은 1960년 여름, 대전에서 쓰였다. 육군 장교로 복무하던 작가는 대전 병참기지로 파견을 나가 피난민촌에 셋방을 얻어놓고 소설을 썼다. 작가는 "이후 나의 작품은 모두 이 작품에서 갈라져 나온 흐름 같은 생각이 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광장〉 이후 〈회색인〉 〈서유기〉 등을 거쳐 〈화두〉에 이르는 소설들은 거대한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은, 1947년 중학교 1학년 때 원산으로 이주했다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피난지에서 대학을 다녔다. 이같은 '지리적 통과 의례'와 '문화 충돌'이 작가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 질문은 1970년대 미국 체류 이후 쓴 희곡들에서 한국 문화의 원형질을 탐색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예술은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이다. 예술을 통해 의식과 행동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 나아가 생물적 신체와 관념적 신체의 결혼을 이루어, 인간 존재를 전방위적으로 가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해 들은 근황에 따르면, 최인훈씨는 몇 가지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 2월, 오랫동안 창작의 산실이었던 서울 갈현동 집을 떠나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했으며, 곧 강단도 떠나게 된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1977년부터 교수로 재직해온 서울예술대학을 정년 퇴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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