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상] 지루한 현실 톡 쏘는 벌침 같은 청량제 '엽기'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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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 깨는 패러디'로 의미 변화…점차 상투성 드러내


엽기 토끼 마시모루는 감긴 눈에 아무런 표정이 없다. 마시모루가 머리에 달고 다니는 '뚫어 막대기'는, 방아 찧는 토끼의 절구와 같다(무엇과 짝을 지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소풍 나온 곰의 간식을 집어 먹던 엽기 토끼는, 못마땅해 하는 곰을 보고 맥주병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는 '자해 공갈'을 서슴지 않는다.




인형 가판대에서는 엽기 토끼가 토토로·포켓몬의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엽기 토끼 모르면 간첩'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노점상도 있다.


스타성은 엽기 토끼에 뒤지지만 엽기 강아지 멍구가 하는 짓도 그에 못지 않다. 불도그가 목을 축이고 있는 샘에 멍구가 다가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샘에다가 볼 일을 보고 뒤까지 씻는다. 불도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멍구는 나뭇가지로 변을 건져 올려 보지만 되레 일이 더 커진다. 중간에 가지가 부러져 똥덩어리가 불도그의 얼굴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고 마는 것이다. 다음 장면에서 멍구는 말한다. '아, ×됐다.'('하룻강아지' 편)


마시모루와 멍구가 하는 짓을 보며 웃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들이 엽기 토끼·엽기 강아지라는 별명을 달고 있는 것이 의아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엄청난 패악질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엽기라는 말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 이외의 용례를 떠올리지 못하는 기성 세대라면 요령 부득이겠지만, 토끼나 강아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그들은 요즘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엽기'로 통칭된다.


문화 평론가 김종휘씨에 따르면, 현재 엽기적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시작과 끝이 마구 배신하는 탓에 황당·통쾌·허무한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경우'를 일컫는 것으로 말뜻이 바뀌고 있다. 지난 5월1일 첫 생일을 맞은 인기 사이트 〈엽기 하우스〉(www.ggame.com)를 운영하는 유지승씨의 말에서도 엽기라는 말에 의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올해 초 엽기가 잔혹한 폭력 사이트를 일컫는 것으로 회자되면서 덩달아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아 속이 상했다"라고 말했다. 〈엽기 하우스〉가 처음부터 코믹과 유머를 지향했는데도 아이들의 엽기적인 범죄와 자살 사건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애꿎은 오해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엽기 하우스〉는 엽기라는 문패를 단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으며, 네티즌이 원하는 엽기의 갈래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곳의 엽기성은 잔혹하고 기괴한 악취미와는 거리가 멀다. 매력적인 소녀가 똥을 누고 변이 끊기지 않아 좌우로 몸을 흔드는 내용의 〈걸(girl)〉(윤주영)과 같이 배설물을 소재로 한 코미디나 동영상이나 단편 애니메이션, 합성 사진과 궁합이 잘 맞는 패러디 엽기가 인기가 높다. '엽기 가수' 싸이도 지난 3월 애니메이션 버전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만화 캐릭터가 실제 싸이보다 잘생겨 아쉽지만 히트송 〈새〉의 랩 가사에 맞추어 '파닥 춤'을 추는 모습은 표정과 하는 짓이 어긋남으로써 허를 찌르는 싸이의 엽기성을 환기한다.


이처럼 엽기는 패러디의 다른 이름이 되어 가고 있다. 김종휘씨는 "매스 미디어에서 유행하거나 쟁점이 되는 사안이라면 거의 다 엽기 버전이 생기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김희선 얼굴에 둥그런 계란을 따붙인 '김희선 알몸', 'O양의 모든 것'이나 '백지영 풀버전'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녔던 패러디가 그 사례다.


유치한 현실 논리를 까발린다




김종휘씨에 따르면, 이런 엽기 패러디는 현실의 논리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까발린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하고 있다. 연예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현실 속의 논리는 뻔하다. 변호를 알리바이 삼아 한번 더 능욕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마당에 '김희선 알몸' 사진은, 기성 논리가 얼마나 유치한가를 단 한방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엽기성도 단순히 '압도적인 사악함'에 그치지 않고 코미디나 포르노와결합하면서 잡종화한다. 〈조용한 가족〉에서 시작한 잔혹 코믹극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엽기 포르노가 그 예다. 황당한 유머 덕분에 끔찍하게 잔인한데도 웃음이 먼저 터지거나 (〈조용한 가족〉 〈신장개업〉 〈휴머니스트〉), 여자 성기에 돋보기를 대는 순간 화면에 피가 가득 번지는 식이어서 성적인 자극보다는 황당함이 앞서는 잡종 포르노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편 엽기가 황당 유머라는 방향으로 번성하는 것, 그리고 사지 절단의 잔혹극으로만 발전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두 가지 노선에서 모두 엽기 특유의 전복성을 잃어가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문화 평론가 이동연씨는 "전통적으로 엽기적인 것은 끔찍한 상상력을 현실화하려는 과정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거기에는 '분열증적인 격조'가 존재한다"라고 지적한다. 지금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엽기물들은 공포스럽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우며, 상상력이 풍부하기보다는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엽기가 하나의 테크닉으로 동일시되고, 상업적 전략에 사용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더 엽기적'이라고 말한다.


이씨가 말하는 공포물의 격조란, 문학 평론가 황태연씨가 지적하는 고딕 소설의 매력과도 맞닿아 있다. 황씨는 백민석의 소설 〈목화밭 엽기전〉를 평하면서, 이 소설이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성이 몰아내고자 했던) 야만·광기·미신·변덕에 대한 매혹을 담아냈던 고딕 소설의 맥을 잇는다"라고 지적했다. 문명을 정복했다고 자부하는 인간의 어두운 정열에 주목함으로써 계몽의 오만함을 비웃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엽기 문화에서 긍정성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통념을 뒤흔드는 경계 허물기에서 미덕을 찾아왔다. 일상에서 혐오스럽다고 배척되어온 것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폐쇄적이고 지루한 현실을 공격하는 효과가 있으며, 따라서 엽기가 일상화하면서 신종 상품으로 제도화할 경우 순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엽기는 그런 '상투적 양식화'의 길을 착실히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변과 구토 등 혐오를 유발해 온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남과 여, 어른과 어린이, 강자와 약자에 관한 통념화한 권력 관계를 뒤엎는 반전이 기계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진부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 평론가 강진숙씨는 "엽기가 재탕에 그치거나, 〈딴지일보〉처럼 '모범 엽기'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엽기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김종휘씨도 최근의 엽기 문화가 톡 쏘는 청량감은 있지만 웅숭한 맛은 적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시효가 다한 것은 아니다. 김씨는 "엽기 작품이 그 자체로 무엇을 완성하지는 않더라도, 엽기 문화에 참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장차 중요한 차이가 생길 수도 있다"라고 지적한다. 뒤집어 보는 태도, 농담의 힘과 같은 것을 이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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