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조선 시대 기록화 '특별한 외출'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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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박물관 특별전/최고·최대 궁궐도〈동궐도〉등 나와




현존하는 궁궐도로는 최대·최고인 국보 제249호 〈동궐도〉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조선 시대 지리학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서울 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보물 제853호)〉도 내걸렸다.




겸재 정 선과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 김홍도의 활터 그림(〈북일영도〉), 계첩(契帖·주로 관리들 계 모임을 그린 그림과 참석자 명단을 적은 첩)으로는 보기 드물게 모임 구성원의 초상화를 일일이 그려 제작한 〈계미동경소진첩〉(1765년 전후 제작 추정)도 나왔다. 이 밖에도 조선 시대 궁중 기록화를 대표하는 반차도(班次圖), 관아와 주요 건물의 위치가 표시된 고지도들, 대규모 토목 공사 등 각종 국가적 행사 내역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의궤(儀軌) 류도 한자리에 내걸렸다. 지난 5월5일 시작한 고려대박물관 특별전 '조선 시대 기록화의 세계' 전시 내역이다.


이번 전시회의 노른자위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동궐도〉 일반 공개. 창덕궁과 창경궁 모습을 화첩 16책에 나누어 담아 궁궐의 전체 구조와 배치·규모·주변 경관을 웅대하게 그린 이 궁궐 지도는, 규모가 워낙 커서(전체 크기 가로 584cm·세로 273cm) 전시하기가 까다로워 1972년 이후 처음 공개되었다.


19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정밀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외전·내전 등 큰 건물은 물론, 용두(망새·합각 머리나 너새 끝에 얹는 용머리처럼 생긴 긴 장식) 잡상(궁전 추녀나 용마루 또는 박공 머리에 덧얹는 갖가지 짐승 모양 장식물)의 생김새까지 정확하게 묘사했다. 주변 환경의 '진경 처리'는 웬만한 산수화 작품의 유려함을 뺨친다.




조선 시대 기록화는 소재의 다양함과 묘사의 정확함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궁중에서 어명으로 제작된 기록화는 물론, 명문 사대부 집안의 기록화는 보통 당대 최고의 직업 화가(도화서 화원)들이 맡아서 제작하기 마련이어서 예술성도 빼어나다. 겸재 정 선이 특유의 진경 필치로 그려낸 관아 조감도나, 단원 김홍도가 어명을 받들어 역시 자신의 특장점인 웅대한 구도와 생생하고 치밀한 대상 묘사 실력을 유감 없이 베풀어 정조의 화성 행차 장면을 기록한 〈을묘원행정리의궤〉('화성능행도병'이라고 부르기도 함·서울대 규장각) 따위가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 기록화 계열의 단원 대표작 〈을묘원행정리의궤〉는 나오지 못했지만, 단원 그림 보는 맛을 톡톡히 즐길 수 있는 작품 두 점이 내걸렸다. 바로 '진경 산수'와 '풍속화'의 요소를 두루 갖춘 〈북일영도〉와 〈남소영도(南小營圖·남수영도라고 부르기도 함)〉이다.


북일영은 조선 후기 훈련도감의 분영으로 궁궐의 호위를 맡았던 부대. 관청 건물은 경희궁 무덕문 밖 지금의 사직동에 있었는데, 활터로 유명했다. 〈북일영도〉는 바로 그곳에서 조선 시대 남정네들이 흑립(삿갓의 일종) 쓰고 도포 두른 차림새로 활쏘기에 여념 없는 모습을 포착했다. 등장 인물 중 한사람이 과녁을 향해 힘껏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오늘날의 '스틸 사진'이 보여주는 생생함과 맞먹는다.


궁궐도·반차도·계회도·의궤·지도 등 기록화의 정수가 대규모로, 그것도 제작 연대가 이르게는 16세기 초반에서부터 늦게는 19세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된 유물(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드문 일이다. 이 전시는 오는 6월3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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