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푸른 안개〉표민수 PD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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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여, 아내와 함께 과거를 추억하라"/
"평범한 남자의 쓸쓸함 담고 싶었다"


남성들이 아내 눈치를 보며 본다는 드라마 〈푸른 안개〉. 처음에는 그저 '원조 교제를 다룬 또 하나의 불륜 멜로'로 회자되더니 중반을 넘어서면서 외도의 사회학을 논하는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심의 갈래는 두 가지다. 남성 시청자들은 부나 명예도 부질없다고 느끼는, 쓸쓸한 40대 남자 윤성재에게 동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뭐하러 그런 걸 보느냐'는 아내들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그 사건에 반응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지켜보는 재미다. "내 인생은 헛것이었다"라는 40대 남자 성재(이경영)의 독백 못지 않게, 젊음 그 자체에 매혹된 남편을 보며 "내 옆에서 늙어 죽어"라고 독살맞게 외치는 아내 경주(김미숙)의 고통 또한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사회학자' 이금림과 만나다


제작진의 진용부터 범상치 않았다. 작가 이금림씨는 '일상의 사회학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문제 의식이 풍부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옛날의 금잔디〉 〈당신이 그리워질 때〉 〈은실이〉 등을 통해 치매 문제와 직장 여성의 삶, 고도 성장기 보통 사람들의 애환을 밀도 있게 그린 것이다.


반면 연출자 표민수 프로듀서는 컬트 작가로 일컬어지는 노희경씨와 호흡을 맞추어온 감각파 연출자다. 연상의 미혼녀와 연하 유부남의 사랑을 다룬 〈거짓말〉, 서민들의 사랑법을 그려낸 〈바보 같은 사랑〉, 동성애를 다룬 〈슬픈 유혹〉 등이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모두 시청률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컬트 현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표감독의 섬세한 연출은, '소수자의 목소리'와 같은 옅은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흔들리는 40대의 초상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출발한 드라마가 처가살이하는 한 남자의 탈출기로 비칠 소지가 많다는 점이다. 성재가 내뱉는 대사는 이 땅에서 곁을 돌아볼 여력 없이 줄곧 달음질쳐온 중년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돈 많은 집안의 데릴사위라는 설정은 지나치게 친절한 것이어서 그의 행동이 처가살이에 지친 한 남자의 외도로 읽힐 소지가 많다. 표감독은 "처음에는 늦은 밤 회사 문을 나서면서 넥타이를 푸는 평범한 40대 남자의 쓸쓸함을 담고 싶었다. 중반 이후 그가 내몰리는 이유를 설명하려다 보니 비범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 남자가 되어 버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 남자가, 젊음 그 자체에 매혹되는 느낌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동기만으로 시청자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는지 모른다. 항상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이유로 개연성을 설명하려는 방송 드라마의 관성, 드라마의 부도덕성을 참지 못하는 시청자의 태도는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민수 프로듀서는 텔레비전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동성애자의 키스 장면(〈슬픈 유혹〉)을 찍을 만큼, 소재나 표현 면에서 파격을 거듭해 왔다. 원조 교제를 미화한다는 혐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의 관심은 단 하나. 사고처럼 닥친 상황을 통해 당사자 모두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가 고맙게 여긴 시청 소감은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사랑했던 시절을 돌아보았다'는 것이었다. 표민수 프로듀서는 "과거를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과연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알맹이가 있는 것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제작/좋은영화
감독/류승완
주연/정재영·이혜영·전도연



택시 운전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왕년의 금고털이 전문가인 ‘가죽잠바’ 경선(이혜영). 지친 몸을 드링크제로 풀고 담배 한 개비로 한숨을 돌리지만 삶은 곤고하다. 유일한 희망인 어린 딸과 해후하기 위해 그는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어두운 과거의 기억과 맞닿아 있는 칠성파 일당은 아직도 빚을 무기로 그녀를 쫓는다.





전직 라운드걸 출신 가수 지망생인 ‘썬그라스’ 수진(전도연). 복서 출신 투견장 양아치인 독불이(정재영)와 살고 있지만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하루가 멀다고 독불이에게 얻어맞는 그녀는 눈밑의 흉측한 상처를 가리기 위해 늘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수술로 흉터를 지우고 가수로 데뷔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꿈이다.


어느 날 접촉 사고를 통해 경선과 수진은 우연히 만난다. 서로의 비참한 처지를 확인하고 ‘인생 대반전’을 위해 의기 투합한다. 운전대를 놓은 경선과 선글라스를 벗은 수진이 찾은 곳은 투견장, 내기돈을 넣어둔 돈가방을 빼내기 위해 둘은 그곳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물욕과 탐욕이 이글거리는 투견장은 그들에게 그리 녹록치 않다. 한물 간 마초와 뒷골목 양아치들까지 엉켜 돈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 음모를 꾸미는데…. (3월1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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