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옛글의 행간' 깊이 읽기
  • 정 민 (한양대 교수·국문학) ()
  • 승인 200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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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 지음〈한문산문의 내면풍경〉/
선비들의 내밀한 생각·꿈 파헤쳐




글에도 풍경이 있을까? 내 대답은 '있다'이다. 다만 그 풍경은 겉으로 드러나는 경치가 아닌, 글쓴이 내면의 이런저런 풍경들이다. 〈한문산문의 내면풍경〉(소명출판사)이라는 제목은 매우 도전적이고 의욕적이다. 이제 와서 상형 문자와 다를 바 없게 된 한문 문장의 행간을 펼쳐, 그 안에 담긴 옛 선인들의 내밀스런 생각과 꿈을 들여다보는 일은 읽는 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겠지만, 쓰는 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터이다.


한국 인문학의 수준·저력 한 단계 높여


저자인 심경호 교수는 실로 외경을 자아내는 학자이다. 왕성하다는 말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경이로운 그의 작업량을 보고 있노라면, 열패감과 자조감마저 든다. 언젠가 학회의 뒷자리에서 거의 노동자 수준으로 작업한다고 말하던 그의 결연한 표정이 주던 엄숙한 결기도 이 글을 쓰는 이의 뒤통수를 뜨겁게 한다.


이 책은 그의 말에 따르면 '일견 딱딱해 보이는 한문 문체의 뒤에 얼마나 드넓은 풍경이 전개되고 있는지를 탐색한 글들을 선별'한 책이다. 그간 여기저기에 발표했던 학술 논문 여덟 편과 새로 쓴 글 한 편을 보태 한자리에 묶었다. 흩어져 있던 구슬이 하나로 꿰여 영롱한 보물이 된 듯한 반가움을 느낀다. 한 학자의 다양한 지적 편력 위로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이런저런 내면 풍경들이 물끄러미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문학의 수준과 저력이 어느새 이런 높이에까지 이르렀나 싶은 경이감도 없지 않다.




다만 책의 제목이 주는 심미적 느낌에 비하면 그 구체적인 목차- '구도자의 산수 유람' '주체의 윤리적 긴장과 산문' '화원에서 얻은 단상' '객주의 형상과 축재의 도' '기록 문학으로서의 한문 산문' '한문 산문에 나타난 허환(虛幻)과 실재(實在)의 문제' '경세가의 여행 기록' '일회성의 진실과 미학' '연암과 루쉰'가 다소 딱딱한 학술적인 글들로 이루어진 것은 조금 아쉽다.


이 중 가장 흥미로웠던 글은 '화원에서 얻은 단상'이다.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문집에 보이는 화원(花園)에 관한 글을 엮어 소개한 것이다. 이 글은 단순히 선비들이 경영했던 동산에 대한 취미를 정리한 글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통렬한 비판 정신과 시대를 읽는 우울한 내면 풍경이 함께 깃들어 있다.


'객주의 형상과 축재의 도'에서는 18세기 변화한 경제 환경이 옛 산문 속에 어떻게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서 밝혔다. 조선 후기 경제사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실감 있는 정보를 통해, 그 시대의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되살아 나는 느낌마저 든다.


신기루에 얽힌 옛 사람들의 글을 모아 허환과 실재를 논한 글은 그 시대 선비들의 꿈의 자취를 좇고 있다. 퇴계 이 황 선생이나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기행문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유기의 내용보다 선현의 준열하고 엄정한 삶의 모습을 되살려 놓는 데 더 큰 힘을 쏟는다.


어느 글에서나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은 글쓴이의 해박한 자료 섭렵과 이것을 간결하게 압축해낸 울력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 나는 우리 국학의 현재와 미래를 본다. 필자의 홈페이지 타이틀이 마침 '옛사람 내면풍경'이다. 이 우연한 일치에서도 같은 길을 걷는 동지의 교호감을 느낀다.알리에 주눅 들어 ‘갈지자걸음’- 김영진



<알리>를 연출한 마이클 만은 남자들의 얘기에 능하다. <히트> <인사이더>에서 남자들의 대결과 우정을 인상적으로 그렸던 마이클 만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복서이자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 홀로 맞섰던 알리의 삶을 여러 대결 구도로 펼친다. ‘<알리>는 말콤 X와의 우정과 결별, 조 프레이저와의 경쟁과 우정, 조지 포먼과의 운명적인 대결 등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고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알리를 둘러싼 사건들은 그냥 스쳐 흘러 지나간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모든 것이 알리의 내면 묘사에 묻혔다.


<알리>의 초반 10분은 숨이 막힌다. 캐시어스 클레이가 소니 리스턴을 누르고 챔피언에 오르는 1964년의 운명적인 시합 장면에 인종 차별이 일상에 만연했던 알리의 소년기와 청년기가 오버랩되면서 관객의 시선을 낚아챈다. 샘 쿡의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오>라는 노래가 깔리는 이 장면은 과거와 현재를 꿰는 알리의 마음을 가리킨다. 마이클 만의 연출 초점은 바로 알리의 마음이다. 격동기의 미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스포츠 영웅이 되었던 알리의 위대한 내면에 감추어진 고독과 좌절과 용기를 담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다.



알리는 운동을 잘하는 흑인이었지만 백인의 영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백인의 종교인 기독교 대신 이슬람교를 택했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으며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다. 그러나 미국의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고 흑인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그 순간부터 영화 <알리>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순교자 알리와 복싱 영웅 알리 사이의 묘사 축을 놓고 갈지자걸음이다. 마이클 만은 알리가 맞섰던 시대를 제대로 그려내지도, 그렇다고 그가 싸웠던 위대한 상대 복서를 세밀하게 묘사하지도 못했다.



이 영화는 알리의 내면을 파고들었지만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은 알리가 생애 곳곳에서 마주쳤던 멋진 호적수를 상대하는 장면을 제대로 그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 미국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선이 굵은 <알리>는 알리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 알리 자신의 내면의 물결을 균형감 있게 묘사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격정을 잡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영화는 때로 시적이며 종종 무아지경의 동일시를 불러일으키지만 알리의 실제 삶에 주눅 들어 그만 감동의 자극선을 놓치고 말았다.







느리게 다가오는
기묘한 감동 - 심영섭




마이클 만 감독은 ‘싸나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장기를 지닌 몇 안되는 감독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영화를 ‘진짜 사나이 영화’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가 감독한 <히트>나 <인사이더>의 남자 주인공들이 인생의 벼랑 끝까지 몰리면서도 세상과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우직한 사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화사하고 호들갑스런 남성 영웅주의 대신 정말 뼛속까지 저리게 만드는 고독한 남자들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그렇다면 복싱 역사상 가장 화려한 떠벌이 복서 알리와 진중한 마이클 만이 만나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알리>는 바로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을 한데 섞어 느리지만 기묘한 감동을 엮어 낸다.
영화는 위대한 미국의 흑인 가수인 샘 쿡의 에 맞추어 격렬하게 훈련하는 무하마드 알리의 주먹질 사이로 어린 시절을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흰 피부의 예수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어린 캐시어스 클레이. 흑인 전용 칸이 설치된 버스에 올라탄 그는 인종 차별이 유난히 심한 미국 남부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정상에 도전한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부터 영광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알리의 10년을 묵묵히 뒤따른다.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쏜다’는 일성을 남겼던 소니 리스턴과의 일전. 카메라는 ‘떠벌이’ 알리를 오히려 침묵으로 잡아낸다. 마이클 만 감독은 복싱 경기가 단순한 구경거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무게 중심을 잡는다. 리스턴과의 경기 장면 역시 어떤 속도의 변주도 없이 냉정한 자세를 일관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서서히 알리의 불안, 알리의 고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불안과 고독이 말로 표현될 뿐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전반부에 알리의 혼돈감을 형상화하듯 격렬하게 흔들리던 카메라는 갈수록 느린 발걸음으로 알리의 내면을 맴돈다. 그의 혼란은 바로 백인 위주 사회에서 사는 흑인의 정체성 혼란과 맞물려 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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