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인터넷 서점 제살깎기 '할인 혈전'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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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율 50% '엽기 세일'도 등장… 출판계 속수무책


우려했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다. 인터넷 서점의 할인 경쟁이 가속화하는가 싶더니 결국 멀쩡한 새 책이 정가의 절반에 서점에서 팔려나가는 세일 혈전이 인터넷 서점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출판계와 오프라인 서점계의 거센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최저 가격 보상제'라는 제도를 내놓았다.


인터넷 서점 업체 중 하나인 와우북 홈페이지에는 최근 소비자 처지에서 입맛을 바짝 당기게 하는 선전 문구가 등장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샀는데 다른 서점에서 똑같은 책을 더 싸게 파는 것을 알았을 때 아웅∼ 마구마구 화나시죠. 그럴 땐 포기하지 마세요∼. 보상받을 건 보상받아야죠….'




할인율 50% 시대 : 후발 업체들이 경쟁에 가세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책값이 '한계선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왼쪽은 한 인터넷 서점의 책 발송 작업. 오른쪽은 위기에 몰린 오프라인 서점.


최저가격보상제 실시를 알리는 이 선전 문구는, 와우북이 5월 한 달 국내에서 발행된 전 도서에 대해 정가의 50%로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가 출판사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힌 직후 등장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말 그대로 와우북이 판매한 책을 다른 서점이 더 싸게 팔았을 경우, 이를 신고 받아 '밑진 금액만큼' 고객들에게 마일리지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책값 비교 대상은 교보문고·영풍문고·알라딘·인터파크·예스24 등 경쟁 관계인 다른 인터넷 서점들. 와우북은 이전에도 자기네가 취급하는 책을 20∼30% 할인해 팔아왔다. 출판계가 원칙적으로 주장하는 도서정가제와는 애초부터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도서정가제 파문 이후인 지난 4월 인터넷서점연합회측이 출판계와 합의한 '도서 정가의 10% 할인, 5% 마일리지 적용' 원칙과도 한참 거리가 있었다.


지난해 9월 자본금 10억원으로 출범한 또 다른 인터넷 서점 '모닝365'의 가격 정책은 이보다 한술 더 뜬다. 하루 중 2시간을 임의로 정해 이 시간대에 파는 책에 대해서만큼은 정가의 50% 할인율를 적용하는 이른바 '엽기 세일'을 실시하고 있다. 그 대상은 업체가 하루 전 홈페이지에 띄워 알려준다. 모닝365는 이밖에도 특정 도서에 대해 1년 3백65일 정가의 36.5%에 책을 파는 이른바 '365 세일', 정가의 30%에 판매하는 '알짜 세일' 코너를 운영 중이다.


대부분의 다른 인터넷 서점들도 '파격 할인'이라는 측면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인터파크는 자기네가 취급하는 책에 대해 기본으로 20∼30%대 고율 할인을 실시하고 있으며, 일부 책에 대해서는 다 읽고 반납하면 도서 가격의 30%를 돌려주는 '페이 백 이벤트'를 실시 중이다. 이 서점은 또한 일부 베스트 셀러에 대해서는 할인율 40%를 적용해 판매하고 있다.


알라딘은 베스트 셀러에 대해서는 25% 할인율을, 일반 도서에 대해서는 평균 20%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과 연결된 교보·영풍을 제외한 인터넷 서점으로는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예스24도 표면적으로는 '할인율 10%, 마일리지 5%'라는 출판계와의 합의를 지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할인 경쟁에 가세했다. 이 서점은 와우북과 마찬가지로 지난 5월16일부터 최저가격보상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호객' : '값싸게 책을 사 볼 권리'를 앞세워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는 인터넷 서점의 홈페이지들.


출판계에서는 인터넷 서점의 최근 할인율, 특히 정가의 50%대 할인율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치라며 의아해 하고 있다. 이 정도의 할인율이라면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는 물론 책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도서 유통망인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출판사와 서점이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적정 할인율은 20∼30% 수준이다. 결국 50% 대에 육박하는 할인율은 인터넷 서점측으로서도 출혈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살인적인 할인율이라는 것이다.


출판사가 애써 만든 책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헐값에 판매되고 있다. 정가가 6천5백원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열린책들)는 서점에 따라 4천2백원에 판매되기도 한다. 지난해 황금가지가 펴내 공전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인터파크에서 정가 3만6천원(4권 1세트)짜리가 2만3천4백원(35% 할인)에 팔리고 있다.


인터넷 서점 스스로가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면서도 고액 할인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표면적으로는 '소비자 이익'을 앞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할인율을 주된 무기로 사활이 걸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보다 책값 더 높이는 것이 모두 사는 길"


책값 할인 경쟁은 인터넷 도서 판매 시장이 형성될 무렵인 1998∼1999년께 벌써 예견된 것이었다. 업체끼리의 경쟁이 가속화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출판계와의 힘겨루기에서 인터넷 서점 업계가 승리를 거두면서부터이다. 당국으로부터 '할인 판매'의 합법성을 공식 인정받은 이상 '싼 책값'을 앞세운 업계 내부의 시장 쟁탈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최근 인터넷 서점의 책값 할인 경쟁이 동네 책방이나 대학 구내 서점의 위축을 초래하며 무정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 서점은 줄도산 조짐이 보인 지 오래이며, 지방의 대학 구내 서점도 교수나 학생 모두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바람에 파리를 날리고 있는데도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책값 할인의 직접 피해 당사자인 한국출판인회의 등 출판업계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만 인터넷 서점과 거래하면 당장 '현금'으로 판매 대금을 받아낼 수 있는 달콤한 반대 급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계는 도서정가제 파문 때 집단 행동을 시도하다가 인터넷 서점 업계로부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제소까지 당한 상태이다. 돌베개 한철희 대표는 "몇몇 인터넷 서점이 지난 4월의 합의를 깨고 공격적인 마케팅 작업에 나서면서 인터넷 유통 구조가 갈수록 망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출판계는 속수 무책이다. 현재의 상황은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서점측은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값싸게 책을 사볼 권리'를 내세워 할인 경쟁을 정당화했다. 소비자 또한 이같은 논리를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이며 책방이 문을 닫든 말든, 출판사가 돈을 벌든 말든 원하는 책을 싸게 사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면 소비자들이 각종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며 값싸게 책을 사보는 재미도 결국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출판계는 현재의 파격적인 할인율 체제를 유지하면서 인터넷 서점·출판사 모두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책값을 실제 판매할 가격보다 더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터넷 서점은 이같은 책을 여전히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팔겠지만, 실제로 그것은 구매자들에게 실익이 전혀 없는 '거품'이 될 공산이 높다. 소비자에게는 실익도 별로 없고, 책값 결정 체제만 2중 구조로 만드는 것, 바로 여기에 '소비자를 위해' 사활을 걸고 책값 깎기 경쟁을 벌이는 인터넷 서점의 '고객 만족 정신' 실체가 숨어 있다.


지난 주말에도 외국 영화의 강세가 이어졌다. <오션스 일레븐>이 박스오피스 수위를 사수한 가운데 <뷰티플 마인드>도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한국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는 2주째 3위 자리를 지키며 선전하고 있다. 지난주 4위와 5위였던 <공공의 적>과 <내게 너무 가벼운 그녀>는 서로 순위를 바꾸었다. <공공의 적>은 전국 관객 3백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배급사가 원판 필름을 30여 분 가까이 잘라내고 상영한 것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킨 <알리>는 6위에서 7위로 내려앉았다.
지난 주말 개봉한 영화들은 별다른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버스 정류장>이 겨우 6위에 올랐고, <라이딩 위드 보이즈>가 10위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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