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도법 스님〈불교신문〉기고문
  • 전북 남원·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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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의 병이 너무나도 깊습니다"/

"폭력 사태 언제 재발할지 몰라"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이 단식 기도 당시의 심경을 고백하는 글을 〈불교신문〉 (7월31일 자)에 기고했다. 1998년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있을 때 폭력 문제를 근절하지 못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해인사가 대표 총림답게 지도력을 발휘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인터뷰와 함께 실린 스님의 글 '양심의 고백과 사무친 호소'를 간추려 싣는다.




배를 만지면 곧바로 척추가 만져지는 단식을 하면서도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폭력의 뿌리와 종단의 병폐인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 존재를 바치지 못하는 나약하고 게으른 제 자신을 눈물로 되새김질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저의 무지함과 불성실함과 속물스러움에 눈뜨는 계기를 갖게 해준 해인사 스님들을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단식 기간 내내 한국 불교가 참담하게 무너지던 1998년 종단 폭력 사태의 현장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불교인들을 망연자실하게 했고 모든 국민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던 그 처참한 광경들이 몸서리치게 다가왔습니다. 당시엔 너도나도 더 이상 폭력은 안된다며 분노하고 통탄했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종단의 병이 너무 깊습니다. 1998년의 종단 폭력 사태와 같은 재앙이 언제 터져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한국 불교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폭력성은 각자의 가슴에도, 총림에도, 선원에도, 강원에도, 본사에도, 말사에도 반드시 터지고야 말 지뢰처럼 잠복해 있습니다. 이는 종단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두렵고 두렵습니다.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폭력으로 인하여 수행자는 방황하고, 종도는 절망에 빠져 있고, 국민은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깊이 통찰하셔서 위로는 종정 예하, 원로 위원께서 대중을 위로하고 종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큰 가르침을 담은 단호한 지침과 유시를 내려 주셔야 할 때입니다.


불교의 위대함과 불교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2천6백여 년 동안 면면히 평화의 역사를 가꾸어 온 것에 있습니다. 불교의 아름답고 위대한 평화의 전통이 오늘 우리들로 인하여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평화의 전통을 오늘에 구현하지 못하는 한 종단과 수행자의 존재 이유는 상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폭력 평화 문화가 꽃피는 대전환점이 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비폭력 문화 정착의 시금석이 될 수 있도록 큰 걸음 내디뎌 주시기를 다시 한번 무릎 꿇고 거듭 호소하고 거듭 청원드립니다.



미국의 세계화, 세계의 미국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미국에 거점을 둔 초국적 기업, 국제 금융, 대중 문화가 지구 전체를 시장으로 만들었다. 제3 세계는 초국적 기업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다. ‘제국’은 새로운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문화가 추락하고 있다는 다급한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파격적인 문화역사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모리스 버만이 <미국 문화의 몰락>(심현식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서 미국의 왕성한 활력이 곧 미국이 몰락하는 징후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버만은 로마 제국을 붕괴시킨 요인들이 현재 미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버만은 네 가지 지점에서 미국의 몰락을 관찰한다. 우선 빈부 격차다. 1998년 빌 게이츠의 순수익 4백60억 달러는 미국의 하위 40%에 속하는 저소득층의 순수익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미국은 더 이상 중산층 사회가 아니다. 둘째, 사회보장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13년 후에는 사회보장제도가 무너진다.


셋째, 미국의 형편없는 지적 수준이다. 학생들은 3의 제곱을 27이라고 답하고, 물의 비등점이 46℃라고 말한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 ‘게티에 대한 연설’이라고 답한 학생도 있다. 넷째, 대기업이 주도하는 소비 자본주의가 정신적 죽음을 가져왔다. 쇼핑은 오락이며, 지성의 역할을 무시한 채 뉴에이지와 포스트모더니즘을 광신한다.


버만은 암흑기 중세에서 해결책을 빌려온다. ‘수도사적 역할’이다. 12세기 수도사들은 중세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문화의 보물(핵심)을 보존·전수하기 시작했다. 버만은 새로운 수도자 계층이, 현 문명에 내장된 보물을 찾아내고 이를 후대에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지성인인 새로운 수도자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기업이 주도하는 소비 문화에 휘둘리지 않고, 미디어와 반문화가 선동하는 유행에 눈 멀지 않으며, 엘리트주의자라고 공격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국 문화를 몰락시키는 요인들 가운데 적어도 세 가지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빈부 격차와 불완전한 사회보장제도, 지성에 대한 외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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