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흙·불·인간이 빚은 '영혼의 빛깔'
  • 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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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작가 10명〈경기도, 도자 예술의 혼〉전 열어…
사진으로 미리 보는 '도자기 엑스포'


조선의 마음은 흙을 물에 버무려 형상을 만든 다음,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의 중심으로 들여보낸다. 불 속에서 흙은 물을 버리고, 불순한 것들을 다 버리고, 단단함과 빛깔을 얻는다. 흙은 물·불·공기를 통과하며 새로운 흙으로 거듭나, 다시 물·불·공기 그리고 인간을 받아들인다. 흙은 흙이되 전혀 다른 성질의 흙. 이때부터 흙은 하나의 구멍을 가진 그릇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그릇은, 노자가 말했거니와 그 '비어 있는 속'으로 존재한다.




한국 조형미의 절정 : 이 땅의 고운 흙들이 조선의 마음과 만나 소박하고 단아하며 그윽한 형태와 빛깔을 얻는다. 왼쪽부터 사진가 서헌강씨의 작품. 물레질로 성형하는 순간을 잡았다. 성남훈씨의 흑백 작품. 가마에 불을 지피는 과정으로, 서헌강씨의 사진이다.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10명이 여주·이천·광주의 도자기 제작 현장과, 그 도자기를 탄생시킨 경기도의 자연과 역사, 문화와 삶을 렌즈로 포착한 사진전 〈경기도, 도자 예술의 혼〉이 열리고 있다(8월3일∼9월3일. 인천신국제공항 1층 입국장). 오는 8월10일부터 80일 간 여주·이천·광주에서 열리는 '세계 도자기 엑스포 2001 경기도'에 맞추어 내놓은 사진들은 인터넷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디지털 전시회이기도 하다(http://www.kcf.or.kr/CeramicArt/).


사진 1백20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사진가 성남훈·이규철·서헌강 씨가 도자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과 예술 혼을 기록했고, 2부에서는 강재훈·김봉규·허용무·이상엽·류우종·송정근·전성현 씨가 경기도의 어제와 오늘을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보았다.


인공 조명을 빼어나게 다루는 서헌강씨는 35년째 청자를 굽고 있는 이천의 도예가 김세영씨에게 가까이 다가가, 흙이 도자기로 태어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이천에는 현재 도자기 가마 1백40여 개가 도예촌을 이루고 있는데, 청동기 시대부터 토기 제작이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8·15 광복 이후 광주에서 옮겨간 도예인들에 의해 새로운 활기를 얻은 이천 지역 장인들은 실용 도자기보다는 전통 도자기를 선호했다.


남동쪽에서 남한강을 끌어들여 북서쪽으로 흘려보내는 여주는 북내면 싸리산 언저리에 도자기의 원료인 점토·백토·고령토를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다. 고려 말엽부터 백자를 굽기 시작한 여주 지역은 임진왜란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광해군 말기에 이르러 소박하고 단아하며 그윽한 조선의 미를 되찾았다. 현재 여주는 도자기 가마 6백여 개가 늘 불을 지피는, 전국 최대의 도자기 생산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가 이규철씨가 여주 백자와 옹기 제작 현장을 근접 촬영했다.




도자기의 '혼' : 광주·여주·이천에 수많은 도자기 가마를 일구어온 경기도 땅. 왼쪽부터 강재훈씨의 <남양주 두물머리>, 송정근씨의 <경의선 철도>, 허용무씨의 <한강변의 농사>.


조선 시대 왕실에 백자를 공급하던 광주 일대 가마들은 조선 성종에서 중종 연간에 조선 백자의 절정에 도달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되었다가 1960년대 초엽에야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시작했다. 도예가 신현철씨가 도자기 굽는 과정을 사진가 성남훈씨가 인물 중심으로 포착해, 흑백으로 표현했다.


올해 광주·여주·이천 지역에서 동시에 열리는 도자기 엑스포의 주제는 '흙으로 빚는 미래'이다. 도자 문화는 유구한 과거이면서 폭넓은 현재이고, 신소재와 함께 열리는 미래이다. 제1회 세계 도자기 비엔날레를 공식 행사로 여는(2년 뒤부터는 독자적인 비엔날레로 치러진다) 이번 도자기 엑스포는 세계 도자 문화의 커다란 흐름을 확인하고,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뚜렷한 조형 언어를 일구어온 한국 도자의 위상을 새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도자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 세계와 지역 사이에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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