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연예인에게 마약은 '뜨거운 유혹'
  • 안은주·고재열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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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사범', 해마다 크게 증가…무심코 빠져들어
탤런트 황수정씨와 가수 싸이 씨가 마약 복용 혐의로 잇달아 구속된 뒤 연예계 마약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예계가 마약 소굴이 아니냐'는 여론이 일곤 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정상급 연예인 둘이 잇달아 구속되어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황씨와 싸이 씨는 함께 구속된 강 아무개씨가 운영하는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함께 술을 마셨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한두 달 전부터 강남경찰서·용산경찰서·수원지검이 이들을 내사해 오다 황씨는 수원지검이, 싸이 씨는 용산경찰서가 검거했다.




검찰과 경찰은 이들과 함께 강씨의 단란주점을 드나들었던 연예인은 물론 청담동 ㄱ바를 자주 찾는 해외파 연예인들도 조사 중이다. 한 마약 수사 관계자는 "두 사람 외에도 대마초와 필로폰을 복용한 것으로 의심 가는 연예인 3명을 은밀하게 조사 중이며, 제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한동안 연예인 마약 수사에 총력을 기울일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황씨와 싸이 씨 구속이 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검찰과 경찰이 연예계를 최근 강도 높게 조사하는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지난해부터 연예인 마약 사범이 부쩍 늘고 마약 종류도 대마초에서 필로폰으로 확대되는 추세여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1999년 마약 사범으로 구속된 연예인은 48명이었지만, 2000년에는 81명으로 늘었다. 대검찰청 마약과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연예인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에 비해 68.8% 증가했다.


이와 함께 대마초가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와 달리 지난해부터는 필로폰 투약 연예인이 크게 늘었다. 한 인기 그룹 멤버였던 서 아무개, 영화배우 박 아무개, 에로 영화배우 박 아무개 씨가 지난해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된 바 있다. 1990년대만 해도 대마 사범이 주류였고, 연예인 필로폰 사건은 1년에 한두 건 정도였다. 이처럼 최근 들어 연예인 마약 사건이 부쩍 증가하고, 대마초 외에 필로폰에 손대는 연예인이 많아진 것은 연예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마약에 노출되어 있는지 입증하는 사례라고 수사기관은 인식하고 있다.


"예술성 향상된다" 잘못된 믿음


그렇다면 연예인들은 왜 마약에 빠져드는 것일까. 대검찰청 마약과 정비호 사무관은 "마약 공급자들의 활동 무대인 유흥업소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고, 마약을 하면 예술성이 향상된다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황씨 사건에서처럼 자주 드나드는 유흥업소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연예인들은 몇몇 업소를 정해놓고 자기들끼리 어울리는데,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유흥업소 사장이나 마약 공급자의 꾐에 빠져들기 쉽다. '피로회복제'따위 명목으로 내민 약을 무심코 받아 먹었다가 중독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황씨도, 처음에는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피로회복제'인 줄 알고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필로폰과 달리 대마초는 대부분 자발적으로 손을 댄다. 경찰청 김철민 마약계장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대마초가 청각을 예민하게 해 음감을 살리고 연주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한때는 매니저가 가수에게 대마초를 공급하기도 했고, 선배가 후배 가수에게 권하면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1975년부터 20여년 동안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가수는 100명이 넘는다. 이들은 한결같이 '음악성이 좋아진다'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언론도 대마초를 피운 가수에 대해서는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실제로 대마초를 흡연해 구속되었던 가수들 대부분은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마초 흡연을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대마초는 필로폰을 비롯해 중독성이 심각한 마약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드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마약 끊는 모임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신용원 전도사는 "대부분의 마약 중독자들은 대마초나 본드 따위 중독성이 약한 것으로 시작해 점점 더 강도를 높여 간다"라고 말했다. 가수 가운데 현 아무개와 전 아무개 씨도 처음에는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었지만, 나중에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재구속되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일단 마약에 빠진 연예인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 몰래 약을 구할 수 있어 수사기관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다.


공급업자, 연예인을 VIP 대접




대마초의 경우 국내 웬만한 시골에서 야생 재배하기 때문에 구하기 쉬운 데다, 최근에는 해외 출신 가수나 해외 출입이 빈번한 연예인들이 외국으로부터 직접 들여오고 있다고 수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네덜란드나 미국 몇몇 주에서는 대마초 흡연을 범법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생산과 공급 행위만 처벌한다. 이 때문에 해외 출신 가수들은 대마초에 대한 경계심이 적어 물건을 외국으로부터 직접 구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구속된 싸이 씨도 미국에 있을 때 처음 대마초를 흡연했고, 국내에서 대마초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소포를 통해 받았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마약 사건을 일으킨 신세대 가수들도 대부분 외국 출신이었다. 한 수사 관계자는 "몇 그램 정도는 책갈피에 끼워 보내기 때문에 소포 검색대에서 찾아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필로폰의 경우 다른 중독자들이 구하는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급자가 따로 있거나, 같은 공급자라 하더라도 연예인은 VIP 고객으로 철저하게 보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필로폰은 순도에 따라 가격차가 큰데, 돈이 많은 연예인은 적은 양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순도 높은 고급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촬영장 등에서 신체를 노출해야 할 상황이 많기 때문에 흔적이 남는 주사기를 이용한 직접 투약보다는 마시거나 흡입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어 순도가 높은 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황씨가 주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술에 타서 마신 까닭도 같은 이유라는 설이 있다). 공급책들은 고급 고객일수록 보호했다가 나중에 다시 이용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적발되더라도 연예인 고객 이름은 절대로 불지 않는다고 한다.


매니지먼트 사 '자체 통제'…"확산 가능성 적다"




1990년 이후 연예인 마약 범죄 일지
































1990년 배우 전○영, 탤런트 임○경 이○규 등 7명 필로폰 복용 및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탤런트 허○정 필로폰 복용으로 구속. 가수 이○철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1992년 가수 신○우 박○하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 입건.
1993년 가수 이○우 신○철, 록그룹 멤버 김○만 등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가수 현○영 필로폰 상습 투약으로 구속.
1995년 가수 조○배 박○현 박○하 양○섭 박○수 심○ 김○진, 배우 박○훈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가수 지○, 배우 김○선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 입건. 가수 김○룡 필로폰 상습 투약으로 구속.
1997년 탤런트 재○림 코카인 복용으로 구속. 가수 전○권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 가수 조○배 대마초 흡연으로 긴급 체포.
1998년 가수 겸 작곡가 하○훈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 입건.
1999년 가수 전○권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 개그맨 신○엽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2000년 힙합 그룹 멤버 김○욱 김○진 이○수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힙합 그룹 멤버 서○권 필로폰 흡입으로 구속. 영화배우 박○준 필로폰 투약으로 긴급 체포. 가수 조○현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이 때문에 연예계 마약 인구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소망을 나누는 모임'에서 만난 한 마약 체험자는 "요즘에는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이 더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 부류에는 일부 연예인도 포함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시간이 있으면 더 재미있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마련이고, 결과야 어떻든 그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 '금단의 열매'가 마약이라는 것이 체험자들의 말이다. 또 체험자들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가난한 자보다는 가진 자의 비밀이 더 잘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연예인이나 부유층 마약 사건이 실제보다 적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입장은 다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마약 공급자가 잡혔을 때 거물급 고객 명단을 제공하면 수사 과정에서 정상을 참작하는 경우가 있다. 마약 공급자라면 오히려 다수 고객을 보호하고 연예인 같은 거물급 한 사람을 부는 것이 실속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연예인이라고 해서 마약 복용 비밀이 특별히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또 최근 연예인 매니지먼트가 기업화함에 따라 연예인 마약 문제를 연예계 내부에서 스스로 통제하는 추세여서, 앞으로 연예계 마약 문제가 급속도로 확산될 전망은 적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마약 사건이 터질 경우 연예인의 '상품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므로, 매니지먼트 사가 적극 나서서 연예인과 마약의 사슬을 끊는 경향이 있다. 검찰청의 한 수사 관계자는 "어떤 매니저는 자기가 맡은 연예인을 24시간 내내 밀착 관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또 신인 가수들의 음반을 내는 기획사들은 도핑 테스트를 거쳐 가수를 발탁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황씨와 싸이 씨 사건의 파장이 워낙 커서 연예계는 한동안 마약 쇼크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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