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연예계는 '인권 황색 지대'
  • 김은남·차형석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12.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만적 테러' 위험 수위 넘어…인터넷은 악성 소문 '저수지'
지난 3월21일, 스포츠 신문 4개에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전면 광고가 실렸다. 허위 보도로 인기 여성 그룹 SES의 명예를 실추시킨 데 대해 〈연예신문〉이 사과한다는 광고문이었다. 무엇이 문제였기에 유례없이 전면 사과 광고가 등장한 것일까. 발단은 지난해 6월, 이 신문이 보도한 '슈 낙태설'이었다. 당시 이 신문은 SES 멤버인 슈가 낙태 수술을 받았다는 인터넷상의 풍문을 기사화하며, 수술이 행해진 병원 간호사의 증언까지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이는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이로부터 두 달 뒤, 서울 강남경찰서에는 인기 개그맨 서세원씨의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서씨가 딸 친구와 원조 교제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인터넷에 퍼뜨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 30대 여성이 고발 대상이었다. 조사 결과, 그녀는 단지 채팅방에서 접한 풍문을 다른 게시판에 '퍼 나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연예인에게도 인권은 있는가'. 최근 문화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몇몇 시민단체가 앞장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12월12일 '연예인들의 인권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의 공개 토론회를 시작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일반 대중에게 알릴 계획이다.


물론 연예인이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탤런트 황수정씨와 가수 싸이씨가 잇달아 마약 사건에 연루된 이후 연예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한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들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특히 황수정씨에 대한 언론 보도는 수세에 몰린 한 여성에 대한 '야만적 테러' 내지 '비겁한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였다고 전규찬 교수(강원대·언론학)는 공박했다(〈문화연대〉 12월호). '황수정 환각 상태 연기?' '황수정 성 집착 의혹, 남자 관계 복잡…' 같은 추측성 기사에서부터 '최음제인 줄 알고 있었다고 말해 강씨와 지속적인 육체 관계를 맺어 왔음을 드러냈다'는 식의 기이한 논리 전개에 이르기까지, 이들 언론은 '현란한 추리'와 '엽기적 해석'으로 '황수정이라는 여성의 몸에 대한 집단 강간'을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전교수의 비판이다.


비슷한 시기 개그맨 양종철씨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도 그 선정성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방송위원회는 최근 KBS 2TV 〈연예가 중계〉에 주의 명령을 내렸다. 이 방송이 지난 11월24일 양씨가 당한 불의의 사고를 보도하면서 전복된 차 아래 깔린 시신을 꺼내는 장면 등을 여과 없이 방송해 시청자에게 지나친 충격이나 불안감을 주었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공중파 TV도 "대중의 욕망에 충실"




그러나 연예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황색 언론만은 아니다. 공중파 텔레비전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한 PD는 "우리는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정보를 발 빠르게 취재해 보도함으로써, 우리의 임무를 다할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언론은 결국 대중의 욕망을 충실하게 대변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달 11월 연예인 마약 사건을 필두로 주영훈·손태영·신현준의 이른바 삼각 관계, 양종철씨 사망 사건, 정한용씨 간통 의혹 사건, 혼인빙자 간음 혐의로 인한 가수 주병선씨 구속 사건 등이 잇달아 터지면서 방송 3사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덩달아 수직 상승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층은 10∼20대이다. 이들에게 연예인은 우상이자 '밥'이기도 하다. KBS 드라마 〈학교〉에 출연한 뒤 청소년의 우상으로 떠오른 탤런트 ㅊ씨는 데뷔한 지 얼마 안되어 황당한 경험을 했다. 거리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는데, 바로 곁을 지나가던 여고생이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우, 정말 재수없게 생겼어!" 톱스타 반열로 성장한 지금은 그런 사건을 당해도 눈 한번 깜박 않지만 당시에는'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토록 무례한 행동을 참고 넘겨야만 하는 것인가' 싶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 ㅊ씨의 말이다.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마당에 가상 세계는 더 난장판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을 통한 정치인·연예인 명예 훼손 사건에 대해 기획 수사를 했던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황교안 부장검사는, 일부 사이트에서 유포되는 문자·영상 자료의 수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악의적이었다고 말했다.


톱 탤런트 ㄱ씨의 얼굴에 누드 사진을 합성하거나, 성형 수술 사실을 폭로한다며 조작된 사진을 싣는 정도는 애교였다. '탤런트 ㅅ은 걸레라더라. 모 연예인이 호텔방에서 어떤 증권업자와 ㅅ을 만나게 해주었다더라.' '연예인 ㅎ은 돈에 팔려 결혼한 여자이고, 성병에 걸려 늙으면 병신이 될 것이다.' '연예인 ㄱ은 남자를 후리고 다니다 에이즈에 걸렸고 질 수축 수술을 했다.' '가수 ㄱ은 처녀인데도 남자 관계가 복잡해 자궁에 루프 장치를 끼우고 다닌다.'


발신자 주소(IP)를 추적한 결과 이런 글을 올린 사람은 대부분 중고생 또는 대학생으로 확인되었다. 젊은 여성 연예인을 비방하는 글은 주로 같은 여성들이 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의 유형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나보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연예인이랍시고 깝죽대는 꼴이 보기 싫었다'는 소신파와 '남들이 올리기에 나도 따라 올렸다'는 무소신파가 그것이다. 서울지검은 이 중 8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참고인으로 소환한 연예인 대부분이 검찰 출두를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명예훼손죄는 친고죄와 유사한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여서 피해를 본 당사자가 처벌을 원해야만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인기에 방해가 될 것을 꺼린 연예인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검찰은 수사에 애를 먹었다.


법적 대응하는 연예인 많지 않아


실제로 치명적인 명예 훼손 내지 사생활 침해를 당하고도 법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연예인은 흔치 않다. 인기 정상에 있는 한 개그맨은 최근 여고생을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자 '유언비어를 퍼뜨린 자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다'는 말로 의혹의 불씨를 차단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경찰청 본청이나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할 경찰서는 신고를 접수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매니저는 "명예 회복도 좋지만 스캔들 자체가 보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법적 대응을 꺼리는 이유는 세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스스로 '구린' 데가 있을 경우이다. 둘째는, 법적 대응 자체가 불러올 논란이 달갑지 않은 경우이다. "법적 분쟁이 일면 그 자체가 뉴스가 된다.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팔레트뮤직 관계자의 말이다. 셋째, 인터넷으로 인한 명예 훼손과 관련된 사건일 경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곧 소송에서 이겨도 손해 배상금으로 받은 돈보다 변호사 선임비로 나가는 돈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연예인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서세원씨나, 자신의 아들과 관련된 유언비어를 기사화한 스포츠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방송인 백지연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던 개그맨 주병진씨 또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존 언론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66쪽 딸린 기사 참조).


대형 매니지먼트사도 최근에는 조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앞서 소개한 SES 멤버 낙태설 보도와 관련해 해당 신문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이 회사는 지금은 해체된 인기 그룹 HOT의 앨범곡 일부가 자작곡이 아니라는 글을 PC통신에 올린 고3 여학생에 대해서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지난 9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문제는 이들 매니지먼트사 또한 연예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당사자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방송연예인노동조합 김기복 사무처장은 기획사 및 방송사와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 제작진의 전횡 따위를 대표적인 인권 침해 요소로 지적했다.


물론 개중에는 '서민이 평생 뼈빠지게 벌어도 모으기 힘든 거액을 CF 한 편으로 챙기는' 연예인들의 인권까지 일반 대중이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비아냥도 있다. 한 중진 개그맨은, 연예인들이 스스로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세태를 개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연예인에게 공직자와 같은 수준의 높은 첨령성·도덕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화연대 이동연 사무차장의 지적이다.


"연예인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못한 연예인을 집단으로 매도하는 과정에서 대중은 황색 언론 및 연예 상업주의의 공모자가 된다. 연예인에 대한 무의식적·잠재적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연예인을 헐뜯고 조롱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행위가 연예인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까지 좀먹고 있다는 것이다.대배우 망가뜨린 단순무식한 감독-김소희



당신은 ‘비트(bit)의 여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옛날 옛적 인류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비너스·수로부인처럼 신화적인 상상력에서 탄생한 인물이었다. 구비문학 시대나 소설 시대의 춘향·베아트리체 또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러나 영상 시대가 되자 우상은 실존하는 인물이 되었다. 당신과 나의 머리 속은 이미 무수한 스타들의 만신전이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우상 또한 디지털 여인이 될 것인가? 앤드루 니콜 감독은 영화 <시몬>을 통해 ‘그렇다’고 대답한다.



영화는 이제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디지털 배우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들 이야기한다. 오드리 헵번이 브래드 피트와 함께 로마의 광장을 뛰어다닐지도 모르고, 그레타 가르보는 더 이상 자신의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신비로운 얼굴과 목소리를 거듭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스타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질린 감독은 러시아 스타일의 고전적 마스크와 남미 스타일의 섹시한 몸매, 영국 스타일의 목소리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프로그래밍한 이미지 파일 하나를 가지고 뚝딱뚝딱 영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시몬>은 이런 호기심을 개진하는 SF 영화다. 시몬(Simone) 즉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된 가상의 존재(Simulated one)가 어렵지 않게 전세계 언론과 대중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다만 그 상상 세계가 현실과 워낙 가깝게 여겨져 SF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감독의 야심은 하나 더 있다. 쇼 비즈니스와 대중 조작의 실상을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그것이다. 극중의 빅터 타란스키 감독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몬을 전세계 매체와 대중이 숭배하도록 만들고 거대한 스타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과정을 하나하나 실현해 간다. 그 중에는 홀로그램을 이용한 대형 콘서트도 포함된다. 타란스키의 말에 따르면 한 사람보다 10만명을 속이기가 더 쉽다.



타란스키 감독 역은 알 파치노가 맡았다. 한국의 거의 모든 남자 배우가 연기력의 표본으로 거명하는 바로 그 배우이다. 다만 드라마와 미장센의 짜임새 대신 군데군데 ‘철학적인’ 대사를 읊조림으로써 영화가 심오해질 수 있다고 믿는 감독의 단순무식함은 대배우라도 어찌해볼 수 없었던 듯하다. 알 파치노는 감독에게 희생당한 것이다.





너는 아느냐 디지털의 힘을-김봉석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개봉되었을 때 영화계에서는 약간의 논란이 벌어졌다. 컴퓨터 안에서 3차원으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은 이론적으로 피사체 없는 영화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실제 배우 없이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들어낸 배우를 이용하여 영화를 찍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문제는 캐릭터가 가진 외모의 사실성이 아니라 인물 성격과 이야기의 진실성이다.



빅터 타란스키의 고민도 그것이다. 영화를 찍으려면 반드시 배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기 여배우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온갖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스타의 요구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무명 배우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타협이다. 흥행을 위해서 굴욕적인 조건으로 스타를 기용할 것인가, 무명의 작가주의 감독으로 지조를 지킬 것인가.



빅터 타란스키는 가공 배우를 만들어냄으로써 타협했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자기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배우를 소유하는 것이다. <시몬>이 그럴듯한 것은, 이미 디지털 배우가 현실 영화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 워스>의 자자 뱅크스, <해리 포터>의 토비, <반지의 제왕>의 골룸 등이 현실의 배우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디지털 캐릭터다. 이 디지털 배우들은 무한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행크의 말처럼 예술과 과학의 완벽한 결합인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통제하는 미래 사회를 풍자한 <가타카>를 연출했고, 자신이 리얼리티 쇼의 완벽한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눈치 챈 남자의 이야기 <트루먼 쇼>의 각본을 쓴 앤드루 니콜은 ‘가상’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시몬을 조작하는 데 맛을 들인 타란스키는 혼자 중얼거린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야, 가짜를 만드는 능력이 가짜를 알아보는 능력을 이긴 거지. 난 현실의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