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신동, 거장의 길 열다
  • 노승림(월간 <객석> 기자) ()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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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롱 티보 콩쿠르’ 우승한 임동혁/“2005년 쇼팽 콩쿠르 1위 도전”
지난해 말 열일곱 살에 파리 롱 티보 콩쿠르에서 승전보를 전해준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2002년 신년 음악회에 출연하기 위해 귀국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동안 한국은 세계 음악계에 사라 장·장한나·다니엘 리 등 놀라운 신동들을 배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현악기 장르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임동혁의 우승은 유독 아시아계가 진출하기 힘들던 피아노 장르에 한국의 이름을 알린 쾌거라 할 수 있다.


46kg 몸에서 내뿜는 놀라운 파워


무엇보다 롱 티보 콩쿠르는 쇼팽·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회이다. 1943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마그리트 롱과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가 창설한 이 콩쿠르는, 3년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이 번갈아 열린다. 그 동안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 중에서는 1986년 안영신, 1992년 이용규가 입상한 기록이 있다. 특히 이 대회는 여느 콩쿠르와 비교할 때 ‘신동들의 경연장’으로 이름이 높다. 일단 예선 참가 자격은 32세 이하로 제한되며, 본 대회에서도 나이가 어릴수록 가산점을 받는다. 1998년에는 준결선 진출자 20명 모두가 23세 이하였을 정도로 어린 연주자에게 큰 비중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2차 예선 당시 우수한 연주를 들려준 몇몇 30대 참가자가 예선에서 탈락해 잡음이 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동혁은 17세로, 2위에 머무른 러시아의 라흐코프스키와 더불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린 나이를 기록했다. 롱 티보 우승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과거 17세에 우승을 거머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브 부닌과 똑같은 최연소 동률 기록인 셈이다. 우승과 더불어 임동혁은 결선 당시 협연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투표로 뽑은 오케스트라 상과, 프랑스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한 연주가에게 주어지는 마담 데스캬브 상(이번에 임동혁이 연주한 라벨의 <라 발스>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주한 프랑스 레퍼토리였다고 한다), 독주곡을 가장 잘 연주한 이에게 수여하는 SACEM 상, 파리 음악원 학생상, 레코딩을 후원하는 슈빌리옹 보노 상 등 다섯 가지 상을 여분으로 수상했으며, 부상으로 35만 프랑(약 6천3백만원)을 받았다.



롱 티보 콩쿠르는 임동혁 개인에게는 바로 전에 출전해서 5위에 머물렀던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 결선 탈락의 악몽을 말끔하게 털어낼 전환점이 되었다. 반면 당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본인 피아니스트 아야코 기무라는 5위에 머물러 희비의 쌍곡선을 그었다.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는 형(임동민)을 보고 자극 받아 초등학교 1학년 때 음악을 시작했다는 임동혁은 현재 모스크바 음악원 4학년생. 삼성물산에 근무하는 아버지 임홍택씨가 두 아들의 음악 교육을 위해 모스크바 파견을 자원해, 가족 모두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으로 향하는 여느 음악 유학과 다른 행로를 택한 데 대해 임동혁은 “한국에 있을 당시 스승의 권유가 있었다. 음색·소리보다는 프레이징(악절)이나 인토네이션(억양)에 더 치중하는 것이 러시아 음악 교육의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173cm, 46kg에 불과한 몸인데도, 피아노를 연주할 때 요구되는 스태미너와 파워에서 여느 연주자와 비교해 결코 처지지 않는 것도 주변에서 신기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의 러시아 친구들은 그를 ‘46의 파워’라고 장난 삼아 부른다고 한다.


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비롯해 쇼팽·라흐마니노프·브람스 등 기초 체력을 상당하게 요구하는 레퍼토리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 지도 벌써 오래이다. 1999년 11월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에게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발탁된 임동혁은 그녀의 후원에 힘입어 2002년에는 EMI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낼 예정이다.


“연주회 직전 긴장감이 가장 큰 골칫거리”


“쇼팽처럼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작품들이 적성에 맞는다. 반면 모차르트나 바흐 같은 고전 이전의 작품들은 소화하기 어렵고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어서 부담스럽다”라고 말하는 그는, 연주회 직전의 긴장감이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했다. 이 때문에 때로는 링거 주사를 맞거나 안정제를 먹기도 한다고. 그러나 피아노 앞을 떠나면 그는 또래의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온다. 콩쿠르 직전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이제는 못하게 되었지만 농구를 비롯한 운동을 좋아한다. 기계와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아 집안에 있는 고장 난 기기들은 그가 도맡아 고칠 정도라고 한다.


일단 세계 정상을 맛본 임동혁은 앞으로 콩쿠르 참가를 자제하고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꿈인 2005년 쇼팽 콩쿠르에는 반드시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월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신년 음악회에서 그는 김홍재가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새해 벽두부터 썩 유쾌한 화제는 못되지만, 곧 감행되리라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해를 넘겼다. 전쟁이 터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다는 점에서 2003년 세계사의 화두는 아마도 이라크 전쟁이 될 성싶다.





미국은 왜 그토록 이라크 전쟁에 집착하는 것일까? 하워드 진의 말마따나 미국 내에서는 노숙자들이 얼어 죽고 있는데, 미국의 무기가 해외에서 사람들을 죽이려 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잔혹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 대한 도덕적 응징이라고 여긴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대로 ‘석유 패권’ 때문이다. 매장량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이라크의 석유를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질서 속에 가두려는 세계화 구상에 이라크가 고분고분하지 않아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미국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주먹을 휘두르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미국이 주먹을 휘두른 결과는 또 어떤가?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 때 이라크 민중은 단순한 오폭의 희생자가 아니라 표적이었다. 옹색한 방공호에서나마 이슬람 축제를 즐기려던 사람들이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탄의 폭격으로 4백여 명이나 희생되었다. 전쟁의 대가로 이라크가 감수해야 했던 경제 제재도 본래 목적인 대량 살상 무기 해체를 유도하기는커녕 국가와 국민 전체의 목을 죄는 범죄가 되어버렸다.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하수 소독에 쓰이는 염소 수입을 금지하는 통에 전염병이 창궐하고, 심지어는 연필마저 수입 금지 폼목에 올랐다. 연필 심을 이루는 흑연이 비행기 추적을 막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앤서니 아노브 엮음, 이수현 옮김, 북막스 펴냄)은 노엄 촘스키로 대표되는 미국의 ‘삐딱한’ 지식인들과 ‘황야의 목소리’ 같은 반미 활동가 그룹의 논설·강연·인터뷰·르포·신문 기사를 통해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그리고 장차 일으키려고 하는 이유와, 전쟁의 결과로 지금까지 지속되는 경제 제재의 참상을 분석하고 고발한다. 세계화 전략의 추악한 이면을 ‘이론적’으로 까발릴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이라크 민중의 고단한 삶을 ‘감성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소 산만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호소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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