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시청하면 베스트 셀러 보인다
  • 고재열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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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등 소개하는 작품마다 '대박'
우리 프로그램 덕분에 매출이 늘었다며 서점 아저씨가 책을 공짜로 주었다.”(유재석)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과 책(봉순이 언니) 얘기만 하다가 아이 치료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김용만) 지난 1월16일, MBC <느낌표!>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1월24일 방영분) 촬영장에서 유재석·김용만 두 진행자는 너스레를 떨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느낌표!>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지음)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된 책은 <봉순이 언니>(공지영 지음)이다. 이 책의 마지막 촬영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두 진행자는 ‘우리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라며 멋쩍어했다. 그러나 이들이 한 달 동안 들고 다니며 소개한 두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공짜로 7억원어치 광고하는 셈





이제 <느낌표!>는 출판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7월 초판을 인쇄한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방송 전까지 3만 부 정도가 팔렸다. 최근 들어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 책은 방송이 나간 후 3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지금도 주문이 밀려 출판사는 10만 부 정도를 더 인쇄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점점 더 빨라져서 <봉순이 언니>의 경우 불과 몇 초 동안 예고 방송이 나간 다음주에 바로 베스트 셀러 3위에 진입했다. 1998년 7월 출간되어 약 10만 부가 팔렸던 이 책은 방송 이후에는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르며 10일 만에 20만 부가 판매되었다. 교보문고에서는 요즘 <봉순이 언니>가 1주일에 4천5백권 정도 팔리는데 이것은 웬만큼 팔리는 책의 6개월 판매량과 맞먹는다.


책과 오락 프로그램,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오락 프로그램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느낌표!>가 처음은 아니다. 코미디언 김병조씨가 책 소개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었고, 가수 조영남씨도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의 저자 석용산 스님을 자신이 진행하는 ‘조영남쇼’에 부른 적이 있다. 이 책은 방송 이후 책을 사려는 사람이 서점에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느낌표!>처럼 토요일 밤(9시45분) 황금시간대에 책 소개 코너가 편성되어 방송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오프라 윈프리가 진행하는 ‘오프라 북클럽’이 출판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쇼에서 소개된 후 더 팔린 책만도 2천만 권이 넘는다.

매주 <느낌표!>를 시청하는 사람은 5백만명이 넘는다. <느낌표!>의 방송 광고료가 편당 9백18만원(15초 기준)이므로 17분 동안 방송되는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 책이 소개되는 것은 약 7억원짜리 광고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 프로그램이 일으키고 있는 반향이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책 소개는 본질적으로 배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KBS) <행복한 책읽기>(MBC) <책과 함께 하는 세상>(EBS) 등 다른 책 소개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책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만 권 이내이다. 지난해 6월 프랑스에서는 28년 동안 방영되던 책 소개 프로그램 ‘부이용 드 퀼튀르’(문화의 용광로)가 낮은 시청률 때문에 막을 내리기도 했다.


청소년 파고들고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 ‘성공’





다른 책 소개 프로그램과 달리 <느낌표!>가 돌풍을 일으킨 이유로는 그동안 책을 읽지 않던 대다수 시청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존 책 소개 프로그램은 이미 책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는 소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추어 제작되는 <느낌표!>는 청소년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기존 책 소개 프로그램과 달리 문학 평론가나 작가가 아닌 개그맨이 진행을 맡은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자기들도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진행자들은 눈높이를 시청자에 맞추고 있다.

실제보다 과장해서 책에 대해 모르는 척하며 자신을 낮추는 이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느낌표!>의 김영희 프로듀서는 “자기가 읽은 책을 진솔하게 소개하고 자신이 얻은 감동을 전하는 일반 시민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통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느낌표!>에서 소개된 책은 방송이 나가는 동안 팔린 책의 수익금과 저자의 인세가 전부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도서관 확충 기금으로 기부되게 되어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경우 수익금과 저자 인세를 합쳐 약 7억원이 기부되었다. 제작진은 연간 100억원 정도의 성금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을 자문하고 있는 김재윤 교수(탐라대학·문헌정보학)는 “독서진흥기금법을 없애고 독서진흥위원회를 폐지하는 등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역행하는 정부를 대신해 <느낌표!>가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책을 웃음 소재로 전락시켰고 책 소비의 편중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방송에 소개된 책 때문에 다른 책이 덜 팔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은 책이 웃음의 소재가 된 것에 대해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한다. 오히려 그 덕분에 청소년들이 쉽게 책과 친해진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책읽기의 편중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 단체는 다르게 해석한다. 노최명숙 사무국장은 “<느낌표!>가 청소년 도서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 출판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플러스섬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교보문고 매장 관계자는 방영 이후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10% 정도 늘고 특히 소설의 경우 60%나 판매가 늘었다면서 이를 <느낌표!> 효과라고 분석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느낌표!>가 도서 시장의 판도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베스트 셀러는 절반 이상이 외국 저자의 책이었다. 국내 저자의 책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느낌표!>가 출판 시장을 후끈 달구어서 한국 영화 신드롬처럼 국내 서적 신드롬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단 진행자 두 사람은 <느낌표!>의 가장 확실한 수혜자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에 2명은 1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그 2명이 바로 우리였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프로그램을 맡은 뒤부터 독서광이 되었다.
고재열 기자



여전히 핵 위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대는 바뀌었다. <이중간첩>이 보여주는 1980년대 초반의 남과 북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다. 남과 북은 무장 요원과 스파이를 서로에게 침투시키고, 남에서는 고문으로 유학생 간첩단을 만들어냈고, 북에는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했다.






여진은 남아 있지만, 21세기의 남과 북은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것만 해도 큰 진전임을 <이중간첩>은 알려준다. 과거의 우리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살아 남으려 했었는지를, 얼마나 가시밭길을 걸어왔는지를 <이중간첩>은 조금 보여준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이야기와 풍경을 그려낸 것만으로도 <이중간첩>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주인공 림병호(한석규)는 이중간첩이다. 1980년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림병호는 위장 귀순해 남한에 오게 된다. 하지만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독한 심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거에도 위장 귀순은 있었고, 림병호 같은 엘리트가 귀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무사히 심문을 통과한 림병호는 북파 요원을 교육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정보부에서 대북 정보 분석을 맡게 된다.



짜임새 엉성해 긴장감 떨어져



주변의 신뢰도 쌓이고, 어느 정도 자유를 얻게 된 병호는 접선을 통해 고정 간첩인 윤수미(고소영)를 만나 정보를 북으로 빼돌린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신분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북에서는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남에서는 폐기 처분하려 한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중간첩>은 할리우드의 스파이 영화들과는 다르다. 긴박감 넘치는 스파이의 활약을 그리는 장르 영화의 공식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신인인 김현정 감독은 차분하고 성실하게 당대의 상황과 ‘이중 간첩’의 마음의 궤적을 그려내는 데 열중한다.



하지만 <이중간첩>은 어쩔 수 없이 ‘첩보’ 영화다. 첩보기관을 둘러싼 ‘간첩’의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지 못한다면 사실성은 떨어진다. <이중간첩>은 살벌한 1980년대의 풍경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야기의 짜임새는 떨어진다. 고정 간첩들이 검거되면서 점차 수사망이 좁혀지는 과정과 정보부가 림병호를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이 너무 허술하게 처리된다. 정보부가 림병호를 그토록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어설프게 진행되는 탓에 <이중간첩>의 긴장감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여기에 일조한 것은 고소영의 연기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고정 간첩이 되지만 평생을 두려움과 회의 속에서 살아온 여인의 인생이, 고소영의 연기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중간첩>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보여주었던 문제 의식과 사상에서 멈추어버렸다. 1980년대만 해도 그런 문제 의식은 유효했지만, 21세기에는 합당하지 못하다. <이중간첩>은 1980년대를 형상화하면서, 그 시대에 갇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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