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싸운 ‘사상의 전사’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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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타계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모든 방면에서 투쟁한 지식인”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난 1월24일 밤,
파리에서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사회학뿐만 아니라
철학·인류학·문화비평 등을 넘나들며 모든 억압과 불의에
맞서온 그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가장 강도 높게
비판해온 지식인이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프랑스의 지성인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애도를 표했다. 부르디외로부터 맹공을 받았던 매스 미디어들도
지면과 전파를 아끼지 않고 ‘행동하는 지성’을 기렸다. <르 몽드>와
<리베라시옹> 등 유력 일간지들은 부르디외의 부음을 1면 머리
기사로 올렸고, 3개 텔레비전 방송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부르디외
특집을 내보냈다. <르 몽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비판적
지식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부르디외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고인은 ‘모든
방면에서 투쟁한 사회학자’이며 ‘좌익 중의 좌익’이라고 밝혔다.


우파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고인을 ‘참여하는 사상가이자
사상의 전사’라고 애도했으며, 사회당 소속인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사상과 행동의 변증법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추도했다.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자크 데리다(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동료 교수이기도 하다)는
‘부르디외는 사유와 글쓰기를 통해 사회의 진실을 밝히고 이를 몸으로
실천했다’라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1930년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소도시 베라른에서 전형적인 유태인
소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부르디외는 일찍부터 반항아였다.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박사학위를 받지 않았다. 교육 제도라는
권위에 도전한 것이었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알제리로 건너가
서구 문명의 침략을 받고 신음하는 그곳 원주민들의 문화적 충격을 인류학적으로
접근했다.


교육 제도에 도전, 고등사범 박사학위 받지 않아


5년 여 만에 귀국한 그는, 프랑스의 교육 제도가 안고 있는 불평등
구조를 비판하는 저작들을 발간했는데, 이 저서들이 1968년 프랑스 5월혁명의
한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후 부르디외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과 예술
분야를 관찰하며 계급의 지배가 작동하는 방식을 읽어냈다. 이 무렵에
나온 <재생산>(국내에서는 2년 전 이상호씨의 번역으로 동문선에서
나왔다)이 1970년대 초반 영역되면서 부르디외 사회학은 세계를 무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부르디외 사회학의 대표적 개념은 ‘아비투스’와 ‘장(場)’. 아비투스란
사회 구성원들의 실천이 이루어짐에 따라 생겨나는 지속적인 성향들의
체계적 형식이고, 장은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사회적 조건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와 장을 신체와 사회의 관계에 비유하곤 했다. 그의 관심은
<구별짓기> <세계의 비참> <텔레비전에 대하여> <강의에
대한 강의> 등 30여 권의 저작으로 심화·확대되면서 부르디외
학파를 일구어냈다.


부르디외는 2000년 9월, 대산재단이 주최한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심포지엄에서 ‘세계화는 조종사
없는 항공기’라며 신자유주의가 유포하는 청사진이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세계화는 미국의 이익을 세계화하는 것이며,
결국 모든 것을 시장에 내맡기는 무책임한 방임을 합리화하는 구호일
뿐이었다.


부르디외는 거리의 지식인이었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함께
손을 잡았고 노숙자들의 시위에도 참여했다. 2년 전에는, 세계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유럽의 노동조합, 시민단체, 그리고 귄터 그라스와 같은 지식인들이
연대하는 회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2년 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면 자기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청와대 방문을 주저했던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서울을 떠났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추세에 대해, 그리고 그 추세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대해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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