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 선율, 한국에 ‘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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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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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든·루발카바 듀오 공연 등 라틴 무대 줄이어
노승림 (월간 <객석> 기자)



바야흐로 국내에도 라틴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올해 내한 공연 일정을 살펴보면, 예년에 비해 라틴 장르가 큰 폭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월 찰리 헤이든과 곤잘로 루발카바가 내한 공연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4월에는 피아졸라(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탱고 연주자) 생전에 건반악기 주자로 활동했던 파블로 치클러의 탱고 공연, 5월에는 콰르테토 조빔-모렐레바움의 보사노바 공연, 6월에는 쿠바의 정통 음악 그룹인 쿠바니스모의 콘서트가 이어진다.





예전 같으면 1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이들 라틴 계열의 공연이 이렇듯 줄을 잇게 된 데에는 지난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추초 발데스 등 거물급 쿠바 재즈 뮤지션들이 내한 공연에서 잇달아 성공을 거둔 영향이 크다. 1997년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전세계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래, 이들 쿠바 뮤지션은 세계 음반 시장 점유율 5위이던 브라질을 제치고 라틴 음악을 선도하는 수장으로 떠올랐다.



물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이전에도 쿠바 음악은 존재하고 있었다. 카리브 해에 자리 잡은 이 작은 섬 나라의 음악은 ‘라틴 음악’ ‘아프로 쿠반 재즈’ 혹은 ‘살사’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심지어 우리나라 대중음악에까지 흔적을 남겨놓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를 열광시켰던 트로트 <나폴리 맘보>라든가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가 바로 미국에 유입된 쿠바 음악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온 대표적인 사례였다. 단지 기득권 국가의 음악이 아니라는 이유로 ‘월드 뮤직’이라는 커다란 범주 아래 창씨개명되어 불리고 있었을 뿐, 이들의 음악은 일찌감치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 ‘트로트라니, 그렇다면 딴따라?’라며 의문을 품을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을 ‘딴따라’로 폄하하기에는 그 잠재력이 너무도 무궁무진하다. 바다 건너 자신들의 적국(敵國)인 미국에서 재즈로 부흥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나라인 이 땅에까지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것이 바로 쿠바 음악이 갖고 있는 보편성을 증명한다. 반대로 이는 자신들의 문화와 예술을 수호하고자 하는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제국주의에 철저히 짓밟히면서도 자기네 무형 문화를 원형 그대로 유지해올 수 있었던 라틴 문명의 수호 정신이랄까.



오는 2월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찰리 헤이든과 곤잘로 루발카바 듀오 콘서트는 쿠바 음악의 이같은 보편성과 저항 정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미국인이면서 백인인 재즈 베이스 주자 찰리 헤이든은 그 진보적인 사회성과 이념으로 더욱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헤이든은 냉전 시절인 1969년 쿠바의 영웅 체 게바라를 추모하는 라는 음악을 작곡했으며 ‘해방’이라는 뜻의 ‘리버레이션 뮤직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활동했다. 이렇듯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정치 성향으로 인해 그는 카스트로에게 쿠바에 초청되는 특혜를 누리고, 재즈 아티스트로는 드물게 FBI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가 발표한 모든 앨범이 카탈로그에서 삭제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포르투갈에서는 공연 도중 추방되었다).



사회성 투철하지만 달콤하고 낭만적



이번에 그와 함께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는 찰리 헤이든이 1986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발탁한 기대주이다. 1990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데뷔한 이래 그는 쿠바 음악의 정통성을 이어갈 적자로 자타의 공인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쿠바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재즈의 주무대인 미국에서조차 심심치 않게 활동의 제약을 받아왔다. 재즈의 명문 ‘블루 노트’ 레이블은 그를 전속으로 직접 영입하지 못하고, 협력 업체인 일본의 ‘섬싱 엘스’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한 후 그의 음반을 라이선스 형식으로 미국으로 들여갔다.



1994년 그가 미국에서 가진 첫 공연은 이 나라에서 쿠바에 대해 30여 년간 지속되어 통상 금지법이 효력을 상실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1996년 미국 마이애미 공연 때는 쿠바에서 망명한 반공주의자들이 그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현재 루발카바는 ‘미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은 쿠바 국적 아티스트’로서 명성이 자자하다.
헤이든과 루발카바 듀오의 진면목은 그러나 이러한 정치성을 넘어선 음악성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전투적으로까지 보이는 투철한 사회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한없이 달콤하고 관조적이며, 또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참여와 관조라는 이 정반대 개념은 헤이든과 루발카바의 음악을 넘어 쿠바 음악 전반을 대표하는 큰 기둥인 것이다.



사회성과 서정성. 둘 중 어느 쪽을 즐길 것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듣게 될 것은 하나의 음악일 테니까.

찰리 헤이든(왼쪽)과 곤잘로 루발카바. 2월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좋은 친구들>을 감독한 마틴 스콜세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현대 영화의 거장이다. 뉴욕의 범죄 세계를 주무대로 하는 스콜세지의 영화는 폭력과 범죄의 길을 택한 군상의 허탈한 그림자를 보여준다. 위대한 성공도 없고, 홍콩 누아르의 영웅들처럼 장렬하게 산화하거나 하는 일도 없다.




마틴 스콜세지는 ‘비열한’ 범죄자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그려낸다. <갱스 오브 뉴욕>은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19세기 뉴욕의 범죄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낸다. 미국을 지배하는 폭력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신화적 영웅이 왜 초라하고 이기적인 양아치로 전락했는지를 그려낸다.


하류층이 부대끼는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 뉴욕 토박이들의 대장인 빌 더 부처(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조직 데드 래빗 파의 보스인 프리스트(리암 니슨)를 죽이고 패권을 잡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복수를 다짐한다.


19세기 뉴욕의 범죄 세계 리얼하게 그려내


16년 후,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여전히 빌이 장악하고 있는 파이브 포인츠로 돌아온다. 복수를 꿈꾸는 암스테르담은 빌의 수하에 들어가 총애를 받게 된다. 암스테르담은 빌의 정부였던 제니 에버딘(카메론 디아즈)과 사랑에 빠지고, 부와 권력에 취하며 목적을 잃어버린다.
피비린내 나는 결투가 시작되기 전, 빌과 프리스트는 말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싸움’이라고. 동물이 우두머리를 정하는 법칙처럼, 거리의 지배자는 ‘폭력’으로 결정된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존재 증명을 위하여 폭력을 선택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변질된다. 100년 전에는 그들도 이민자였지만, 이제 토박이들은 새로운 이민자를 경멸한다. 이민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조직은, 소수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폭력 집단이 되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비견될 만하다. 진짜 미국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정계로 진출하는 <원스 어펀…>과 달리 빌은 정치에 뜻을 두지 않는다. 지금도 칼을 들고 돼지고기를 자르는 빌은 ‘폭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대의 인간형이다. 그러나 뉴욕의 정치가들은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고, 선량한 시민을 분노로 무장시켜 남북전쟁으로 내모는 현대의 인간형이다. <갱스 오브 뉴욕>은 실제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빌이 아니라 정치가와 상류 계급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갱스 오브 뉴욕>은 단순한 갱 영화가 아니다. <갱스 오브 뉴욕>은 근대 국가 형성과 함께 정치와 범죄 조직이 결합해 거대한 폭력의 지배 체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폭력의 본질과 역사를 <갱스 오브 뉴욕>에서 만날 수 있다(2월28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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