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은 들어오지 마시오
  • 글/사진 강운구 ()
  • 승인 200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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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은
들어오지 마시오


봄이 왔는데, 앞서가는 사람들 많은 도시에서조차 가뿐한 차림으로
모양 내는 이들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농촌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다만 부지런한 농부들이 겨우내 얼었던 땅에 쟁기질하는 것으로부터
농사 지을 준비들을 하고 있다. 무표정하게 얼어붙었던 땅들이 이내
눈부신 푸른빛으로 덮일 것이다. 정월 보름이 막 지나서 시작되는 농사는
팔월 한가위 때 마치게 된다. 달 밝을 때 시작해서 달 밝을 때 마치는
것이다.




지나다 보면 마을 들목의 당산나무에 금줄이 걸려 있는 것들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자주 보인다. 그 금줄은 그 마을에서 보름에 당산제를
올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움츠렸던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고되고 지루한
결전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 단위의 공동체 사람들이 경건한 제의를
빌미로 벌였던 단합대회의 흔적으로 금줄이 남아 있다. 농촌이 거의
몰락하게 되었어도 그런 제의들은 끈질기게 명맥을 잇고 있다. 나무에
걸렸거나 감긴 금줄은 잎들이 무성해지면 잘 안 보이게 되지만, 1년내
남아서 나쁜 것들은 제발 들어오지 말라고 소심하게 말하고 있다.


금줄은 지방에 따라서, 흰 종이 띠나 솔가지 또는 댓잎을 끼운 새끼줄을,
대개 당산나무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질러서 걸어둔다. 나쁜
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금줄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이다.


금줄은 아이를 낳은 집의 대문에도 쳤었다. 그런 금줄에는 고추나
숯을 달아서 태어난 아기의 성을 알리기도 하고, 저항력이 약한 아이와
산모가 있으니 병이 있거나 한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이기도 했다.
고추의 붉은 빛은 양색으로서 악귀를 쫓으며 숯의 검은 빛은 음색으로서
잡귀를 흡수하는 것으로 우리 조상들은 알았다. 마을 당산의 금줄들은
아직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아이를 낳고 치는 금줄은 거의
볼 수 없다. 시골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으며,
더러 있다 하더라도 도시의 병원으로 가서 낳기 때문일 것이다


정월 보름날 개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 습관이 전해져 온다. 무슨
까닭인지 밥을 주면 개가 병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날이 서운하거나
한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고 한다. 이젠 텔레비전에 비친 달이나 보며
모두가 개 보름 쇠듯 할 뿐이지만 그래도 금줄은 마을의 당산 나무에
해마다 새로 걸려서 ‘나쁜 것들은 제발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한다.


동아줄로 꼰 거대한 금줄을 인천공항이나 부산항에 쳐 두면 알맞겠다.
사악한 것들이 그게 뭔지를 알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 강운구의 풍경은 격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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