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모형’ 논란 돌부처도 돌아앉을라
  • 경주·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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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타당성 놓고 치열한 공방 이어져


빼어난 감식안으로 식민지 조선을 누비고 다녔던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경주 석굴암을 찾은 뒤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굴은 동쪽으로 면하여 세워져 있다. 앞으로는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누빈 듯한 산맥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다. 모든 것이 그 꼭대기에 의해 지배되고, 부처는 그 중앙에 편안히 자리 잡은 채 조용히 묵좌하고 있다. (중략) 이곳을 찾는 사람은 우수한 작품과 자연을 접함과 동시에 이를 선택한 옛 사람의 마음과도 닿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날 야나기가 다시 석굴암을 찾았다면 어떤 감상기를 남겼을까. 그가 찬탄해 마지 않던, 누빈 듯한 산줄기에는 관통 도로가 뚫린 지 이미 오래이다. 부처가 정좌한 곳은 주차장으로부터 겨우 600m 떨어져 있다. 석굴암을 찾는 관람객은 하루 평균 3천명. 산술적으로 따져볼 때 부처 앞에 한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2분을 넘지 못한다. 옛 사람의 마음에 가 닿기는커녕 앞사람 엉덩이에나 치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석굴암의 운명을 둘러싸고 최근 가열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석굴암 경내에 모형 전시관(속칭 ‘제2 석굴암’)을 짓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사건의 발단은, 불국사측이 현재 석굴암이 있는 곳으로부터 동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석굴암 모형·영상실 등을 갖춘 전시관을 짓겠다며 문화재청에 허가를 요청해 비롯되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건조물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관할하는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위원회에 심의를 맡겼다. 심의와 현지 답사를 거친 제1분과는 올 초 석굴암 경내에 전시관을 건립하도록 승인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다른 분과 위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문화재위원회 산하에는 분과위원회가 모두 6개 있다. 이 중 건조물을 제외한 유형 문화재 전반을 관할하는 제2분과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이 분과에 속한 강우방(이화여대)·안휘준(서울대) 교수 등은 “석굴암은 단순한 건조물이 아니다.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1분과 단독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도 가만 있지 않았다. 한국건축역사학회·한국미술사학회·환경연합 등 23개 관련 학회 및 시민단체는 지난 3월2일 ‘석굴암·토함산 훼손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위원장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를 결성하고 모형관 건립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문화재청은 지난 4월12일 석굴암 현지에서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이 날 설명회는 문화 유산 보존 및 전승을 둘러싼 민·관의 의식 차가 얼마나 극명한지를 드러냈다.





“수명 다해 모형관 건립 서둘러야”



불국사와 문화재청은 먼저 모형관을 지어야 할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대체 관람관이 필요해서이다. 원형 보존을 위해 석굴암 전면에 유리벽이 설치된 것이 벌써 27년째이다. 유리벽 앞에 선 관람객들은 본존불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을 뿐 이를 둘러싼 제자나 보살들의 매혹적인 부조상은 들여다볼 길이 없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고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은 말했다.



다른 하나는, 석굴암의 수명이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관 설계를 맡은 김홍식 교수(명지대)에 따르면, 일제 시대에 떠놓은 석고 모형과 현재의 석굴암 조각상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느 쪽이 변형된 것인지는 현재로서 확실치 않다. 어쨌거나 “천 년이면 돌의 수명이 다할 때가 됐다. 한시바삐 모형관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설명회에 나온 문화재청 윤홍로 전문위원은 모형관 건립이 뜬금없이 나온 1회성 아이디어가 결코 아님을 강변했다. 1970년대 석굴암에 대한 대규모 보수 공사가 이루어질 때부터 모형관을 건립해야 할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또 건립 위치는 결정되었지만, 그밖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으로는 석굴암은 석굴암대로 훼손되고, 모형 전시관 또한 제대로 모양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대책위 입장이다. 이상해 위원장은 “전시관 내부 시설을 논의하기도 전에 설계부터 착수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문화재청의 주먹구구식 행정을 따져 물었다.



대책위 김홍남 교수(전 이화여대 박물관장)는 나아가 일반 사찰에 적용하는 건축 허가 기준을 세계 문화 유산인 석굴암에 그대로 적용한 것 또한 일종의 편법 행정이라고 공박했다. 석굴암 경내에 짓겠다는 모형 전시관은 법적으로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사찰 역사유물 전시관이다. 전국의 주요 사찰들이 소장한 문화재를 도난당하는 사건이 줄을 잇자 1995년 정부는 이들 사찰에 대해 유물관 건립비를 지원한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 뒤 통도사·해인사 등 20여 개 사찰에 유물관이 지어졌는데, 석굴암 또한 이같은 정책에 따라 경내 전시관 건립을 허가받게 된 것이다.





“석굴암은 석굴암인 채로 놓아두어야”



말로만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떠들 뿐, 그에 응당한 법적 보호나 투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대책위의 불만이기도 하다. 대책위에 속한 울산반구대사랑시민모임 회장 이재호씨는, 1일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등 석굴암에 대한 적극적인 보존책을 취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와 종교 집단이 관광 수입을 올리기 위해 일을 벌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석굴암 주지 종상 스님은, 전시관을 무료로 운영할 것인 만큼 수입 증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스님은 나아가 석굴암 대신 불국사 경내나 주차장 인근에 전시관을 짓자는 일부의 주장 또한 일축했다. 관람객이나 신도 들이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나, 경비·관리를 위해서나 전시관은 석굴암 경내가 최적지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설계자인 김홍식 교수 또한 후손들을 위해서도 석굴암 모형은 원형과 가장 근접한 곳에 세워져야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는 문화 유산 보존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없는 데서 나온, 근시안적 결론이라는 것이 이상해 대책위 위원장의 비판이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이나 이집트 피라미드 또한 훼손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들 문화재 코앞에 모형관을 지었다는 얘기는 결코 들어본 일이 없다”라고 그는 말한다.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지낸 강우방 교수는 “석굴암을 석굴암으로서 놓아 두라”고 호소했다. 그에 따르면, 석굴암은 의도적으로 비밀스러운 장소에 세워졌다. 곧 대중이 드나드는 장소에 널리 드러나게끔 세워졌던 불국사와 달리 석굴암은 서라벌을 등진 깊숙한 계곡 후미진 곳에 감추어져 있음으로써 절대적인 숭고미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책위는, 문화재청과 불국사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 전국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 문광위와 연계해 청문회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래저래 석굴암은 더 이상 ‘침묵의 성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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