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대’에 바친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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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콘서트 연 정태춘씨/“1980년대 열정 되살리고 싶어”



"굴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단 한 번도 비켜서지 않았던 우리의 대표선수 정태춘씨를 소개합니다.” 5월25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바람이 분다’ 콘서트에 운집한 7천여 청중은 사회자 문성근씨가 가수 정태춘씨를 소개하자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내질렀다. 상기된 표정으로 청중을 바라보며 정씨는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이 이런 건가요?” 사람들은 들고 있던 풍선을 일제히 터뜨리며 화답했다. “아니요.”


공연 전날 마포의 연습실에서 만난 정태춘씨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부터 준비한 이번 공연의 성패가 그의 어깨 위에 달려 있었다. ‘바람이 분다’는 문화재단 ‘아름다운 세대’(가칭) 설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콘서트이다. 아름다운 세대는 1980년대를 격정적으로 보낸 학생·노동자·농민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 세대의 문화를 복원하자는 취지로 그는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그동안 잔치가 끝난 뒤 모두가 떠난 술자리에 남아 홀로 술을 마시는 심정으로 쓸쓸하게 무대에 서왔다는 그에게 이번 공연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는 내 노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절이었다. 한 공간 안에서 밀도 있게 교감하는 만남이 그리웠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 때의 열정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이번 공연은 정말 기대가 크다.”


강산에·윤도현밴드·크라잉넛 등도 동참


서정적이던 그의 노래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사설조의 넋두리로 바뀌었다. 소외된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여전했지만 그의 노래에서 희망의 메아리는 찾기 어려웠다. “가사가 길어진 것은 할 말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노래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다만 관념적이고 함축적인 노래를 더 부르고 싶지 않았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삶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처음 이 공연을 기획했을 때 정씨는 ‘386세대에게 바치며’라는 부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뜨겁게 보낸 사람들이 단지 그들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대상을 확장했다. “대학에 적을 둔 사람만 1980년대를 치열하게 보낸 것이 아니다. 노동자나 농민도 모두 각자의 현장에서 올곧은 목소리를 냈다. ‘아름다운 세대’는 이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4·13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에 보내준 갈채와 최근의 노무현 열풍에서 그는 이들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아름다운 세대에 거는 그의 기대는 크다. “이들은 거대한 기득권 세력과 싸운 세대이다. 지난 10년은 현실 사회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묵비권을 깨야 할 시간이 왔다.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다시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서게 해야 한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그는 전국 10대 도시에서 콘서트를 열어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설 예정이다. 1980년대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복원하기 위해 그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끌어들였다. 이 외에 강산에·이정열·윤도현밴드·크라잉넛도 ‘아름다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동참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1980년대 문화 예술의 성과를 집대성하는 엑스포를 가질 예정이다. 그동안 서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한마당 대동제를 열겠다.”


‘바람이 분다’의 첫 번째 콘서트는 제법 대박이었다. 7천명이 넘는 아름다운 세대가 식솔을 이끌고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이들은 10년의 시간을 거슬러올라 1980년대의 함성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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