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위해 뛰다 발병 났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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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 방북·음악회 좌절…‘남북 공동 나운규 기념사업’ 추진



한국아리랑연합회(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48)에게 올해는 ‘최고의 해’가 될 뻔한 ‘최악의 해’였다. <아리랑>이 민족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아리랑 축전’으로 불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북한에서 열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아리랑>이 응원가로 수없이 불리면서 사상 유례 없는 ‘아리랑의 해’를 구가했다. 그러나 20년 이상을 <아리랑>에 묻혀 지냈던 김이사는 이 두 행사의 언저리에서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지난 8월9일 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아리랑>에 뒤덮여 있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지난 20년 동안 그가 수집한 <아리랑> 관련 자료가 빽빽했다. <아리랑> 관련 서적 1백50권, 전국에서 채집한 <아리랑> 구술 테이프, <아리랑> 악보 7천여 편 등 그가 아리랑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이 좁은 사무실을 더 비좁게 만들었다.


“북한이 보낸 햇볕, 정부가 차단”


그는 8·15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하는 북측 대표단을 맞기 위한 긴급 제안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리랑축전에서 개막곡을 불렀던 석련희씨가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남측도 <아리랑>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리랑축전에 대규모 방북단을 조직했다가 참가가 좌절된 심정을 묻자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정말 열통 터진다. 동질성 회복이 통일의 기본이라고 말하면서 왜 동질성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막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사에도 참가하지 못하게 한다면 무엇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총칼로 하겠다는 말인가?”


머지 않아 그는 아리랑축전 참가를 어떻게 준비했고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은 남측 사람들이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을 전제로 축전을 기획했다. 아리랑축전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색은 탈색되었다. 남측 사람들의 평양 관광이나 백두산 관광에도 큰 제약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이를 마다했다. 북한이 햇볕을 보냈는데 우리 정부가 이를 가로막은 꼴이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그는 한껏 신명이 나 있었다. 월드컵 전야제에서 조용필씨가 <꿈의 아리랑>을 부르고 개막식에서는 김성녀씨가 <희망의 아리랑>을 부르면서 <아리랑> 중흥의 불길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리랑축전 참가를 허가하지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각 대학을 돌아다니며 아리랑축전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정부는 참가를 허가하지 않았다. 그는 “<아리랑>은 북한 것도 남한 것도 아니다.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다.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아리랑축전과 별개로 그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아리랑 음악회를 열기 위해 차곡차곡 준비했지만 이것 또한 미군 당국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한국 대학교 아리랑 축전’을 후원했다가 학교측이 <아리랑> 관련 게시물을 갑자기 철거하는 바람에 소중한 자료를 많이 잃어버렸다. “올해만큼 뜨겁게 살았던 해가 없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빚뿐이다.”


그러나 이제 막 불씨가 지펴진 <아리랑>의 열기를 살리기 위해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나운규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계획한 남북 공동 기념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나운규 탄생 100주년인 10월26일 전후해 남북한과 재일동포, 그리고 옌볜 조선족까지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 행사로 그가 최악의 해를 최고의 해로 되돌릴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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