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에게 뭔가 보여주었습니다
  • 이동연 (문화평론가) ()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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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황제’ 고 이주일씨에게 보내는 헌사
'뭔가 한번 보여드리겠다’던 마흔 살 무명 코미디언의 비장한 방송 데뷔 멘트는 22년이 지난 후 역설적이게도 자기 부음에 염질을 한 행복한 유언이 되고 말았다. 밤무대 ‘가방모찌’에서 국민적 스타로,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서 찬란한 죽음의 헌사에 이르기까지, 그보다 더 많이 뭔가를 보여준 우리 시대의 광대가 있었을까?





죽음과 장례의 시간들은 아마도 뭔가 보여주겠다던 그의 공약이 마침내 실현된 자리였을 게다. 방송사의 긴급 추모특집 방송, 꼬리에 꼬리를 무는 조문객, 그의 일대기 영화 제작, 회고록 출간, 이주일장학재단 설립, 방송대상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 그리고 다시 불붙은 금연·화장 문화운동…. 결국 그의 죽음은 뭔가를 보여드리겠다던 바로 그 ‘무엇’이었던 셈이다.


서민의 삶과 교배된 ‘진솔한 웃음’


그러나 그 ‘무엇’은 코미디 황제의 죽음 앞에 도열한 유명 연예인의 애도에 값하는 유명세나 사회적 파급력만은 아닐 것이다. 영정 앞에 헌화된 권력자의 기표들, 육신과 혼령 모두를 피곤케 했던 방송·신문의 카메라들, 흑백 필름으로 시작해서 재현되는 망자의 일대기들은 그 ‘무엇’의 지나가는 인생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할 뿐, 무대 위에서 안달하고 뽐내다가 지나고 나면 잊히고 마는 불쌍한 배우”라고 한탄한 맥베드의 독백처럼, 그 앞에 헌사된 언어들과 이벤트들은 그 스스로 무대에서 체험했던 생생한 사건과는 무관한, 시간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들이다.

못생겨서 죄송하다는 그의 35년간 ‘쇼쇼쇼’는 느껴지는 것일 뿐, 현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줌의 뼈, 자연의 재로 돌아간 한 위대한 코미디언의 인생을 복기하면서, 어려운 시절의 웃음을 ‘현상’하지 말고 ‘체감’할 수 있는 근대성의 아우라를 발견해야 한다.


1965년 샛별악극단 시절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자세히 보면 더 못생겼습니다”로 시작된 그의 무대 인생은, 19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의 운명적인 멘트였던 “운명하셨습니다”로 주류 코미디계에 화려하게 진입하더니, 5공 시절 저질 코미디언으로 찍혀 방송 출연을 금지당한 뒤 다시 밤무대 ‘초원의 집’에서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로 만개하기에 이르렀다. 5공 시절이 지난 후 스크린에 복귀한 그는 1992년 정계에 진출해 또 한번 스크린을 떠났다가 “4년간 코미디 잘 배우고 간다”는 쓴소리를 남기고 1996년 다시 방송에 복귀했다.





복귀 직후 서울방송에서 진행한 <이주일의 투나잇쇼>는 어찌 보면 중년이나 장년을 대상으로 한 마지막 코미디 프로그램이었고, 이후 공중파 방송에서 ‘쇼쇼쇼’ 류의 극장식 코미디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시점을 전후로 코미디 프로그램의 성격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고, 무대와 코미디는 스크린과 개그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35년의 무대 인생에서 그가 뭔가 보여준 그 무엇은 동시대 서민의 삶과 교배된 친근한 ‘원맨쇼’였다. 말하자면 서민 대중과 못생긴 영웅의 교접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초 암울한 현실에서 대중은 독재 정권이 허용한 최소한의 스크린의 자유 속에서 이주일을 발견했고, 이주일은 웃음과 검열, 대중적 카타르시스와 폭력의 망각 메커니즘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면서, 현실의 공포를 무대 위의 웃음으로 해소하려는 대중의 필요에 부합했다. 그런 점에서 이주일은 조용필과 함께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불행하게 1980년대를 살았던 시대의 광대였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떨까


그의 원맨쇼는 보여주는 형식과 보이는 내용에서 가장 현대적 코미디에 근접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원맨쇼는 선배 격인 서영춘·구봉서·배삼룡처럼 대단히 토착적인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미국적 영웅다운 개척 정신이 강한 무대의 서구적 카리스마를 독자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주일은 한국 코미디 역사를 위해서라도 사실 조금은 더 생존했어야 했다. 그가 선배 격인 구봉서·배삼룡·송 해보다 먼저 운명을 달리함으로써 한국 코미디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약간의 혼선이 생기고 말았다. 만일 그의 죽음이 선배 코미디언의 뒤를 따랐다면, 우리는 차라리 코미디의 완전한 종말을 선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코미디는 안방극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다만 명절 효도 관람용으로 옛날식 ‘악극’이나 ‘쇼쇼쇼’로 연명하고 있다. 향수(鄕愁)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서 배삼룡과 구봉서가 나오는 이상, 그래도 아직 한국의 코미디사는 완전히 정리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초라한 현실이 너무 슬펐을까. 이주일의 죽음은 차라리 진정한 코미디의 부활을 위한 위대한 광대의 장렬한 분신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금연과 화장 문화의 필요성이 아니라 서민의 해환을 달래주는 진솔한 웃음을 복원하는 일이다. 대중은 이주일의 죽음을 보며 마음의 한 자리에서 함께 사라져가는 애환과 웃음의 코미디를 그리워할 것이다.

현실이 코미디보다 더 웃기고, 개그가 서민적인 웃음의 수액을 빨아먹는 시대에, 코미디 황제는 이제 영원히 재림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래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것의 진실이 시대의 웃음을 마감하는 코미디 아우라의 종말을 고한다면, 그의 서민적인 유행어와 정겨운 무대 위의 스타일이 우리의 감성의 기억에서 망각되기 전에 서둘러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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