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널리즘이냐 낡은 혼성모방이냐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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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식 기사’에 대한 평가 극과 극
'도올 <문화일보> 기자 되다’라는 사고(社告)와 함께 도올 김용옥(55)이 언론계에 입문한 것은 지난 12월2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하고도 열흘. 평기자 도올이 언론계 안팎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계·방송계·한의학계…. 어느 분야에선들 그렇지 않았으랴만 그는 언론계에서도 단연 ‘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일단 그는 언론인 경력이 전무한 채 50대 중반에 신문사에 입사한 최고령 평기자이자, 이름 앞에 호(號)가 상시 등재되는 최초의 기자이다(<문화일보>는 처음부터 ‘김용옥 기자’가 아닌 ‘도올 김용옥 기자’라는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입사 24일 만에 터뜨린 대형 특종(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인터뷰)으로 잘하면 기자 생활 1년차에 각종 기자상을 거머쥐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특별한 현안 없는 한 도올 기사 1면에 배치”


<문화일보>는 도올로 인해 자기네 인지도며 호감도가 크게 상승했다고 본다. 만나는 취재원마다 도올의 근황을 물어대는 통에 어리둥절할 지경이라고 <문화일보> 5년차 기자는 말한다. <문화일보> 편집국으로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와 “도올 선생님한테 제보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그분만이 이 문제를 취재할 수 있다”라고 도올과의 통화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이같은 이른바 ‘도올 효과’가 판매 확장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계량화한 수치로 나타난 것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도올이 ‘도올의 청춘은 그대(독자)들의 격려로만 유지된다’며 자기 기사 말미에 구독 신청 전화 번호를 명기한 날, 쉴새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때문에 편집국 업무가 마비될 뻔한 사건은 도올의 스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걸맞게 <문화일보> 또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별한 현안이 없을 때면 가능한 한 도올 기사를 신문 1면에 배치한다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다”라고 도올의 담당 데스크인 김종호 부국장은 말한다. 도올의 취재 지원을 전담하는 인력도 따로 있다. 도올이 현장 취재를 나갈 때면 취재 기자 1명, 사진 기자 1명 외에 개인 비서 2명이 그를 수행한다. 도올이 함께 데리고 입사한 이들 비서는 기사에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도올이 육필로 작성한 원고를 워드 프로세서로 입력한다.


이런 특별 대우에 질시가 있을 법도 하건만 <문화일보> 내부 구성원들은 도올에게 거의 절대적인 성원을 보내고 있다. 직업상 삐딱하기로 소문 난 기자들마저 그를 ‘도올 선생’으로 깎듯이 대접한다.
“사통팔달(四通八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라는 말을 실감한다.” “단순한 연하장 한 장에서 출발해 사회·우주로까지 인식을 확장하는 도올의 기사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젊은 기자들이 데이터 베이스를 검색하며 자료를 뒤지는 동안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호출해 자문하는 그의 취재 방식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한 달간 기자들의 반응이다.


그가 교열부와 마찰을 일으켰을 때도 기자들은 도올을 일방적으로 감쌌다. 지난 연말, 담당 교열 기자가 ‘책임을 걸머지고’를 ‘책임을 지고’로 바꾸어놓는 등 자기 기사에 손을 대자 도올은 “나 기사 안써”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편집국을 뛰쳐나갔다. 이때 기자 5명으로 구성된 <문화일보> 자체 심의팀은 “봉황을 조롱에 가두지 말라” “우리는 기자다운 도올이 아닌 도올다운 기자를 원한다”라며 도올을 편들었다.


그렇지만 도올 기사를 보는 외부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언제나 극단적인 찬반 양론을 몰고 다녔던 도올답게 기자 데뷔 이후에도 도올 기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문화일보> 홈페이지 네티즌 광장에는 ‘일찍이 한국 신문에서 보지 못한 참신한 기사’라는 찬사와 함께 ‘도올 글도 기사냐’는 비난이 연일 어지럽게 올라오고 있다.





기자 도올의 신념 ‘주관적 글쓰기’


이들이 도올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는 기사의 필수 요건인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천하의 도올’이라는 둥 도올 특유의 자화자찬성 레토릭에 대해서는 비판자들도 으레 그러려니 한다. 그렇지만 평기자라는 직함을 단 채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암시하거나 취재원에 대한 평소의 친소 관계를 드러내는 기사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연말의 김우중 회장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4년째 해외 도피 중인 김회장을 언론에 처음 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기사는 특종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도올이 자기 친구라고 공언한 김회장에게 시종일관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바람에 기사가 결국에는 취재원의 ‘변명 들어주기’에 그치면서 기사적 완결성이 떨어졌다는 것이 양문석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정책실장의 비판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글쓰기는 도올의 신념이기도 하다. 도올은 입사 당시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정보 전달자가 아니다. 나는 강렬한 가치 판단을 서슴지 않겠다. 물론 독단을 배제한 개방적인 가치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겠다. 그게 춘추필법(春秋筆法)이다.” 이에 대해 언론계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방송사 고위 간부는 “도올의 기사에서 뉴저널리즘의 가능성을 읽는다”라고 말했다. 관점·문체·기사 작성 방식 따위 틀에 박힌 기성 저널리즘에 도올이 신선한 도전장을 던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형식을 넘어 내용의 새로움으로까지 연결되느냐는 것이다. 한 기자는 지난 12월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도올이 ‘고수’의 면모를 보여주기보다 동양학으로 포장한 ‘낡은 저널리즘의 혼성모방’에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네티즌 또한 도올의 기사가 구태의연하며 낡은 시대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기사 중 ‘노사모? 돼지 통장? 그게 다 북한에서 인민 동원할 때 쓰는 수법이래’ 같은 인용 글을 끌어들여 특정 집단을 매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매카시즘 수법이라는 것이다(‘백팔번뇌’). 새해 첫날의 ‘김정일 위원장께 DMZ에서 보내는 편지’ 또한 참신한 발상이라기보다는 노태우·김우중·달라이라마 찬가로 이어진 그의 ‘명망가 선호증’ 내지는 낡은 엘리티즘을 반영할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비판이다.


‘스타’ 딱지는 기자 도올에게 약이자 독이다. 독자나 동료 기자들은 여전히 도올을 ‘기자’라기보다 ‘지적 엔터테이너’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민주당 출입 기자는 대선 기간에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후보들과 독대하는 도올의 ‘특권적 취재 행태’에 짜증은 났을지언정 속된 말로 기사에서 ‘물을 먹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도올 김용옥 기자’에게 걸린 기대는 크다. 한국 언론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겠다던 그의 공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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