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심부름하며 프로 만들었는데”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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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들 빠져나간 <개그 콘서트> 앞날
'아따 양 참말로 거시기 허요’(당신을 사랑합니다)와 ‘니 몇 살이고?’(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의 뜻을 알고 ‘내 개그는 아야여오요우유으야’(어이가 없지)라는 얘기를 듣고 웃을 수 있는가? 웃을 수 있다면 당신은 아직 신세대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조금 시대에 처진 축에 속한다.






매주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하며 2030세대와 5060세대를 가르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될 정도로 성장한 KBS2 <개그 콘서트>가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심현섭·강성범·박성호·이병진·이태식·김대의·김준호·황승환·김 숙·김미진 등 주요 출연자 10명이 돌연 출연을 중단한 것이다.
개그맨들이 방송 출연 중단을 선언한 이번 <개그 콘서트> 사태(아래 상자 기사 참조)는 또 한가지 중요한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거대 방송사에 맞설 만큼 개그맨들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가수나 연기자뿐만 아니라 이제 개그맨들도 방송사 안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코미디언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개그맨이라는 말이 일반화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년 전이다. 그러나 ‘개그 전성시대’는 한 차례 위기를 넘긴 후에야 찾아왔다. 코미디언에서 개그맨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무렵 방송국 코미디 프로그램 시청률은 급전직하했다. 기존 코미디의 문법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개그 프로그램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떨어지자 무리수가 많아졌고 그것은 고스란히 방송의 질 저하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까지 개그 프로그램은 시청자 단체들의 단골 비판 대상이었다. 늘 ‘저질스러운’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일선 PD와 작가 들도 개그 프로그램을 기피하면서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김미화씨는 당시의 분위기를 “방송국에서 애물 취급을 받으면서 개그 프로그램이 많이 줄었다. PD들은 개그 프로그램을 맡으면 ‘똥 밟았다’고 불평했다. 선배들에게 밀려 실력 있는 후배들이 담배 심부름이나 하면서 소일했다.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환경이 도저히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소극장 공연 도입해 젊은층에 인기몰이


개그 프로그램이 설 자리가 좁아지자 개그맨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다른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기도에 따라 진출 분야가 달랐다. 가장 인기 좋은 축이 진출하는 곳은 쇼 프로그램 MC였다. 주병진씨와 이홍렬씨가 성공적인 선례를 남긴 이후 이경규·서세원 씨가 MC로 안착했고, 이후 김용만·김국진·서경석·이윤석 씨 그리고 남희석·이휘재·유재석·박수홍 씨가 뒤를 이었다.


한번 MC로 진출한 이들은 대부분 개그 프로그램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MC가 훨씬 수입이 많은 데다 매번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스트레스도 적었고, 무엇보다 텔레비전에 계속 나가도 시청자들이 식상하게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개그맨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주로 밤무대에 나가 일을 했다. 그나마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은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앵벌이’를 해야 했다.


비록 대학로 연극인들로부터 비난을 듣기는 했지만 소극장 공연은 독특한 언더그라운드 개그 시장을 형성했다. 소극장 공연을 방송사가 도입하면서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했는데, 그것이 바로 <개그 콘서트>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청자들을 압도한 <개그 콘서트>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멀어진 20대 시청자를 다시 텔레비전 앞에 끌어모았다.


전유성씨는 <개그 콘서트>가 성공한 데 대해 “스탠딩 개그·앙코르 개그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히 시도하고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추어 빠르게 진행한 것이 통했다. 동원된 방청객이 아닌 진짜 방청객을 앞에 놓고 정직한 개그를 한 것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라고 분석했다.


<개그 콘서트>는 인기 개그맨들이 MC로 빠져나가던 물줄기도 되돌렸다. 이휘재·유재석·송은이·김한석 씨는 SBS <코미디 타운>을 통해 다시 개그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개그 콘서트>에서 시작된 다양한 장르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KBS2 <폭소클럽>에서는 본격적인 스탠딩 개그와 성인 개그가 선보이고 있다. MBC도 새로운 형식의 개그 프로그램을 준비 하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이 중흥하고 개그맨들이 MC로 맹활약하면서 방송국에서 개그맨의 위상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현재 방송국에서 최고 출연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개그맨 신동엽이다. 개그맨들의 상품성이 커지면서 스타밸리·G패밀리·스마일 매니아 등 개그맨 전문 연예기획사도 생겨나고 있다. 김용만·김국진 씨는 아예 독립해 프로덕션을 차리고 PD들을 고용했다. 인기 개그맨들은 대학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이영자·전유성 씨가 예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심현섭·이병진 씨가 명지대학 코미디학과 전임강사로 발탁되었다.


<개그 콘서트>에서 물러난 후 쉬고 있는 심현섭씨는 “예전에는 개그맨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그맨의 살 길이었지만 이제는 개그에서 모든 답을 구할 수 있다. 개그맨을 더욱 전문가의 영역으로 발전시키겠다. 잠시 쉰 후 정통 스타일의 개그로 시청자를 찾아 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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